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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하트 Jul 22. 2023

엄마아빠 앞에선 나는 아직도 애.

친정살이 22일 차

친정집에 지내면서 도움도 많이 받고 감사한 일이 많다. 또한 불편하고 싫은 일도 많다. 내가 바꿀 수 없고, 바꿀 수 있다 한들 그럴만한 시간적, 마음적, 체력적 여유가 없는 나는 혼자서 귀를 쫑긋 세우기도, 귀를 두 손으로 막기도, 혼자 마음속으로 삭이기도, 눈물로 흘려보내기도 한다.


어제는 이런 일이 있었다.

퇴근하고 부리나케 집으로 오니 엄마, 아빠, 언니, 조카 4명이 내 딸 한 명을 돌보고 있었다. 내가 없으면 내도록 운다고 하니 몇 명이 매달릴 수밖에... 오자마자 옷도 못 갈아입고 엄마가 준비해 준 밥을 먹이고, 씻기고, 놀고, 재웠다. 힘차게 놀아주고 싶은데 나도 퇴근하고 오니 바람 빠진 풍선처럼 흐물흐물 놀아줘서 미안한 맘으로 자는 딸을 보고 있었다.


엄마는 저녁약속이 있어서 차를 타고 나가셨는데 주차가 잘못되었는지 아빠 폰으로 차 빼라는 전화가 왔다. 근데 그분이 술이 취해서 소리를 지르고 욕을 아빠한테 했나 보다. 집에 가만히 있다가 그런 전화를 받고 화가 난 아빠는 바로 엄마한테 전화해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셨다. 있는 힘껏 성질을 낸다는 게 이런 거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고함을 지르셨다. 방에 있다가 깜짝 놀란 나는 그렇게까지 화낼 일이냐고 조심스레 말하니 “화낼 일이지 이게 화 안 낼 일이가”하시는 아빠 앞에서 아무 말하지 못하고 방으로 들어왔다.


방에 들어와서 아빠가 화났으니 술을 드실 거 같고 술을 먹으면 또 엄마는 들어오시자마자 술 병을 확인하시겠지. 생각만 해도 그냥 눈 감고 귀를 막고 싶었지만 아빠가 술을 드시는지 방 안에서 귀를 쫑긋 세우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아빠는 맥주잔에 소주를 따르고 계셨고, 조심스레 너무 많이 먹지 말하고 나는 방으로 들어왔다. 9시도 되기 전이었지만 도망치듯 잤다. 오래간만에 일해서 너무 피곤했는데 이 피곤이 바로 잠들게 해줘서 고마웠다.



그 이후로도 엄마아빠 대화만 하면 내가 좀 과하게 의식하게 된다. 싸우는 게 아니라 그냥 대화할 뿐인데 서로에 대한 어투가 다정하지가 않기에 내 귀에는 다 거슬린다. 마음 같아서는 뜯어고치고 싶은 부분이지만 내 영역 밖의 일이라 그냥 조용히 방으로 들어와 버린다.


나는 성인이고, 부모가 되기도 해서 엄마아빠에 크게 흔들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아직도 애인가 보다. 엄마아빠가 싸우면 어린아이처럼 조마조마하고, 이불속으로 들어가 귀를 막고 눈을 감는다.



엄마아빠를 반면교사 삼아 신랑에게 더 다정하게 말하게 된다. 내가 느끼는 조마조마함을 내 딸은 조금이나마 덜 느낄 수 있도록 내가 할 수 있는 노력을 한다.





엄마아빠가 서로에게 다정했던 모습이 그립다.





















이 글을 발행하기 전 엄마아빠 앞에서 쓴 글을 읽었다. 엄마는 눈물을 뚝뚝 흘리셨고, 아빠는 멋쩍으신지 폰으로 유튜브를 보셨다. 눈은 폰을 향해 있지만 귀는 나에게 향해 있는 게 느껴졌다. 내가 엄마아빠 대화할 때 그러는 것처럼. 나도 읽으며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고 다 읽은 후에는 약간은 어색한 침묵이 몇 초 흘렀다. 그때 마침 낮잠에서 깬 딸이 눈치 있게 깼고, 그렇게 세 명은 각자 자리로 다시 흩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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