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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포아빠 Jul 12. 2019

간신히 여의도 서식기 2_국정감사 맛보기

국회의 가을은 가장 바쁜 계절이다. 매년 9월부터 연말까지 정기국회가 열리기 때문이다. 


국회의 기본적인 회기를 정리하면 교섭단체 간의 합의로 변화가 있지 않으면 9월 전에는 매 짝수 달에는 임시국회가 열려 소관기관에 대한 업무보고, 결산심사, 법안 처리 등을 하고 9월부터는 3개월간 국정감사와 예산심사를 중심으로 하는 정기국회의 대장정에 들어간다. 시쳇말로 장이 서고 판이 벌어지는 것이다. 나중에 좀 더 자세히 살펴볼 기회가 있겠지만, 국정감사는 여러 가지 개선점이 있음에도 국회 활동의 꽃이다. 뭐니뭐니해도 국회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정부에 대한 '견제와 균형'인데 이를 과시하는 가장 중요한 행사이기 때문이다.


내가 국회에서 일하기 시작한 2004년 9월 4일은 17대 국회 첫 국정감사를 딱 한 달 앞둔 시점이었다. 새 국회가 시작되고 열리는 첫 국정감사, 여당이 과반수를 차지한 후 이뤄지는 국정감사, 각종 개혁에 대한 요구가 봇물처럼 터지는 상황에서 벌어지는 국정감사이기 때문에 관심도도 높고, 의원들과 보좌진들이 느끼는 압박도 상당했다. 


나도 일을 시작하자마자 바로 국정감사를 준비하는 일에 투입됐다. 내가 직접 기관을 맡거나, 자료를 요구할 수준은 아니고 보조적인 역할을 맡았다. 당시 내가 속한 의원실은 보좌관 두 명이 핵심 기관들을 맡고, 비서관과 비서들이 다른 기관들을 나눠 담당하고 있었다. 인턴 두 명은 각각 한 명씩의 보좌관들과 팀을 이뤄서 국정감사 준비를 도왔다. 


여기서 잠깐 의원실의 인력 구성을 살펴보면, 당시는 4급 공무원 대우를 받는 보좌관 2명, 5급 비서관 1명, 6급 비서 1명, 7급 비서 1명, 9급 비서 1명, 인턴 2명으로 보좌인력이 구성됐다. 주로 의원 차량의 운행을 담당하는 7급 비서와 행정업무를 맡는 9급 비서를 제외한 인력들이 정책과 정무를 담당하는데 이 또한 역할이 고정된 것이 아니라 어떤 직급의 누가 무슨 일을 하는가는 의원실의 사정과 인력운용에 따라 다르다. 여기에 2010년 5급 비서관 1명이 늘어남에 따라 지금은 비서관도 의원실마다 두 명씩이다. 지금은 많이 알려져 있지만 급여의 수준은 높은 편이다. 해당 직급의 공무원에게 책정된 최고호봉을 받기 때문이다. 5급을 예로 들면 5급 24호봉의 봉급을 받게 되는데 쉽게 얘기하면 5급 공무원을 24년 해야 받는 돈을 받는 것이다. 그래서 급여가 적지 않은데, 당시 보좌관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입장에서는 많이 받는 편이지만 그 급여가 거의 고정되는 수준이기 때문에 연봉이 계속해서 상승하는 친구들에게 역전당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는 푸념도 있었다.


우리 의원실은 당시 재정경제위원회(지금의 기획재정위원회) 소속으로 재정경제부(지금의 기혹재정부), 국세청, 한국은행 등이 주요 기관이었고, 조폐공사와 같은 공공기관들도 소관기관이었다. 내가 소속된 팀에서 가장 중요한 기관은 국세청이었다. 당시 의원실에서는 재벌 문제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삼성과 SK, 한화 같은 기업들이 삼성SDS, SK C&C, 한화 S&C와 같은 SI(System Integrator: 기업과 정부의 전산망 구축, 운용, 보수 등을 한다) 업체들과 내부 거래를 통해 계열사 일감을 몰아줘 규모와 가치를 키우고, 비상장인 이 기업들을 변칙상속 등의 통로로 활용하는 일에 주목하고 있었다.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 해당 기업들의 주주현황, 매출이 내용과 규모, 기업의 규모와 상속 규모에 따라 당연히 내야 하는 세금과 실제로 낸 세금 등을 파악하고 정리하는 일이 중요했다. 나도 보좌관을 도와 수치를 정리하고, 표를 만들고, 사실관계를 정리하면서 국정감사라는 목표시간에 맞춰 사안을 벼르고 다듬는 일에 참여했다. 이때 공문을 통해 국가기관에 자료를 요구하고, 팩트와 질문을 구분해 정리하는 첫걸음이 시작됐는데, 국정감사 시즌에 일을 시작하게 되는 바람에 연습은 없이 실전에 투입된 꼴이었다. 꼭 이때가 아니더라도 국회에서 연습과 실전이 구분되기는 어려운데 실전을 통해 배우고, 연습하고, 일을 익히는 게 국회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보조하는 역할에 불과했지만, 좌충우돌하면서도 뭔가 대단한 일을 한다는 생각에 들떠서 열심히 했다. 그리고 드디어 국감이 시작하는 날이 왔는데 가장 큰 관심이 집중되는 국정감사 첫날의 기관이 국세청이었다. 300명 가까운 국회의원들이 각 위원회에서 장관과 기관장들을 상대로 질문을 할 것이고, 어떤 질문과 문제제기를 관심을 받고, 또 어떤 것들은 그냥 잊힐 것이었다. 그런 수백, 수천 개의 설렘과 긴장과 걱정의 기운이 가득한 10월 4일 아침이 밝았다. 


밤늦도록 준비한 질의서와 도표가 정리된 판넬, 수십 부를 복사한 보도자료 등을 바리바리 싸들고 국감장에 가니 긴장감이 더해졌다. 준비한 대로 재벌의 내부거래와 편법상속문제를 제기했다. 국감이 저녁 가까이 되어 끝나고, 사무실로 돌아왔다. 보좌관은 돌아오자마자 TV를 켰다. 그때는 알지 못했는데, 언론과도 교감을 하고 보도가 예정되었던 것 같다. 수백 개의 국감 아이템 중에 주요 보도 꼭지로 선택된다는 것, 그것은 국정감사의 주요 성과 중 하나이다. 얼마나 언론에 다루어지고, 주목을 받느냐는 것은 국정감사의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하나의 기준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TV 앞에 둘러앉았고, 공중파의 메인뉴스가 시작됐다. 몇 개의 뉴스가 나간 후 위 사진처럼 우리가 준비했던 것이 리포트로 나왔다. 의원이 이름이 언급된 것은 물론, 질의 내용까지 인용이 됐다. 더할 나위 없는 보도였다. 긴장하던 보좌관의 얼굴이 매우 밝아졌다. 그는 "ok! 됐어!"하고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었다. 첫날 많은 언론, 특히 공중파 메인뉴스의 주요 꼭지로 다뤄졌으니 국감의 절반은 성공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를 짓눌렀을 국감 성과에 대한 압박감이 숨을 쉴 수 있을 정도로 해소되었을 순간이었다. 보조자인 나도 큰 보람과 기쁨을 느꼈는데 이를 주도한 그는 오죽했을까. 


그렇게 국정감사의 맛을 어렴풋이 보면서 가을이 지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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