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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포아빠 Aug 04. 2019

미국, 사람 값(?)이 비싸다

미국 겉핥기_여섯 번째

학교 연구실에서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차에 올라타는 순간 지나가던 학생이 나를 보며 차에 이상이 있다고 알린다. 차에서 다시 내리니 그가 손가락으로 타이어를 가리킨다. 타이어에 펑크가 난 것이다.


한국도 아니고, 미국에서 타이어 펑크라니. 더욱이 이 때는 추운 겨울날이어서 그 낭패감이 더했다. 도로 위에서 일이 벌어진 게 아니라, 주차장에서 발견했으니 그나마 다행이었을까. 도움이 필요하냐는 친절한 학생의 물음에 어차피 긴 대화가 이어지지 못할 거라는 자격지심으로 애써 웃으며 괜찮다고 답해 보내고, 짧은 시간 이걸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머리를 굴렸다.



내가 타이어 펑크라는 사건 앞에 낭패감을 느끼고 당황했던 것은 이런 일이 있을 때 한국에서는 전화 한 통에 보험사에서 제공하는 무료 서비스로 문제를 해결했기 때문이다. 타이어를 스스로 교체해본 적이 없었던 것은 물론 해볼 생각도 안 해 본 '타이어 무능력자'였던 거다.


이 나이 먹도록 타이어 하나 스스로 갈지 못하는 한심함을 자책하면서도, 결국 내가 내릴 수 있는 결론은 나 스스로 스페어타이어로 교체하는 것이었다. 나를 도와줄 사람도 없었고, 도와줄 정비사를 부를 방법도 몰랐을뿐더러 그렇게 사람을 부르는 일이 비용이 많이 든다는 것에 부담이 있었기 때문이다.


난생처음 해보는 일이라, 차량 사용설명서까지 꺼내서 하나하나 시키는 대로 해보는 수밖에 없었다. 장갑도 없어서 차갑게 얼어가는 손을 달래가면서 기구를 이용해 차를 들어 올리고, 펑크 난 타이어를 제거하고, 스페어타이어를 장착했다(사실 이날 스페어타이어가 차 어디에 있는지, 기구들은 어디에 있는지도 난생처음 알았다. 보통 트렁크에 있는 물건들이 내가 타던 차에는 운전선 뒤 라인에 있었다).


정말 기적같이(?) 매뉴얼이 시키는 대로 했더니 차량이 들리고, 타이어가 빠지고, 타이어 나사가 조여졌다. 천신만고 끝에 스페어타이어를 달고 천천히 달려 동네 정비소에 가서 정식으로 타이어를 교환할 수 있었다.


단순히 타이어 하나 갈아보는 거였지만, 생활 속에서 만난 미국은 웬만하면 자기 일을 스스로 하는 곳이었다. 왜냐하면 스스로 하지 않으면 그 비용이 비싸기 때문이다. 너무 쉽고 저렴하게 각종 생활 불편을 해소할 수 있는 한국이 편하다면 편했지만, 사람이 제공하는 일의 대가가 너무 저평가되어있다면 그 사회가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반영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미국은 식재료가 싸다. 하지만, 그걸 조리해서 서빙해서 파는 식당에서 밥을 먹는 비용은 부담스럽다. 팁도 줘야 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직접 음식을 해 먹는다. 물건 말고, 서비스라 일컬어지는 것을 제공받을 때는 비용이 많이 든다.



집수리가 필요한 일이 발생해도 마찬가지다. 기숙사나 아파트에 사는 경우에는 관리사무소에서 관리를 해주지만, 많은 경우 주택에 사는 미국 사람들은 페인트 칠도, 수도꼭지 교체도 스스로 하고 타이어 펑크보다 더한 차 고장도 웬만하면 스스로 해결한다.


HOME DEPOT, LOWE'S와 같이 목재부터, 욕실, 주방 시설 등 집과 관련한 모든 것을 판매하는 마트가 동네마다 있다. 사람들은 사진처럼 스스로 자기 생활에 필요한 일을 하기 위해 재료를 산다. 재료를 사지 않고 서비스를 사는 일은 많지 않은 것 같았다.


'자기 일은 스스로 해라. 그렇지 않으면 정당한 대가를 지불해라. 그래야 그 일을 업으로 삼는 사람도 먹고 살 것이다'라는 암묵적이지만 확실한 사회적 합의가 보였다. 


그렇다고 미국이 모든 노동자에게 임금을 안정적으로 보장하거나 같은 일을 하는 남녀 간의 임금이 동등한 것은 아니다. 오바마 대통령이 의회 연설에서 “그 돈으로 살 수 있으면 당신들이 살아보라”라고 최저임금 인상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남녀동등임금법'이 제정되었으나 현실은 여전히 갈길이 먼 것에서 보듯 미국은 자본주의가 가지고 있는 불평등의 문제를 그 어느 나라보다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그럼에도 타인의 기술을 제공받아 내 생활의 문제를 해결할 때, 타인의 시간과 노동력을 이용해 안락한 시간을 누릴 때는 비싸다 싶을 정도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것은 사람에 대한 예의가 바탕에 깔려있고, 제공하는 자와 제공받는 자가 갑과 을이 아니라 정확하게 주고받는 동등한 관계라는 것을 서로가 인정하고 지키는 모습으로 보였다.


사람의 값(?)에 대한 문제는 단순히 돈의 문제가 아니라 그 사회가 사람을 어떻게 생각하고 대하는가의 문제일 것이다. 미국은 사람을 쓰려면 돈이 많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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