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흥미와 재능을 극대화해서 내가 오를 꿈의 꼭대기
"내가 오를 꿈의 꼭대기는 어디인가?"
많은 사람들이 꿈에 대해서 이야기를 합니다. 물론 꿈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지요. 요즘에는 도리어 꿈에 대해서 이야기하기를 꺼려하는 경향도 있는 듯합니다. 청소년이 싫어하는 질문 중에 “너 꿈이 뭐야?”라는 물음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제가 썼던 3권에 책에는 모두 꿈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있습니다. 그만큼 저는 꿈이 사람에게 있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또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꿈이 있어야 방향이 있고 그에 대한 생각과 마음이 있으며 나아가 행동까지 있습니다. 꿈이 없다면 인생의 방향을 정할 수가 없고 생각과 마음을 바르게 할 수가 없으며 무의미한 행동으로 삶을 보내게 됩니다. 살아가는 목적을 알고 목표를 정해야만 오늘 하루, 1분 1초를 거기에 부합되도록 알차게 보낼 수 있게 되는 것이죠.
제 아들이 막 네발자전거의 보조바퀴를 떼어내고 두 발 자전거를 탈 때였습니다. 8살 때 두발자전거를 탔는데 뒤에서 잡아주고 몇 번 탄 다음에 어느 정도 균형을 잡고 탈 때 즈음, 뒤에서 잡고 있다고 이야기만 해주고 따라가기만 했습니다. 그러더니 두발자전거를 타게 되었어요. 그 보조바퀴를 떼어낸 자전거가 몸이 커지면서 다소 작아지자 키에 맞는 좀 더 큰 자전거를 사주기로 하였습니다. 우리 집에서 자전거 가게까지는 약 버스정거장으로 두 정거장 가량 떨어진 곳에 있었는데요. 아직까지 그만한 거리를 일반도로에서 타본 적 없는 아들이었지만 자전거를 새 거로 사준다는 말에 저를 따라오기 시작했습니다. 차가 오면 멈추고 사람도 피하면서 곧잘 따라왔습니다. 자전거 가게에 도착할 때까지 그동안에 안 가본 길, 안 가본 거리를 자전거로 타게 된 것이죠. 제 아들이 왜 그리고 어떻게 처음 가본 길을 또 그만큼 먼 거리를 가게 되었을까요? 맞습니다. 새 자전거를 보러 사러가는 목표가 생겼기 때문입니다. 그 자전거 가게에 자전거가 없었다면 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차를 피하는 수고도 하지 않았을 것이고 사람을 조심하는 행동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평소처럼 아파트 놀이터에서 조금 타는 정도로 끝났을 것입니다. 하지만 더 크고 더 좋은 자전거가 그 가게에 있다는 것이 우리 아들을 그 수고로움을 견디게 한 것입니다. 단순히 자전거를 예로 들었지만, 인생에 있어 꿈이 있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인생의 앞날에 꿈이 있어야 오늘 하루를 거기에 맞추어 보낼 수 있는 동력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그 목적지, 목표점을 향하여 움직일 때 출발점과 도착점은 각 사람마다 다릅니다. 왜냐하면 사람마다 태어난 환경도 다르고, 하고자 하는 바도 다르고 이루고자 하는 바도 다르기 때문이죠. 남이 어떤 것을 이루었다고 해서 나도 그것을 이루어야 한다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그것은 내 꿈이 아니기 때문에 이루지 못할 확률도 높고 설령 이룬다고 하여도 그 성취감이 나에게 100% 다가오지 않습니다. 여기에서 꿈에 특징을 한 가지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첫째, 꿈은 바로 “나”와 연관이 아주 깊어야 합니다. 즉, 내가 하고 싶어 하고 내가 이루고 싶어 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죠. 저는 군 복무를 장교로 했지만 영관급 장교가 되고자 하는 마음이 결코 없었습니다. 더구나 장군이 되고자 하는 마음도 없었어요. 제가 소대장, 중대장을 할 때 가지고 있는 마음가짐은 대원들을 다독이고 그들이 무탈하게 전역하는 것을 돕는 것이었습니다. 전투력 상승 부분은 부사관들이 잘 맡아주었고요. 저는 대원들의 고민과 이야기를 듣고 제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그들을 돕는 역할을 했습니다. 휴가 중에 집을 방문을 한다든지, 지인들에게 면회를 오라고 부탁을 한다든지, 병원에 같이 간다든지, 외출·외박 시에 같이 가거나 약간의 용돈을 주는 것을 했습니다. 진급하고자 하는 동기들이나 다른 위관급 장교들은 훈련을 엄청나게 준비하고 앞장서고 성과를 냈지만 저는 그렇지 않았어요. 다행히도 저는 전투근무지원 중대의 장이었기 때문에 부사관들의 도움을 정말 많이 받았습니다. 그렇기에 가능했고 저 또한 무사하게 전역을 했습니다. 장군이 되어 국방력 향상에 보탬이 되고 앞장서고자 하는 사람이 되려는 다른 위관급 장교들과 달랐습니다. 그것은 그들의 목표였고 저는 그 목표에 공감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제가 가진 꿈과 그리고 제가 가지고 있는 재능과 관련이 없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잘못 인지하는 것이 있는데 “꿈=장래희망”이라는 공식에 갇혀 있는 것입니다. 장래희망은 꿈의 한 부분입니다. 선생님이 장래희망이라고 해서 훗날 선생님이 되었다면 꿈을 이루었으니 인생을 마감하는 것은 아니죠. 또 꿈은 하나여도 되지만 여러 개여도 상관없다는 것입니다. 꿈은 남은 인생의 방향을 정해서 나아갈 수 있도록 하는데 아주 사소한 것도 꿈이 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버킷리스트를 적고 그것을 이루었는지 여부를 확인합니다. 올해의 버킷리스트가 내 꿈이 아닌가요? 아닙니다. 내 꿈의 아주 일부분입니다. 꿈은 여러 개여도 상관없습니다. 중요한 사실은 그것들을 하나씩 하나씩 성취를 해나갈 때 우리의 삶은 더욱 풍성해진다는 점입니다.
성경 빌립보서 3장 14절을 보면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여기서 만약에 푯대와 상을 생략한다면, 우리는 어디로 달려갈 수 있을까요? 분명한 것은 푯대가 있어야 방향이 서고 상이 있어야 멈추지 않고 달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꿈꾸고자 하는 꼭대기가 다른 사람들에 비해 낮다고 낙담하지 마십시오. 다른 사람들은 벌써 여러 꼭대기를 정복했다고 부러워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여러분만의 도달해야 할 꼭대기가 있고 정점들이 있을 것입니다. 거기에 시선을 고정하고 오늘 하루 달려가시기 바랍니다.
기도하며 삶에 적용하기
1. 당신의 현재 꿈은 무엇인가요?
2. 그 꿈을 위해서 무엇을 하고 있으며 그동안 무엇을 하였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