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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색 형광펜 Dec 07. 2021

크리스천이라면 들은 뻔한 이야기 but 필요한 이야기

제2장 지금 겪는 시련과 고민은 잠시 지나갈 소나기

이번에 브런치에 쓸 내용은 "기"로 끝나는 말 12가지를 정리해서 쓰려고 하는데 첫 번째 큰 꼭지의 제목이 "내 경험과 체험을 바탕으로 한 나만의 이야기"였고 두 번째는 "지금 겪는 시련과 고민은 잠시 지나가는 소나기"라는 제목의 글입니다. 


① 시련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     

시련(試鍊)이란 영어로 “ordeal”이라고 합니다. 이 단어의 어원을 찾아보면 'dealt out by the gods'라는 개념에서 '신이 인간에게 시키는 것은 매우 힘든 것'이라는 그림에서 '호된 시련, 고된 체험'의 뜻으로 쓰입니다. (신택철의 영어 어원 이야기 中) 비슷한 말로는 어려움, 고난 등이 있어요. 살면서 크고 작은 또는 많고 적은 시련을 겪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은 삶은 없습니다. 시련의 두 번째 사전적 의미는 “의지나 사람됨을 시험하여 봄”이라고 합니다. 중요한 사실은 시련만으로 이루어진 삶을 사는 사람은 없다는 것입니다. 


저 또한 살면서 크고 작은 시련을 겪었습니다. 다른 분들이 보기에는 ‘그것이 무슨 시련이냐?’고 할 수도 있고 ‘정말 힘든 시련이었겠구나!’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있을 것입니다. 저는 살면서 스스로 나락에 떨어질 만큼 큰 시련은 아직 겪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스스로 굶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면 끼니를 해결할 방법을 찾기보다는 그 순간과 배고픔을 참아내는 성격이기도 합니다. 중고등학교 때 여름에도 더운 곳에서 겨울에는 추운 곳에서 지낼 수밖에 없는 날들을 지낸 적도 있었지만 정말 너무 힘들다고 느끼지 않았습니다. 지나고 보니 결국 지나가더라고요. 그렇다고 오늘 그리고 내일 시련이 오지 않을 것은 아니죠.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시련이 영원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과 확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많이 존경하고 저에게 독서와 설교로 선한 영향력을 주신 강준민 목사님은 이런 말을 전해주셨어요     

“사건보다 중요한 것은 사건에 대한 해석이다.”      


바다는 비가 와도 물이 넘치지 않지만 그릇은 비가 오면 물이 넘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결국 그 비는 그치게 됩니다. 여러분 바다 같은 성품을 지니도록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포용하고 담아줄 수 있는 마음의 깊이와 넓이를 소유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시련이라 느꼈던 1년 전, 5년 전의 일들은 지금 떠올려보면 현재 그것이 계속되거나 동일하게 큰 아픔과 괴로움을 주는 일인 것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지구 상에서 가장 건조한 곳으로 알려져 있는 아타카마 사막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이곳은 남아메리카의 칠레에 북쪽에 있고 인류가 측정한 이래 한 번도 비가 내리지 않는 아주 건조한 땅입니다. 그런데 ‘슈퍼 엘니뇨 현상’으로 12시간 동안 7년간의 강수량에 달하는 비가 쏟아졌습니다. 그리고 나니 그 땅은 온통 핑크빛으로 물들었습니다. 폭우 때문에 그곳은 꽃으로 뒤덮은 땅이 되었습니다. 

여러분의 심령과 속사람이 말라 있습니까? 사막처럼 황폐하고 건조한가요? 하나님께서 비를 주실 것입니다. 충분히 적셔 주실 것입니다. 꽃이 피게 될 것입니다. 아름다워질 것입니다. 계속 사막이었고 앞으로도 사막일 듯한 아타카마 사막도 꽃밭이 된 것처럼 믿는 자들에게는 시련이 영원하지는 않습니다.    

 


요즘 군대에서는 유격 훈련을 하기 전에 유격 체조를 과하게 하지 않습니다. 2004년도에 유격훈련을 받았던 저는 체조도 반복구호 때문에 몇 천 번씩 한 적도 있었고 개인적으로는 너무 힘들어서 나무 뒤에 가서 구토도 하고 그 후에도 다시 제자리에 와서 마저 팔 벌려 뛰기 체조를 했던 기억도 납니다. 그 당시 얼차려를 받을 때 둥글게 선 후 동료 후보생의 양다리를 내 어깨에 올리고 내 다리를 내 옆 전우 어깨에 올려 엎드려뻗치는 동작의 얼차려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정말 너무나도 많은 횟수의 체조를 한 다음이어서 서 있기조차 힘든 상황이었는데 정말 안타깝게도 우리 중대에서 가장 덩치가 큰 동기(190cm가량의 키에 95kg 정도의 몸무게)의 다리를 제 어깨에 올려야 했습니다. 너무 무거웠고 정말 힘들었습니다. 죽을힘을 다해 그 상황을 버텨냈습니다. 다른 동기들도 그날 저녁 괜찮냐고 저의 안부를 물었습니다. 하지만 그 다음날 훈련 때 저는 큰 위로를 받았습니다. 마침 그 훈련은 전봇대 만한 나무를 들어 어깨와 어깨로 팔을 이용해서 이동시키는 ‘목봉체조’라는 훈련이었습니다. 6~7명가량이 한 그룹을 이루어서 통나무를 들어 양 어깨를 교차하며 옮기는 체조였습니다. 그런데 저는 양팔을 제일 높이 들어도 나무에 손이 닿지 않았어요. 저는 170cm가 안 되는 신장인데 제가 속한 그룹에는 180cm 넘는 동료도 둘이나 있었고 나머지 동료도 저보다는 키가 훨씬 컸으니까요. 정말 하나도 힘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들키지 않게 웃으며 구호만 크게 해서 그 훈련을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동료들은 정말 무거웠고 힘들었다고 했습니다. 그 순간만큼은 다들 저를 부러워했습니다. 물론 유격훈련이 모두 끝난 다음에는 체력적으로 한계를 극복했다는 성취감이 아주 오래갔고 야전으로 와서 소대장으로 중대장으로 복무할 때도 그 경험은 저의 큰 자산이 되었습니다.       


정리하면, 시련의 특징과 그것을 대할 때 마음가짐과 태도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이 시련이 결코 영원하지 않다. 

둘째, 시련의 자체보다 중요한 것은 시련을 바라보는 나의 시각과 대하는 나의 태도이다. 

셋째. 시련이 지나고 나면 오히려 그 시련은 나에게 유익이 되고 나를 성장케 하는 거름이 되는 경우가 많다. 는 것입니다.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기도하며 삶에 적용하기     

1. 살면서 겪은 가장 큰 시련은 무엇이었나요?

2. 그 시련을 통해 얻은 메시지와 경험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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