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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포아빠 Sep 27. 2022

비닐 아까운 줄 모르고, 음식 아까운 줄은 안다

미국 겉핥기_열 일곱번 째

미국에서 생활하면서 점점 강해진 생각이 있다. 인간의 행동은 고귀한 뜻이나 이상보다는 주어진 환경이나 자신의 경제적 이익에 따라 좌우된다는 것이다. 그런 생각을 들게 한 것은 미국 사람들의 쓰레기와 사먹는 음식에 대해 분명하게 대비되는 제도와 행동 때문이었다.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미국은 전국적으로 통일된 제도보다는 주별로 각각 다른 규율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내가 살고 경험했던 것에 국한된 이야기임을 밝힌다. 


미국에 처음가서 한 일은 그 유명한(?) '월마트'에 가서 생활에 필요한 물건들을 사는 일이었다. 넓은 매장을 누비면서 샤워커튼, 냄비, 비누, 칫솔, 쿠킹호일 같은 것들을 카트에 담아 계산대로 갔다. 점원은 능숙하게 물건들의 바코드를 찍고 곧바로 물건들을 비닐봉지로 옮겼다. 비닐봉지가 꽉 차지 않았는데도 거치대를 회전시키면서 많은 비닐봉지에 물건을 담았다. 비닐을 아끼겠다는 생각은 애초에 없는 사람처럼.    


비닐봉지에 물건을 담아가려면 봉지값도 내야하는 나라에서 살다 온 나에게는 이색적(?)이었다. 월마트의 비닐봉지는 점원만이 쓸 수 있는게 아니라 고객들의 손에도 닿는 곳에 위치하고 있어서 필요하면 얼마든지 가져갈 수 있었다. 나도 미국 생활이 조금 익숙해져 간이 커진 다음에는 이 봉지를 뜯어와서 필요할 때 집에서 사용하곤 했는데 이때도 눈치가 보이긴했지만 누구도 제지하는 사람은 없었다. 

종량제 봉투에 쓰레기를 담아 버리고, 종류별로 분리수거를 하는 나라 사람인 나는 처음엔 이렇게 펑펑 비닐봉지를 써도 되는건지 의아했는데, 그 차이는 지구를 사랑하는 마음이나 미래 세대가 살아갈 환경을 걱정하는 마음보다는 두 나라 사람들이 처한 조건이 다른데서 비롯된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미국은 땅이 넓어서 쓰레기 묻을 곳이 많으니 이렇게 아무 규제와 걱정없이 비닐봉투도 펑펑쓰는 구나 싶었다. 우리나라도 땅이 넓어서 사람이 살지 않는 사막에 아무리 쓰레기를 묻어도 별로 티가 나지 않는다면 비닐봉지 사용을 억제하려고 노력하고 자기가 쓰레기를 버리는 만큼 종량제 봉투를 사야하는 제도를 마련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니네는 땅 넓어 좋겠다'하는 마음이 솔직히 들었다. 


물론 땅이 넓고, 조건이 달라도 썩지 않는 비닐같이 환경에 좋지 않은 것들을 되도록 사용하지 않고 물건을 아껴쓰는 것은 훌륭하고 좋은 일이다. 그러나 미국 사람들이 이렇게 아까운줄 모르고 비닐봉투를 마구 사용하는 것을 보면 인간의 행동에 동기를 부여하고 제약을 가하는 것은 인간이 처한 환경과 조건이 큰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쓰레기를 버릴 땅이 아무리 넓더라도 아끼며 산다면 정말 좋겠지만 그러지 않는걸 보니 말이다. 


쓰레기를 버리는 것은 더 놀라웠다. 내가 살았던 기숙사 아파트에는 동별로 엄청나게 큰 검정색 고무로 된 쓰레기통이 있어서 여기에 쓰레기를 버렸다. 여기에 일반쓰레기, 플라스틱, 병, 스티로폼, 비닐, 음식 가릴것 없이 그냥 가져다 버리면 끝이었다. 분리수거도, 종량제 봉투도 다른 세상 얘기였다. 그냥 한 통에 아무렇게나 갖다 버렸다. 그게 이 동네의 법칙이었다. 음식쓰레기는 음식쓰레기통에, 각각의 쓰레기는 분리해서 버리는 나라에서 온 나에게 이건 신세계(?)나 다름없었다.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떠나서 솔직히 너무 편했기 때문이다. 그냥 뭐든 가리지 않고 가져다 버리면 되니까. 우리나라 사람들은 땅이 좁으니 쓰레기를 버릴때도 고생을 한다는 억울한(?) 생각도 들고. 이런 것마저도 미국은 축복받은 땅이라고 얘기해야하는건가... 아무리 쓰레기를 버려도 되는 넓은 땅을 가졌더라도 비닐이든 쓰레기든 너무 아까운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미국 사람들은 밖에서 사먹는 음식에 대해서는 완전 정반대의 모습을 보였다. 미국 사람들은 식당에서 음식을 시켜 먹은 후 음식이 남으면 집에 싸가는 것을 매우 당연하게 생각했다. 식당을 이용하는 고객 뿐 아니라 식당 주인과 점원들도 그랬다. 남은 음식을 싸가겠다고 하면 스티로폼, 플라스틱 등으로 만든 용기를 줬고 여기에 담아 가져갔다. 스티로폼과 플라스틱 아까운줄은 모르지만 음식 아까운 줄은 아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식당에서 남긴 음식을 집에 가져가는 경우가 드물다. 물론 메인 음식이 버리기 아까울 정도로 남으면 싸가는 경우가 종종있지만 그런 문화가 보편적인것 같지는 않다. 나 또한 한국에서 음식을 싸온 경험은 이탈리안 식당에서 피자가 남았을 때를 빼고는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음식에 있어서는 한국 사람들이 미국 사람들보다 덜 엄격한 것이다. 나는 이런 차이가 음식에 얼마나 자신의 돈이 들어갔는가에 대한 인식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미국은 직접 재료를 사고 요리를 하는 것에 비해 외식을 할 때 비용이 비싸다. '사람 값이 비싼 나라'라는 글을 썼던것 처럼 서비스를 제공받는 일에 한국보다 많은 비용이 든다. 음식값 뿐 아니라 서빙을 하는 사람에게 팁도 줘야 하기 때문에 남긴 음식이 아까울 수 밖에 없다. 그러나 한국에선 팁 문화도 없고 대부분의 식당에서 반찬을 더 달라고하면 더 주는 등 인심이 후하기 때문에 내가 시켜먹은 음식이 아깝다는 생각을 하기가 상대적으로 어렵다.


비닐이나 쓰레기에서 두 나라 사람들의 제도나 행동의 차이가 고귀한 뜻보다는 처한 조건과 환경에서 비롯된 것처럼 음식에 대해서도 어느 누가 더 훌륭하거나 생각이 깊어서가 아니라 얼마나 자신의 비용이 투입됐는가에 따라 다른 행동을 보인다는게 나의 관찰 결과다. 어쩌면 두 나라뿐 아니라 삶에 처한 환경과 이에 대응하는 생활 양식이 다른 다양한 나라와 사람들이 어울려 평화롭게 산다는건 참 어려운 일이라는 데까지 생각이 미친다. 한 나라 안에서 조차 처지가 다른 사람들의 어울림도 쉽지 않으니까.


각 나라의 처지와 거기에서 비롯된 사람들의 문화가 다르다는 관찰을 했지만, 이젠 이 마저도 너무 한가한 이야기일 수 밖에 없는 때가 코앞에 왔다. 쓰레기와 음식을 둘러싼 생활 양식이 다르다고 해도 이젠 그로 인해 치뤄야 하는 대가는 너와 나를 가리지 않는 기후위기의 시대이기 때문이다. 미국 사람들은 쓰레기에, 한국 사람들은 음식에 좀 더 엄격해지면서 함께 살기 위한 이인삼각을 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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