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살이 108일 차
친정에 들어오기 전에 많은 다짐을 했었다.
내가 청소해야지.
가끔씩은 반찬 내가 해야지.
최소한 딸 먹을 거는 내가 만들어야지.
같이 장 보러 가서 내가 계산해 드려야지.
엄마아빠랑 놀러 다녀야지.
다정한 딸이 돼야지.
엄마아빠 마음 공감 많이 해드려야지.
매일 운동해야지.
책도 읽고 글도 꾸준히 써야지.
이러한 다짐을 했고
충분히 다 잘 지키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내 그릇대비 욕심이 컸다.
내가 청소하면 엄마 성에 안 차니 아예 안 하고,
내가 반찬 만들면 시간도 오래 걸리고 딸도 나를 찾으니 엄마가 하시는 게 효율적이고,
딸 먹을 것 또한 마찬가지고,
시간이 안 맞아 같이 장 보러 가기 힘들고,
놀러 다니기엔 일하랴, 육아하랴 내 체력이 없고,
다정하기보단 퉁명스러운 딸이 되어가고,
말 안 해도 워킹맘인 나를 알아주길 바랐고,
운동과는 점점 멀어져 가고,
퇴근하고 집 오면 애 재우고 잠들기 바빴다.
친정살이를 한 지 세 달 반.
직장생활을 잘 적응해서 즐겁게 다니고 있고,
딸도 어린이집 적응 잘해서 즐겁게 다니고 있다.
이렇게 잘 지내는 이유 뒤에는 든든히 뒤에서 도와주시는 부모님 덕분이 크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딸에게 좋은, 괜찮은 엄마가 되기 위해 노력을 많이 한다. 딸 입장에서는 안 들어봐서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가 생각하기에 그런 엄마가 되기 위해. 가끔씩은 좋은 엄마가 되어감을 스스로 느끼기도 한다.
그러나 이 마음과 동시에 마음 한 편엔 죄책감(?), 미안함(?) 비슷한 감정이 올라온다. 자식으로서 부모에게는 그런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나 자신이 부끄럽다. 흔히들 자식에게 하는 거 반만 부모에게 하면 효녀, 효자라는데 딱 찔리는 말이다. 이 글을 적으며 사실을 인지하지만, 하루아침에 쉽게 바뀔 것 같지는 않아서 마음이 무겁다.
가끔씩은 부모님이랑 말할 땐 퉁명스럽다가 딸한테는 세상 다정한 말투로 말하는 나를 보며 흠칫 놀랄 때가 있다. 놀라움 뒤에는 머쓱한 감정이 뒤따라온다. 그래서 친정집이 아닌 신랑이랑 사는 집이었다면 더 오버스럽고 재미있게 놀 수 있는데 그 노력을 접어두게 된다. 그러면서 부모님에게 미안한 마음이 딸에게도 번진다. 미안한 마음이 마음속에 번지면 ‘내가 뭐 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 또 마음이 무겁다.
분명 고마움도 미안함 못지않게 많이 느끼는데 체감상 미안함이 왜 이렇게 크게 느껴지는 건지...
이렇게 나는 요즘
자식으로서와 부모로서의 그 중간 자리에서
고마움, 미안함, 부끄러움 등 다양한 감정을 느끼며 지내고 있다.
그래도 나 잘하고 있다고
토닥토닥해주는 신랑의 말에 힘을 얻어서
무거운 마음을 가다듬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