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포아빠 Jul 12. 2019

미국 겉핥기 1_시작하며

2016년 5월부터 2017년 4월까지, 미국 동부 메릴랜드주의 솔즈베리라는 조용하고 공기 좋은 곳에서 살았다.


1년짜리 비자를 받았고, 앞뒤로 한 달을 더 붙여 있을 수 있기에 14개월간 머물고자 계획했었지만 직장문제로 조금 일찍 돌아왔다. 1년 가까운 짧은 미국 생활이었지만 미국에서 집을 얻고, 차를 등록하고, 장을 보고, 햄버거를 주문하면서 여행자보다는 조금 다른 시선으로 미국을 볼 수 있었다. 너무 다른 두 명의 대통령을 만났기에, 8년을 산 것 같은 느낌을 받기도 했다(미국 대통령의 임기는 4년이다).  


원래 익숙한 것에서 벗어나지 않으려 하고, 안정적인 것을 선호하며 낯설고 새로운 대한 두려움과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인 내가 겨우 1년이라도 모든 것이 새로운 곳에서 생활했다는 것만으로도 귀중한 시간이었다. 뭐하나 익숙하지 않은 곳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체면불구, 안 되는 말로 물어보고, 부탁하고, 부딪혀야 했기 때문이다. 다른 세상에서 이방인으로 살아보는 경험은 많은 것들을 가르쳐준다. 


나는 미국에서 지내면서 미국에서 살아보기 전보다 미국이 더 좋아졌다. 미국도 좋은 점이 있고 또 그만큼의 나쁜 점이 있을 것이다. 미국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우리나라에서 이제 많은 사람들은 우리가 가야 할 미래는 미국 모델이 아니라, (북)유럽 모델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무엇이 더 좋은가 이전에 우리가 우선 미국 사회만큼이라도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아마도 내가 이방인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편히 지냈기 때문일 것이다. 몇 년 전 한 장관급 인사의 인사청문회에서 정확하게는 방문학자((Visiting Scholar)인데, 교수(Professor)라고 이력에 기재해왔다는 시비가 붙는 해프닝도 있었는데, 나도 그와 같은 자격으로 미국 대학에 머물렀다. 나를 초청해준 학교의 편지는 나를  'Research Fellow'라고 불렀고, 동료들은 'Visiting Scholar'라고 불렀으며, 학교가 비자를 신청할 자격을 주기 위해 발급하는 DS-2019라는 서류에는 내 카테고리가 'Professor'로 되어있었다. 학교는 내게 'Research Professor'라는 명함을 만들어주었다(그만큼 그게 연구원이냐, 교수냐의 시비는 쓸모없는 것이다). 

이렇게 학교라는 안전한 공간에서 진보적이고 자유로운 사람들의 친절과 배려 속에서, 사무실도 하나 얻어 유유자적하면서 험한 꼴 많이 보지 않고 편하게 지냈기에 '미국 좋다'는 소리가 나오는 것일 거다. 때문에 내가 쓰는 미국 이야기는 미국에 대한 반쪽짜리 얘기이다. 그래서 제목도 겉핥기다. 나 같은 시한부 나그네가 아니라 정말 바다 건너로  삶의 터전을 옮겨 생존을 위해 분투해야 했던 사람들의 고난과 땀과 눈물이 내게는 없기 때문에, 여기에 써 내려갈 이야기는 겨우 내가 보고, 내가 겪고, 내가 느낀 '나만큼의 미국'에 불과하다. 더욱이 주위에는 미국에 안 다녀온 사람보다 다녀온 사람이 더 많은 것 같이 느껴질 정도로 미국에 다녀왔다는 게 뭐 대단한 자랑거리도 아니고, 미국에 대해 전문가 행세를 할 건 더더욱 아니기에, 귀담아듣지 않아도 될 시시콜콜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때로는 그저 여행한 이야기, 동네 맛집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할 기록들.


그럼에도 이렇게 기록하는 것은 나만의 소감이라도 남기는 것이 기억의 한계를 극복하고 이 시간들을 인생에서 비어있는 시간으로 만들지 않는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또, 이런 기회에 도움을 주신 분들에게도 '얘가 그래도 느낀 게 있구나'라는 최소한의 보답이 될 거라는 기대도 있다. 마지막으로 미국에 대한 너무도 사소하고 작은 이야기이고, 때로는 정확하지도 않을 이야기라도 과거부터 지금까지 우리에게  너무도 중요한 나라이고, 앞으로도 꽤 오랫동안 그러할 미국에 대한 이해의 아주 작은 퍼즐 조각이라도 되길 바라는 희망에서 이 글을 쓴다. 

작가의 이전글 간신히 여의도 서식기 2_국정감사 맛보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