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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 Feb 16. 2021

우리가 모두 다른 선택지를 가지고 있다는 걸 안다면

  설을 맞이하기 일주일 전이었다. 신랑은 금요일에 휴가를 썼다. 우리는 아기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함께 영화를 보러 갔다. 아이가 태어난 후로 신랑과 영화관에 처음 간 날이었다. 사실 그 주 월요일에도 신랑이 휴가를 냈었다. 월요일에 우리는 영화를 볼까 고민했지만, 결국 마트를 돌며 아기 식기와 음식 재료를 사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그 날 크게 싸웠다.


  싸움의 원인은 별 거 아니었다. 내가 신발 사이즈가 조금 큰 것 같다며 투덜거린 일이 화근이었다. 결혼기념일을 맞이해서 우리 가족이 같이 신을 신발을 구매했는데, 마트에서 그 신발을 신고 걷자 발뒤꿈치가 헐겁게 빠져나왔다. 내 투덜거림에 어느 순간 신랑은 처음부터 제대로 알아보고 샀으면 문제없지 않았겠냐며 화를 냈다. 나도 모르는 새 신랑을 괴롭히고 있었나 보다. 엄마가 된 후, 처음으로 심사숙고해서 고른 신발이라 기대감이 컸다. 그렇게 받아 든 신발이 내 발에 맞지 않았을 때의 속상함을 신랑이라면 알아줘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아이 없이 신랑과 단둘이 나섰던 월요일 데이트는 싸움으로 끝나고 말았다. 지방으로 파견 중인 신랑은 그 날 저녁 집을 떠났다.


  어쩐지 요즘은 싸움의 빈도가 잦다. 얼마 전에는 내가 폴 바셋에서 캡슐커피를 산 일로 신랑이 내게 장난을 쳐서 싸우기도 했다. 신랑이 예정에 없던 물건인데, 왜 샀냐며 장난스레 물었는데, 나는 버럭하고 말았다. 내가 지금 돈을 벌지 않고 있으니 커피 한 잔을 먹을 때도 신랑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 거냐고 말이다. 사실 신랑은 지출을 줄여야 한다고 외치면서 캡슐 커피를 산 나의 모순을 장난스레 놀린 걸 텐데.


  어쩌면 신랑과 나는 진짜 마음을 숨기고 있는 것 같았다. 조그마한 불쏘시개로 살짝만 찔러도 숨겨둔 마음이 탄로 날까 봐 과민 반응하고 있었다. 우리가 서로의 숨겨둔 마음을 보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 둘의 시간이 없어졌기 때문이 아닐까. 우리는 아이가 태어난 후로, 둘이서만 시간을 보낸 적이 없었다. 조금씩 사라지던 우리 둘의 시간은 이제 당연하게 없는 게 되었다. 신랑의 눈을 마주 보고 이야기를 나눈 적이 언제였던가. 요즘 우리 부부는 아이에게 시선을 둔 채 대화를 했다. 눈은 마음의 창이라고 했는데, 우리는 마음을 보지 않는 겉핥기 대화를 하고 있었다. 나는 서로의 눈을 보는 시간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했다. 내 제안에 신랑은 금요일에 다시 한번 휴가를 썼고, 그렇게 우리 부부 단 둘이 영화관을 갔던 것이다.


  신랑과 함께 영화관을 가는 길에 기분이 묘했다. 영화관은 그저 까맣고 넓은 공간에 스크린 하나 있을 뿐이었는데, 신랑과 그곳에 손을 잡고 들어가니 뭉클한 기분이 들었다. 신랑과 데이트하는 기분을 그동안 잊고 지냈던 것 같았다. 영화가 끝난 뒤에는 햇빛이 들어오는 카페에 앉아서 이야기도 나누었다. 대화 중에 신랑은 시어머님이 한 말을 꺼냈다.


  “어휴- 안돼. 그래도 남자가 벌어야지. 너는 휴직하면 안 돼. 회사에서 나중에 어떡하려고.”


삼 주전, 신랑이 육아휴직을 사용할지, 내가 1년 더 육아휴직을 연장할지를 두고 우리 부부는 고민이 많았다. 당시 시어머님께도 우리가 고민을 이야기했는데, 그때 시어머님이 한 말이었다. 그 전에도 신랑이 지방에 있는 평일에 나는 시어머님과 육아휴직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그때마다 시어머님은 남자가 가정 경제를 끝까지 책임져야 하니 신랑은 휴직하면 안 된다고 이야기하시곤 했다.


  우리 시어머님은 남녀차별 마인드가 강한 분이 아니었다. 내가 보는 시어머님은 항상 열린 마음으로 세상을 보셨다. 시어머님은 신문, 유튜브 등으로 항상 지식을 익히셨고, 시어머님의 생각은 어머님 시대에 갇혀 있지 않았다. 나는 그런 시어머님이 좋았다. 신랑이 지방에 가있는 동안 시어머님은 거의 매일 오셔서 아기를 봐주셨다. 어머님과 아이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남아, 여아의 성향 차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어머님은 성별을 나눌 것이 아니라 성향이 다른 것을 인정해야 하고, 똑같은 일을 할 것이 아니라 다른 일을 해도 그 노고를 동등하게 인정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럴 때면 나는 어머님의 말씀에 절로 고개를 끄덕이곤 했다. 그런데 육아휴직 사용을 앞에 두고는 어머님 의견에 고개를 끄덕일 수만은 없었다. 남자가 가정경제를 책임지고, 아기는 엄마가 보는 게 보다 당연하다. 그리고 두 일은 모두 힘든 일이니, 부부가 서로의 노고를 인정하며 살아가야 한다. 나는 한 템포 느려진 속도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째서인지 어머님의 말이 이해가 되는 것 같았다.


  나는 육아휴직을 일 년 더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아기를 낳기 전에는 출산 후 6개월 뒤면 복직해서 일할 줄 알았다. 엄마가 되기 전까지 나는 일하지 않는 나를 상상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휴직이 1년이 되고, 2년이 되니 덜컥 두려워졌다. 우리 아기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아토피가 심해졌다. 엄마와 떨어지는 스트레스를 추가하지 않기 위해 한 선택이었다. 그런데 사실은 아이는 엄마가 보는 게 당연하다는 암묵적 시선과 내가 좋아하는 어머님에게 아들의 커리어를 단절시킨 장본인지 되고 싶지 않았던 욕심도 내 선택에 영향을 주었다.

 

  내가 육아휴직 연장을 결정할 때, 신랑은 내가 육아휴직을 연장하지 않으면 육아휴직을 쓰겠다고 말했다. 시간이 지난 지금 신랑은 카페에서 시어머님의 말에 부담을 느꼈다는 고백을 했다. 이제 와서 보니 신랑은 육아휴직을 사용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신랑은 아마 회사일에 지친 거겠지. 하지만 당당하게 육아휴직을 사용하겠다고 말할 수 없었던 것 같다. 아마 가장으로서 가져야 할 경제적 책임 때문이었겠지. 요즘 대부분 맞벌이를 하고 있고, 가정 경제의 책임을 남자에게만 묻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아직 남자들이 그 부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 또한 사실인 것 같았다. 실제로 남자가 육아휴직을 사용할 때는 항상 아내가 육아휴직을 쓸 수 없는 이유가 따라붙곤 한다. 나 조차도 신랑이 처음으로 육아휴직을 사용한다고 했을 때, “왜?”라는 질문을 던졌다. 내가 물음표를 던진 이후로 신랑은 육아휴직을 사용하고 싶다는 마음을 숨기기 시작했다.


  여자들에게 유리천장이라면, 남자들에게는 유리 바닥일까. 보이지 않는 경계를 그어 놓고 올라가지도, 내려가지도 못하게 하는 것 같다. 어떤 보기는 선택할 수 있을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손을 뻗어 선택하려면 큰 용기가 필요하기도 하다. 결국 선택하지 못하는 사람도 많다. 자신은 집어 들 수 없는 보기를 당연하게 들고 있는 사람을 보면 어떤 기분이 들까.


  예전에 청바지를 유니폼으로 사용하던 어느 항공사의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승무원들이 혈액순환과 같은 건강 문제를 이유로 유니폼에 불만을 제기했다는 내용이었다. 그 기사에 이런 댓글 달렸다. 바지 입고 싶다고 난리 쳐서 바지를 입게 해 줬더니 이제 바지가 불편하다고 한다며, 그렇게 불편하면 다시 치마를 입으라며 여성들을 비난하고 있었다. 난 그 댓글에서 꽤 오래 눈을 떼지 못했다. 치마냐 바지냐의 문제가 아니라 선택을 강제한 것이 문제인 것 같았다. 그 댓글을 단 사람은 어쩌면 치마와 바지를 선택해서 입을 수 있는 여자가 부러웠던 남자였을지도 모르겠다.


  우리 부부는 어쩌면 서로 부러운 마음을 옹졸하게 표현하고 있었던 것 같다. 내 선택지에는 너무 멀리 있어 희미한 보기가 상대방에게 바로 앞에 놓여 있으니 말이다. 나는 경력단절 없이 회사원 생활을 이어가는 신랑이, 신랑은 회사 스트레스를 잠시 내려놓은 내가 부러웠나 보다. 같은 선택지를 가진 사람이 세상에 몇이나 될까. 우리는 모두 다른 상황과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기에 선택지 또한 모두 다를 수밖에 없을 거다. 보다 선택하기 쉽게 가까이 있는 보기부터 보다 멀리 있는 보기까지 그 순서도 개수도 다르겠지. 보이지만 선택할 수 없는 보기가 나한테만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알면, 조금은 덜 억울한 마음이 들 수 있을까.


  우리 부부는 서로 가지 못한 길을 다독이며 카페를 떠나 아기를 데리러 갔다. 오랜만에 패딩이 아닌 코트를 입고 아기를 안은 채 신랑과 나란히 걸었다. 찬바람이 누그러든 겨울 날씨 속을 조금 걷다가 신랑이 아기를 데려가 안았다. 우리는 아기를 안고 걸으면서 서로 눈을 마주쳤다. 한결 편안해진 웃음을 띄고 집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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