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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나무 Nov 21. 2020

수능 시험, 그날이 또 오는구나.

별별 사례...

수학능력시험.


이 별난 시험은 대한민국에 비행기도 착륙하지 못하고 하늘을 빙빙 돌게 한단다. 듣기 평가에 혹시 방해가 될까 봐 이런 진풍경이 벌어진다는데, 수험장 안의 열기와 긴장감은 어떨까.

수능 듣기평가 시간 갈 곳 잃은 비행기들

보통 성인들은 학력고사든 수능이든 평생에 한두 번 정도 이런 대입 시험장을 경험한다. 하지만 나처럼 평가가 주요 업무인 교사들은 매년 수능 시험장에서 극도로 긴장한 수험생들을 마주한다.


재작년에도 작년에도 나는 감독관 명찰을 달고 차가운 새벽바람을 가르며 컴컴한 수험장으로 들어갔다. 해도 뜨기 전인 시각에 아침밥도 거르고 감독관 교육을 받고 나면 엄청난 강도의 감독 업무가 이어진다.


가만히 서 있는 게 뭐가 그리 힘든데?라고 태클을 거는 사람이 있으면 딱 한 시간만 "체험 삶의 현장"을 시켜보고 싶은 욕구가 올라온다. 혹여 구두 소리가 난다거나 기침을 했다는 민원을 받을까 봐 숨소리도 죽이고 가만히 서있는  건 일종의 고문에 가깝다는 생각도 한다.


80분, 100분, 120분... 이런 시험 시간을 긴장감 속에 계속 서 있다가 쓰러지는 사례도 실제로 많다. (많은 교사들이 수능시험 후에 긴장감이 풀리면서 병이 나서 출근을 못하기도 한다. 작년에는 필자도 과로로 열이 떨어지지 않고 혈소판 수치가 떨어져 병가까지 냈는데 그 시작이 수능 감독이었다.)


힘든 시험 감독을 하고 나서 가벼운 마음으로 시험장을 나설 수 있으면 좋으련만, 고사장마다 안타까운 사례들이 많아 씁쓸하고 걱정되는 마음으로 귀가한 적이 많다.


사례 1. 또 휴대폰. 제발 제출하라니까.  


부정행위를 하기 위해 제출하지 않았다면 당연 책임질 일이지만, 의도하지 않게 미제출하는 사례가 끊임없이 발생한다. 차가 막힌다거나 전날 긴장한 탓에 잠을 못 이루다가 새벽에 잠이 들어서... 이유도 다양한 지각생 영상은 수능날 저녁마다 반복되는 올드한 뉴스거리다. 이렇게 중요한 시험에 경찰차나 오토바이를 타고 나타나는 학생이 매년 있다는 게 신기하지만, 고사장마다 헐레벌떡 입실 마감 직전에 들어오는 학생들이 꼭 있다.

출처 : 연합뉴스

지각한 학생은 정신이 없다. 이미 전자기기를 모두 제출하고 앉아서 차분하게 대기하는 다른 수험생들과 달리, 뒤늦게 들어와서 헐레벌떡 소지품을 꺼내고 자리를 찾아 앉기에 바쁘다. 이 시각은 감독관도 가장 정신이 없는 시간이다. 결시자 파악을 하고 수험생 유의사항을 안내하고 시험지 수량 확인도 하고... 등등.


경험이 많은 감독관은 지각생을 발견하는 순간, 전자기기부터 제출하고 자리에 앉으라고 안내하지만, 사람이 하는 일이라 미처 챙기지 못할 때가 있다. 이미 전자기기 수거는 끝난 시점이므로 지나가고, 수험생 본인도 주머니 속에 휴대폰이 있다는 사실을 깜박한 채 정신없이 시험을 본다. 한창 시험을 보다가 '아뿔싸! 휴대전화를 미제출했구나!' 뒤늦게 인지하고 제출하는 순간, 혹은 진동이 울려 적발되는 순간 부정행위로 간주된다. 


요즘은 무선 이어폰처럼 블루투스 기능이 있는 전자기기 같은 것을 주머니에 넣어놓고 잊고 있다가 적발되는 사례도 늘고 있다. 대부분 학생들이 뒤늦게 인지하고 '지금이라도 내야겠다'라고 생각해서 스스로 꺼내 놓은 경우이다. 차라리 뒤늦게 전자기기가 있다는 것을 인지했다면 제발 스스로 꺼내놓지 말라고 부탁하고 싶다. 미리 제출하든가, 타이밍을 놓쳤다면 걸리지 않게 조심히 시험을 치르면 될 일인데 고해성사를 왜왜왜 시험 중간에 하는지 안타까워서 눈물이 날 지경이다.


사례 2. 학교 내신 시험처럼 쉬는 시간에 공부하다가.


학교 내신 시험을 치를 때는 학생들이 공부하던 문제집이나 책을 책상 서랍 안에 넣는 경우가 종종 있다. 내신도 수능과 똑같이 시험장 반입 물품을 규정하긴 하지만,  서랍에 책이 있다는 이유로 부정행위로 간주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하지만 수능은 다르다. 부정행위의 의도가 없더라도 시험장 반입 불가 물품이 서랍에 있으면 절대로 안 된다. 하지만 수험생 중에 점심시간에 보던 요약 문제집이나 일반 책을 별생각 없이 서랍에 넣는 경우가 있다.


작년 감독하던 교실에서 있던 일이다. 외고 3학년 학생이었으니 정시가 매우 중요한 학생이었을 텐데. 긴장을 달래려고 그랬는지, 책이 정말 읽고 싶었는지 수능과 아무 관련이 없는 소설책을 점심시간에 읽었나 보다. 당연 부정행위의 의도는 없었다고 생각한다. 감독교사가 입실하자 그 책을 가지고 다시 앞자리나 복도로 걸어 나가 제출하기가 번거로웠나 보다. 아니면 학교 시험처럼 습관적으로 시험이 시작되니 책을 서랍에 넣었는지도 모른다.  


무사히 시험이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그 학생의 뒷자리에 앉아서 시험을 보던 수험생이 감독관에게 이 학생을 신고했다. 시험장 반입 물품을 소지한 채 시험을 보았다고 민원을 넣은 것이다. 감독관이 자리를 확인하자 정말로 소설책 한 권이 서랍 안에 있었고, 그 학생은 점심시간에 읽던 책을 넣어두었다고 고백했다. 부정행위다.


고사본부로 인계되어 부정행위를 인정하는 서류를 작성하고 돌아오는 학생은 엉엉 울고 있었다. 덩치도 큰 남학생이 소리 내어 우는 모습에 마음이 무너졌다. 내 아이가, 내 제자가 이런 어이없는 실수를 했다면... 그동안 고생한 것이 물거품이 되었구나. 이 학생 어쩌나. 내신 성적은 다행히 괜찮았으려나. 신고한 수험생은 이 학생을 경쟁자라고 여긴 걸까. 생각이 끊이지 않았다. 물론 부주의한 수험생 탓인 것은 인정한다.



사례 3.  4교시 탐구 과목 시험지, 가 왜 거기서 나와~


부정행위가 가장 많이 적발되는 교시라고 한다. 탐구 영역 시험을 볼 때는 응시 과목의 시험지만 꺼내야 한다. 나머지 문제지는 모두 문제지 봉투에 넣어 의자 아래 두었다가 2분 동안 다음 과목의 시험지로 교체를 하도록 되어 있다. 이 연습을 모의고사 때도 여러 번 한다. 절대 다른 과목의 시험지를 꺼내 놓지 말라고 확인하고 또 확인한다.


그런데도 긴장한 탓에 시험지를 잘못 꺼내는 사례가 종종 나온다. 아예 과목을 잘못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본인 과목의 시험지 뒤에 다른 과목 시험지가 딸려서 나오는 경우다. 감독관은 돌아다니면서 선택과목과 시험지가 일치하는지 확인한다. 눈으로만 확인할 경우 학생의 선택과목 시험지가 책상 위에 놓여 있어 제대로 꺼냈다고 생각하고 지나칠 수 있다.


한창 시험을 보던 수험생이 손을 들고 질문한다. '어머, 제가 시험지 꺼낼 때 이 시험지가 딸려 왔어요. 지금 내려놓을까요?' (아~~~~ 제발 이러지 말라고. 2분 안에 손으로 만져서 꼼꼼히 확인하든가, 중간에 알았다면 그냥 시험 보다가 교체할 때 집어넣든가.) 선택하지 않은 과목의 시험지가 책상에 있었다는 것을 감독관이 인지한 순간, 부정행위다. 


이 질문을 하려고 손을 번쩍 든 학생을 발견한 감독교사가 기겁을 하고 그 학생의 다른 과목 시험지를 아래로 대신 던져줬다는 동료 교사의 이야기도 들은 적이 있다. 다른 수험생이 혹시나 그 장면을 보지 않았을까, 감독관을 오히려 신고하면 어쩌나.. 시험 후에도 밤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한다.


다른 수험생이 다 듣고 있는 곳에서 공개적으로 실수를 말해 버리면 학교 안에서는 다 용서된다. 하지만 수능 시험장은 다르다. 그 학생의 실수를 봐주는 순간, 걷잡을 수 없이 일이 커져 버린다. 시험의 공정성 측면에서 봐줄 수도 없는 일이다.


작년에도 250 건이 넘는 부정행위가 적발되었다고 한다. 고의를 갖고 대리시험을 본다든가 커닝을 하는 사례는 제대로 잡아내야겠지만, 안타까운 부정 행위 사례는 제발 그만 나왔으면 한다.


그동안 고생한 수험생들, 제자들 모두 실수 없이 모두 좋은 결과가 있기를 응원한다.  

출처 : 교육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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