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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 Jan 28. 2021

결국엔 내 길로 이어질 테니

  주말에 우리 부부는 아기와 함께 산책을 나갔다. 산책로 양 옆의 나무들은 잎사귀 하나 없이 헐벗었고, 산책로를 걷는 사람들은 두꺼운 옷과 겨울 모자로 몸을 감싼 채 걷고 있었다. 산책로에서 보라색 겨울용 비니를 쓴 조그만 머리가 사람들 다리 사이로 움직였다. 하얀 강아지를 앞에 두고 아기가 멈춰 서자 우리 부부는 아기 옆에 쪼그려 앉아서 멍멍이라고 이야기해주었다. 지나가던 노부부는 안고 있던 10개월 아기를 시켜 우리 아기에게 인사를 시켰다. 우리 아기도 파란 마스크 위로 눈을 반짝이며 카키색 패딩 소매 속에 감춰진 손을 흔들었다. 우리 부부는 허리를 숙인 채 산책로 위의 아기를 좇아 다녔다. 걷다가 넘어지다가 일어서는 아기를 신랑이 안아 들고 걷기도 했다. 14개월 아기가 자기 몸보다 큰 패딩을 입고 발걸음을 옮기는 모습은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특히 할머니들은 아기에게 잘 걷는다는 칭찬을 건네며 지나가곤 했다. 겨울 추위가 누그러든 1월 셋째 주 주말, 우리 아기를 보는 사람들의 눈빛까지도 따뜻했다.


  산책로 끝에 다다랐을 때였다. 우리 부부는 안고 있던 아기를 땅에 내려주었다. 얼마 남지 않은 산책로는 아기가 스스로 걷게 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아장아장. 우리 아기는 좁은 보폭으로 조금씩 앞으로 나아갔다. 우리 아기 옆에 할머니 한 분이 멈춰 섰다. 갈색 털모자와 털코트를 입은 할머니가 “아이고, 잘 걷네.” 하고 아기에게 말을 걸었다. 할머니가 말하자마자 아기는 다리를 휘청이더니 엉덩방아를 찧으며 두 다리를 벌려서 앉았다. 그때, 할머니가 아기에게 한 번 더 무어라 말을 건넸다. 나는 아기를 챙겨서 세우느라 할머니의 말을 제대로 듣지 못했다. 아기는 고개를 들어 할머니 쳐다봤다. 처음 보는 할머니가 신기했는지 아기는 내가 세워준 뒤에도 가만히 서서 할머니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내가 꼭 너처럼 넘어진다고~. 내가~ 꼭 너처럼 넘어져.”


할머니는 회백색 머리카락과 하얀 마스크 사이의 주름진 눈으로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내 다리 아래에서 배를 내밀고 선 아기가 허리를 구부리고 선 할머니와 마주 본채로 잠시의 시간이 흘렀다. 할머니는 고개를 한 번 씩 끄덕이며 “그래, 내가 너처럼 넘어진다고.”하는 말을 반복했다. 아기가 오른팔을 높게 들어 올려서 아빠 다리에 붙자, 할머니는 인자한 웃음을 유지한 채 산책로 끝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우리 부부는 아기띠를 꺼내고, 누가 어디까지 안고 이동할지 의논하며 움직일 준비를 했다. 준비를 마친 뒤, 나는 아기를 안고 신랑은 가방을 들고 산책로 끝을 향해 걸었다. 다섯 걸음 정도 걸었을까. 우리보다 먼저 출발한 할머니 뒷모습을 발견했다. 아장아장. 할머니는 좁은 보폭으로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꼭 우리 아기처럼 넘어진다는 할머니의 말이 머릿속에 메아리처럼 울렸다. 할머니의 ‘걷기’는 어느 위치에 있는 걸까. 할머니의 걷기 속도는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우리 아기와 비슷해 보였다. 우리 아기와 할머니는 살아온 시간이 80년 정도는 차이가 날 터인데, 걷는 속도에서는 차이가 없었다. 시간 변화에 따른 걷기 속도를 그래프로 나타낸다면, 그 모양은 꼭 정규분포 그래프와 같을 것이다. 정규분포 그래프는 하나의 꼭짓점을 중심으로 좌우 대칭을 이루는 종모양의 그래프이다. 태어나서 걷기 능력이 서서히 그러다가 폭발적으로 발달하고, 어느 순간 정점을 찍은 뒤에는 급격히 그리고 천천히 떨어지면서 인생의 마지막을 맞이하는 것이겠지. 걷기 속도뿐만 아니라 다른 신체능력도 마찬가지일 테다. 회사에서 업무능력도, 인생에서의 성취도 모두 노력한 대비 성과가 미약한 구간을 지나서, 노력한 만큼, 노력한 것보다 더 큰 성과를 내는 가파른 상승 구간을 만난다. 어느 순간 정점을 찍고 나면 다시 하락 구간에 접어드는 건 너무 당연한 게 아닐까.


  나는 이번 주 금요일에 복직할 예정이었다. 복직을 앞두고 지방으로 파견가 있는 신랑과 지난주 내내 길고 긴 대화를 나눴다. 육아휴직 연장에 대한 대화였다. 우리 부부는 아토피로 빨갛게 뒤덮인 아기 얼굴이 2주째 지속되자 걱정이 커졌다. 내가 복직하면, 아기가 스트레스를 받아서 아토피 증상이 악화될 것 같았다. 또, 시부모님께서 에너지 넘치는 아기를 보시기 힘들 것 같다는 걱정도 있었다. 자신들의 인생을 지금까지 열심히 살아오신 시부모님께 60세가 넘어서도 자유를 포기하라고 하는 게 옳은지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었다. 이야기 끝에 내가 육아 휴직을 일 년 더 사용하기로 확정했다. 그 뒤로 나는 잠을 자지 못했다. 다시 숨이 부족한 증상도 나타났다. 내가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신호였다. 나는 육아휴직 2년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복직만 무서운 줄 알았는데, 휴직 연장이 더 무서웠나 보다. 회사가, 세상이 나를 잊을 것 같았다.


  나는 지금 어느 지점에 있는 걸까. 어떤 날은 상승 구간인 것 같고, 어떤 날은 하락 구간인 것 같다. 연장된 육아휴직 기간은 꼭 하락 구간인 것만 같았다. 신랑이 기차여행 관련 다큐멘터리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신랑은 여행자가 기차여행을 좋아하는 이유를 말하는 장면이 인상 깊었다고 했다. 기차를 타고 이동할 때는 직진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뒤돌아보면 지나온 길 위로 구불구불 철길이 이어져 있더라고. 앞만 보고 달릴 때는 몰랐지만, 사실은 목적지에 도착하기까지 많은 굴곡이 있었다는 이야기겠지. 정규분포 그래프와 같아 보였던 인생도 그 안에 무수히 많은 굴곡이 있을 터였다. 그래프 위의 한 점을 확대해서 보면 구불구불 철길이 나타날 것이다. 오르락 한 번에 기뻐하고, 내리락 한 번에 좌절하며 그 순간순간에 내 인생의 행복과 불행을 가늠하는 일이 얼마나 짧은 생각이었나. 어쨌든 목적지에 도착할 테고, 정규분포 그래프 위에 한 점이 될 텐데 말이다.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라고 했던가. 우리 아기와 할머니의 걷기가 속도는 같지만 어딘지 다른 이유가 있었다. 바로 방향이었다. 우리 아기는 열 걸음을 걷기도, 두 발자국만 걷기도 그러다 넘어지기도 하지만 결국엔 더 잘 걷고 뛰겠지. 반면 할머니는 오늘보다 내일 더 잘 걸을지라도 결국엔 점점 더 걸음이 힘들어질 것이다. 인생이 정규분포 그래프를 따르는 게 맞다면, 내 인생의 방향은 정해져 있는 셈이다. 정점을 향해 가거나 정점에서 멀어지는 것. 그리고 나는 아직 정점을 찍지 않았다. 분명 나는 지금 정점을 향해서 가고 있는 거겠지.


  우리 부부는 11kg 아기를 안고 성큼성큼 걸어서 아장아장 걷는 할머니 옆을 지나쳤다. 산책로 끝에 도착해서 뒤돌아보니, 할머니는 여전히 좁은 보폭으로 걷고 있었다. 할머니 나이가 되어 돌아보면 육아휴직   연장이 그리 대단한 일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그래프 위에  ,   안의 굴곡진 부분  하나겠지. 그리고 이제 나는  점이 이어질 방향도 알고 있다. 불안함을 내려놓고 아기와  년을 다시 걸어보기로 한다. 결국엔  길로 이어질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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