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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포아빠 Sep 27. 2022

공무원과 함께 일하기: 갑을 관계가 아니다

간신히 여의도 서식기_열 여섯번 째

국회 보좌진은 공무원 상대하는게 주요한 업무중 하나다. 국회가 법과 예산을 다루고, 행정부의 일을 감시하고 견제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각종 정책과 법안, 예산, 자료에 대해 설명하고 협조를 구하려는 공무원들이 의원실을 방문하고, 직접 방문이 아니더라도 전화와 메일을 통해서도 끊임없이 연락이 오고간다. 


보좌진의 입장에서 공무원과의 만남은 여러모로 의미가 있다. 정부가 하는 일에 대해 그 일을 직접하는 사람을 통하는 만큼 정확한 정보를 파악할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이기도하고, 정부를 이해하는데도 가장 직접적이고 1차적인 상대가 되기 때문이다. 이는 공무원에게도 마찬가지다. 정책과 일에 대해 제대로 설명하고 소통해야만 일에 대한 지지와 동력을 얻을 수 있을 것이므로.


국회에서 일하면서 정부와의 관계, 공무원과의 관계에 대해 이러저러한 생각이 많았다. 인턴때는 주로 선배들이 공무원들을 상대하는 모습을 보며 배울점과 배우지 말아야 할 점들을 생각했다. 내가 직접 공무원을 상대해야하는 빈도가 높아지면서는 생각했던 것들을 적용하려 애썼는데 그 생각들이 다 좋은 것도, 맞는것도 아니라는 것을 경험을 통해 배우기도 했다. 빈번하게 만날 수 밖에 없는 공무원들과의 거리는 어느 정도가 적당할까, 겉으로만 친절하고 실제로는 국회를 무시하는 듯한 공무원은 어떻게 상대해야 하나, 더 나아가 공무원은 어떤 존재인가까지 여러 고민들을 했고, 지금도 하고 있다.


물론, 모든 공무원과의 관계가 일률적인 것은 아니다. 때로는 말이 잘 통하는 공무원도 만나고, 안부를 주고 받기도하는 관계가 형성되기도 하며, 반면에 비협조와 무시로 분노를 유발하는 공무원을 만나기도 한다. 그래서 공무원과의 관계는 어때야하는가, 공무원을 어떻게 상대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도 하나의 답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공무원을 상대하는데 있어 한 가지 원칙으로 삼고 있는 것이 있다. 그것은 보좌진과 공무원은 역할이 다른 것이지 신분이 다른 것이 아니라는 원칙이다. 사람들은 그리고 언론들은 국회가 정부에 갑질을 한다는 이야기와 보도를 심심치 않게 하곤 한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들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그리고 이런 내용들을 담은 기사들은 대부분 국회와 정치를 희화화하고, 혐오하는 역할 밖에 하지 못한다. 국회의 역할, 정부와 국회와의 역학관계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보좌진이 가장 많이 만나는 공무원은 정부부처와 국회의 창구가 되는 '국회 담당자'이다. 보통 기획조정실장 아래 '기획재정담당관실'이라고 불리는 부서에 국회를 담당하는 직원들이 있는데 이들은 거의 국회로 출근해 소속 상임위 의원실을 중심으로 국회와의 관계를 원할하게 하고, 의원실의 요구를 중계 및 처리하며, 정부가 의원실과 접촉할 필요가 있을 때 1차적인 창구 역할을 하기도 한다. 특별한 일이 없어도 의원실을 순회하면서 동향파악(?)을 하기도 하고, 국정감사나 정기국회 등에는 의원실과 부처 사이의 업무처리, 고위공무원의 의원실 방문약속 확정, 장차관의 국회출석 등과 관련한 일을 처리하느라 눈코뜰새없이 바쁘기도 하다. 


국회와 정부의 관계에 있어 항상 생각하는 중앙부처 국회 담당 공무원이 있다. 그는 나의 삼촌뻘 되는 연배를 가진 수 십년 경력의 공무원이다. 국회담당으로 잔뼈가 굵었고, 지난 19대 국회에서는 사무관에서 서기관으로 승진까지 했다. 성실하고 또 인간적으로 너무 좋은 분이다. 그는 사무실에 올 때마다 만면에 미소를 지은 채 입구에 들어서서부터 허리를 45도쯤은 숙인 채 "보좌관님"하며 걸어들어왔다. 나는 그게 너무 불편했다. 그래서 직접 말씀을 드리기도 했다. "서기관님, 너무 그렇게 안하셔도 괜찮습니다. 저보다 연배도 훨씬 높고, 공직경력도 많으신 선배님이시고, 국회와 정부가 갑을도 아니고 역할이 다를 뿐인데도 저 좀 편하게 대해주세요". 그리곤 나도 그가 사무실에 들어오는 것을 발견하면 그가 내 자리에 올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기립해서 기다리고 90도로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그러나 그의 이런 태도는 변하지 않았다. 그것은 아마 수십년 몸에 밴 대 국회 관계의 처세였기 때문일 것이다. 언젠가는 편하게 대해 달라는 말만 믿고 조금 풀어졌다가 뒤통수를 맞은 적도 있을 것이고, 역할이 다르다는 것이 대등한 것은 아니라는 인식으로 항상 긴장해야 한다는 그 나름의 신조에서 비롯된 것일수도 있을 것이다. 


법이나 예산을 설명하러 오는 공무원들도 '과잉의전'을 하는 경우가 많다. 나는 영관급 고위 장교 출신인 중앙부처 국장급 공무원이 군대에서 작전 설명을 하듯이 안테나처럼 길게 뺄 수 있는 지휘봉 같은 것을 가져와 바로 옆에서 그 막대기(?)로 서류를 짚어가며 설명하는 것을 듣는 경험도 했고, 그냥 "설명하겠다"고 하면 될 것을 "설명을 올리겠다"는 극존칭까지 하면서 이야기하는 불편한 경우도 많았다. 다 그럴필요가 없는 일이다. 역할이 다르지 신분이 다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겉모습 뒤에는 오히려 정부가 국회보다 우위에 있는 실제 관계가 숨어있다. 형식으로는 법안과 예산을 심사하고 통과시키는 권한이 국회에 주어져 있지만, '견제와 균형의 원리'를 추구하는 '삼권분립'의 헌법 정신을 실현할 수 있는 실질적인 힘은 국회에 없기 때문이다. 아직까지 우리 나라는 정부의 힘이 국회에 비해 더 강한 행정부 우위 국가라고 할 수 있다. 법 하나도 정부의 동의가 없이는 통과되기 어려우며, 600조가 넘는 국가 예산도 국회가 실제로 삭감하고, 증가시킬 수 있는 금액은 총액의 1% 내외에 불과한 것이 현실이다. 국회의 예산통제 권한이 기획재정부 사무관만 못하다는 이야기는 과장된 면도 없지 않지만 그냥 나온 말이 아닌 것이다. 정부가 "자료를 못주겠다", "메모도 못하고 열람만 해라"라고 하면 아무리 강하게 요구를 해도 정부의 뜻대로 되는 일이 다반사이기도 하다. 실제로는 정부가 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예산을 심의하는 때가 되면 부처 공무원들이 다같이 와서 여당과 야당 보좌진을 상대로 설명회를 한다. 이 자리에서 시작부터 이유없이 공무원들에게 고압적이고, 적대적인 태도를 보이는 보좌진도 있다. 여기엔 그렇게라도 '지랄'을 하지 않으면 성의있는 자료제출이나 대답을 하지 않는 공무원들의 태도와 이로부터 비롯된 경험칙이라는 이해할만한 이유가 있다. 그러나 이는 올바른 태도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갑을'의 관계로 정부와의 관계를 설정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그동안 정부와 공무원들로부터 받은 홀대와 무시로 쌓인 감정은 해소가 될 수 있겠지만 정부의 본래태도, 실제로는 정부가 갑인 현실이 바뀌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럴만한 일이 있으면 당연히 엄중하게 대해야 하겠지만 다짜고짜 그러는건 그럴 필요도, 이유도 없다. 오히려 나는 그런 모습을 볼 때 동료들에게 "아니 저렇게 밑도 끝도없이 화부터 내고, 감정을 상하게 하면 저들도 우리 유권자인데 우리 찍겠어요?"라고 말하기도 했다.   


국회와 정부의 관계에 있어 갑이 아니라고 국회에서 생각하는 만큼, 공무원들도 국회를 존중해야 한다.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정부가 하는 일에 대해 국민을 대표하는 기관인 국회가 살펴보는 역할에 공무원들은 적극적으로 협조해야한다. 가끔 자료요구, 정책에 대한 비판을 할 때 "정부가 하는 일에 대해 너무 이래라 저래라 하고, 자료를 샅샅이 내놓으라고 하면 누가 일을 하려고 하겠어요?"라고 불만을 호소하는 공무원을 만나기도 한다. 이해할 구석이 없는 말은 아니다. 일도 많은데 국회의 요구에 응대 해야하는 일이 더 생기니 귀찮기도 할테니까. 그러나 이 또한 올바른 태도가 아니다. 사적으로 친분이 있는 공무원들도 만날 기회가 있을 때 이런 하소연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면전에서는 정색하고 이야기하지 못하지만 그건 정부가 당연히 감내해야하는 일이다. 국회는 국회의 일이 있고, 정부는 이를 존중해야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행정부가 국회에 대해 우위를 점하고 있는 실제적인 관계는 물론이고, 국회가 아니면 언제나 갑인(물론 감사원이나, 자체 감사 등 많은 견제를 받는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공무원들은 국회가 아니라면 대부분의 관계-기업, 학교, 국민-에서 언제나 갑이다) 정부와 공무원이 일과 정책을 평가받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일이고 정부와 공무원은 이를 존중해야 한다. 그것도 하지 않겠다는 자세라면 누구에게도 견제받지 않겠다는 오만한 자세이기 때문이다. 


국회가 그리고 보좌진이 정부와 공무원에 대해 갑이 아니라, 역할이 다를 뿐이며 서로가 존중해야 한다는 태도를 늘 유지했다고 이야기할 수는 없을 것이다. 실례를 한적도 많았다. 또한 그런 태도가 늘 옳았다고 할수도 없다. 존중을 하면 존중을 받아야 하는데 세상 인심이 그렇듯 화를내거나 고압적이면 겉으로라도 존중을 하지만, 존중을 하면 오히려 무시를 당하는 경험도 많이 했기 때문이다. 

위 메일은 내가 한 부처의 과장급 공무원과 주고받은 메일 중 하나다. 당시 메일을 찾아보니 5차례 정도 메일로 날선 논쟁이 오고갔다. 해당 부처에서 의원실의 지적과 요구에 대해 굉장히 무성의하고 거짓으로 대응을 해서 이에 대한 시정을 요구했는데도 매우 비협조적이 었던데 대해 오고간 메일 중 하나다. 사실 국회에서 이런 일이 얼마나 있을까 싶다. 누군가의 눈에는 바보같은 짓으로 보이기도 할 것이다. 사실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국회의 권한으로 필요한 일을 요구하면 그것의 실행을 촉구하고, 그것이 미흡할 경우 비판하고 채근하면 그만일 뿐 이렇게 수차례 의견을 주고받고, 구구절절 심경을 고백(?)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의 생각을 주고 받았다. 물론, 나도 날이 서서 그와 부처의 잘못을 지적하고, 논리적으로 질러댔다. 해당 공무원도 하고 싶은 말 다해도 해코지를 하지 않는다는 안도(?)에서 였는지, 내가 불쾌하다고 생각할 만큼 할 말을 다했다. 


나는 위에도 내용으로 담겨 있듯이 정부를 존중하려고 했더니 오히려 무시나 당한다는 후회가 들기도 했고, 아 역시 그래서 다들 강하게 나가는거구나 하는 생각도 했다. 이런 찌질한 메일을 쓴 일을 여기에 공개하는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와 국회가 서로를 존중하고, 역할에 충실해야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기 때문이다. 이후 해당 기관의 잘못에 대해 나름 꾸준한 추적을 해서 보기좋게 펀치를 먹였다. 물론, 사실과 자료에 근거해서 객관적으로.


국회 보좌진은 정부 공무원에 대해 어떤 입장과 태도를 가져야 하는가와는 별개로, 국회는 그 역할로서 정부를 감시하고, 견제하고, 비판하며 정책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는 역할을 해야한다. 예의가 바른 것과 별개로 할 일은 해야하고, 그 과정에서 갈등도 회피해서는 안되는 경우도 있는 것이다. 다음에는 몇 개의 에피소드를 통해 이런 일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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