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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포아빠 Aug 19. 2019

국회의사당에서 간첩(?)을 잡을 줄이야

간신히 여의도 서식기_열 번째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국회의원은 국회의 중심이다. 국회는 국회의원으로 구성되기 때문이다. 이런 하나마나한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오늘의 주제인 의원총회 이야기를 하기 전에 정당의 구조를 간략히 살펴보는 게 필요할 것 같아서다. 무소속인 국회의원을 제외하고 국회의원은 대부분 정당에 소속이 되어 있다. 정당의 활동은 크게 국회의 활동과 국회 밖의 활동으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정당 소속 국회의원들과 당직자들이 국회에서 활동하는 것이 중요한 정당활동의 하나이지만, 정당의 활동은 국회 내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국민의 여론을 듣고, 정책을 만들고, 국가적인 비전과 가치를 세우는 일은 국회만이 아니라 온 나라와 국민을 상대로 하는 활동이다. 


그래서 정당은 전체 활동을 담당하는 조직과 '원내'라 불리는 국회 활동을 책임지는 조직이 함께 구성되어 일한다. 단순하고 쉽게 설명하면 '당대표'는 당 전체를 대표하고, '원내대표'가 국회 내에서 정당을 대표하는 책임자다. 당대표는 국회의원이 아니더라도 당원이라면 할 수 있지만, 원내대표는 국회의원들의 대표이므로 국회의원이어야 자격을 가진다. 국회 내에서는 당대표보다, 원내대표가 더 큰 권한과 힘을 가지고 있다. 법안과 예산의 처리, 의사일정 협의 등 원내활동에 있어서는 원내에서 당을 대표하는 원내대표가 이를 이끌어갈 담당자이기 때문이다. 전체 당을 국가라고 한다면 원내대표단은 국회 내의 활동을 담당하는 일종의 자치조직이라고 할 것이다. 


임기가 1년인 원내대표는 의원들의 투표를 통해 결정된다. 법을 만들고 예산을 확정하며, 행정부를 감시하는 권한을 가진 국회이기 때문에 정당 활동도 국회가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원내대표는 이런 국회 활동에 막강한 영향력을 끼치는 자리이므로 선출할 시기에는 많은 국회의원들이 출마해 경쟁하고 후보로 나선 의원들은 의원회관을 분주히 돌아다니며 선거운동을 한다. 


원내대표가 이렇게 많은 권한을 가지고 있어도 마음대로 다 할 수는 없는 일이다. 때문에 소속 정당의 원칙과 방향의 틀 안에서 원내대표 밑에 여러 명의 원내부대표단과 의원들의 뜻을 모아 활동을 해나간다. 원내대표단의 결정사항이 채택되고, 실행되기 위해서는 모든 국회의원들이 구성원인 의원총회의 토론 과정과 추인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의원총회는 그런 의미에서 정당의 원내활동이 토론되는 장이라고 할 수 있다. 

의원총회 소집을 알리는 문자

내가 경험한 바 의원총회가 원내활동과 관련한 토론의 장이라는 본래의 목적대로 깊이 있고 활발하게 운영되지는 못하는 것 같다. 보통의 의원총회는 국회 본회의나 정기국회 개회를 앞두고 형식적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고, 현실적으로도 백 명에 가깝거나 백 명이 넘는 의원이 있는 정당의 경우에 한정된 시간에 모든 의견을 논의한다는 것이 힘든 것도 사실이다. 


이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중대한 사안이 발생했을 경우 의원총회에는 격론이 벌어진다. 보통의 경우 의원총회는 대부분 공개되지만 중요한 입장을 정리해야 하거나, 갈등이 노출될 수 있는 민감한 사안이 안건에 올라간 경우에는 당대표와 원내대표 등의 모두 발언만을 공개하고 이후에는 비공개로 진행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의원총회가 비공개로 진행되는 경우 언론인들에게만 비공개를 할 때도 있고, 모든 당직자와 보좌진들을 물린 채 오로지 의원들만 회의를 하는 경우도 있다. 보좌관의 입장에서 '의원들끼리만'하는 의총은 소외감을 주기도 하는데 평소에는 "의원과 보좌진은 동역자이고, 공동체"라고 말하면서도 무언가 자신들끼리만 논의하겠다는 게 결국은 "우린 의원이고, 너흰 보좌진이야"라는 신분 구별이라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에는 의원회관에서 본청까지 힘들게 왔는데 비공개니 나가라고 하는데 대한 불만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비공개 의총'이라는 것이 의미 없다는 느낌을 줄 때는 비공개 의총이 실시간으로 중계될 때다. 


논의 과정에 대해 보안을 지키기 위해 의총을 비공개로 하는 것일 텐데, 공명심을 가지거나 언론인들과의 관계를 돈독히 하려는 의원들이 실시간으로 의원들의 발언과 분위기 등을 기자들에게 문자로 전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민감한 이슈의 경우 삿대질이나 고성이 오가는 장면이 노출이 되지 않는 장점은 있겠으나 누군가는 배제하고 회의를 하면서 실시간으로 세상에 중계가 되는 비공개 의총이 좋아보일리는 없다. 


이러저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의원총회는 더욱 활발하고 내실 있게 운영될 필요가 있다. 국회의 구성원들이 토론하고 논의하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원내활동의 방향, 정책과 법에 대한 입장에 대해 의원들의 생각이 가감 없이 펼쳐지는 과정을 통해 의정활동의 수준이 높아질 것이다. 


나도 의총에 배석을 하면서 여러 경험을 했는데, 그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 중요한 이슈에 대해 언론인들을 내보낸 후 진행된 비공개 의총에 해당 이슈와 관련된 정부부처의 공무원이 몰래 숨어 내용을 엿듣는 일을 적발한 일이다. 

공무원의 '의총염탐사건'을 보도한 기사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후 대기업과 고소득층의 세금을 깎아주면 그 돈이 투자와 소비에 쓰여 경제가 좋아질 것이라는 '트리클 다운(Trickle Down)' 논리에 기대어 많은 감세조치들이 이뤄졌다. 법인세, 종합부동산세 등과 함께 주요한 이슈로 다뤄졌던 것이 '양도소득세 중과 폐지'다. 부동산 매매에 따라 발생하는 소득에 부과되는 세금인 양도소득세에 있어 주거용이 아니라고 볼 수 있는 다주택 보유분에 대해서는 더 높은 세율을 적용해 왔는데 이를 폐지하여 부동산 경기를 활성화하겠다는 것이 당시 정부와 여당의 입장이었다. 


세금 문제는 많은 정책 중에서도 가장 민감한 이슈라고 할 수 있고, 야당의 경우 여당일 때 추진했던 정책이 무력화된다는 측면에서도 중요한 문제였기 때문에 많은 관심이 쏠린 이슈였다. 나는 당시 이 문제를 담당하는 기획재정위원회 간사 의원실 소속이었기 때문에 이 문제에 대한 관심이 얼마나 큰지 느낄 수 있었다. 거대한 의석을 가진 여당의 압박 속에 결론을 내려야 하는 시점에서 의원총회가 개최되었다. 민감한 문제였기 때문에 원내대표의 인사말이 끝나고 사회자가 "이후 의총은 비공개로 전환해 진행하겠습니다. 언론인들께서는 양해해주시기 바랍니다"라고 안내했다. 의원총회에는 정치부 기자뿐 아니라, 많은 사진기자와 카메라기자가 오기 때문에 비공개 전환을 위해 장내를 전환할 때 많은 사람들과 방송장비 등이 우르르 나가게 된다. 


언론인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상태에서 다시 의총이 재개되어 양도소득세 중과 폐지에 대한 정책위, 해당 상임위 간사의 브리핑과 토론이 진행되었는데, 뒤에 서있던 나는 '눈에는 익는데, 여기 있으면 안 되는' 느낌이 바로 오는 사람을 발견했다. 그는 회의장 뒤편 기둥에 종이를 대고 비공개 의총 내용을 열심히 메모하고 있었다. 그는 이 문제 주무부처인 기획재정부에서 국회를 담당하는 사무관이었다. 우리 사무실에도 자주 와서 인사도하고, 기획재정부의 입장도 설명하고 했기 때문에 얼굴을 잘 알았다. 


"기재부 사무관이시죠? 아니 지금 비공개인데, 여기 왜 계세요?"


그는 순간 몸이 얼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주위에 있는 보좌진들과 당직자들에게 상황을 알리고, 이 사무관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 다른 사무실로 들어갔다. 신분증과 명함을 달라고 했더니 처음에 주지 않았다. 그가 열심히 메모하고 있던 논의 내용도 달라고 했더니 주지 않았다. 기획재정부의 다른 국회 담당자들이 왔다. 이들은 처음엔 "죄송하다"라고 하더니, "비공개인 줄 몰랐다"는 핑계를 댔다. 결국 메모와 명함도 받고 기획재정부 장관의 사과도 받았다. 아무리 정보가 필요하고, 정보를 가져오라는 윗선의 등쌀이 있었더라도 이렇게 야당의 비공개회의에 몰래 남아 있을 생각을 했는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 사건에서 알 수 있듯이 의원총회는 법과 정책, 예산에 대한 정당과 국회의원들의 입장을 논의하는 중요한 자리다. 때문에 의원총회가 지금보다 더 역동적이고 깊이 있게 다양한 생각과 의견들이 부딪히고, 교류하고, 소통하는 장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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