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포아빠 Jul 25. 2019

일하는 노인들의 나라

미국 겉핥기_세 번째

광활하게 펼쳐진 미국 서부의 사막, 그 사이로 끝없이 이어지는 고속도로를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달리는 캠핑카. 그 안에는 노년의 부부가 엷은 미소를 지으며 이야기 꽃을 피우고 있다. 이렇게 은퇴 후 여유롭게 대륙을 일주하는 노후생활은 아마도 모든 미국 사람들이 꿈꾸는 로망 아닐까.


그러나 현실은 모든 이에게 이런 호사를 허락하지는 않는다. 미국은 물론이거니와 고령화를 넘어 초고령화 사회를 향해 내달리고 있는 세계의 나라들이 노인을 어떻게 부양하고, 이들과 함께 지속 가능한 사회를 만들어갈 것인지 고민하고 있다. 늙어서도 건강하고, 더 오래 사는 시대는 노인을 위한 복지의 확대를 넘어 은퇴 없이 계속 일하는 시대가 될 거라는 생각이 든다. 언젠가 사전에서 ‘은퇴’라는 단어가 지워지지는 않을까.


우리도 일하는 노인들을 많이 마주치게 된다. 출근길 지하철 출구 앞에서 전단지를 나눠주는 할머니들과 폐지를 담은 리어카를 힘겹게 끌고 가는 할아버지의 뒷모습은 우리가 가장 흔히 만나는 일하는 노인이다. 언론을 통해서도 가벼운 서류를 택배로 전달하는 일이나, 패스트푸드 점에서 일하는 분들도 보게 된다.


그러나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노인이 일한다는 것’의 의미가 무언가 성공적이지 않은 인생을 산 사람들이 편하게 살아야 할 시기에도 고생하는 일로 치부되는 것 같다. 생활하기 위해 하는 일의 종류가 그러하거니와 고령화 사회에 대한 정책 논의도 노인의 일보다는 연금 등 복지와 배려의 차원에서 ‘어르신을 모시는’데 집중되어 있다.


아마도 우리는 오래된 미래인 고령화 사회를 알고 있었으면서도 제대로 준비하지 못한 채 당황하는 시기를 지나고 있는 게 아닐까. 국회 입법조사처가 2017년 5월에 발표한 ‘노인 부양부담의 증가 및 정책적 시사점’이란 자료를 보니 2015년 기준으로는 생산가능 인구 5.1명이 고령자 1명을 부양해 OECD 국가 중 일본, 독일, 스웨덴은 물론 미국보다도 낮은 노인부양 부담률을 보이고 있지만 2075년에는 OECD 회원국 중 가장 높은 노인부양부담을 감당하는 국가가 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세계 96개국을 비교해 노인복지지표가 60위에 불구하고, 특히 소득보장분야에서 82위로 최하위권에 속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때문에 일하는 노인이 많을 수밖에 없는 현실인데 고용의 질은 매우 낮다. 사용근로자는 6.1%에 불과하며, 임시근로자, 무급가족종사자, 일용근로자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렇다면 노인의 소득보장을 확대함과 동시에 노인의 노동의 질을 높이고, 노인이 일하는 것이 부끄럽거나 잘못된 일이 아니라는 사회적 공감대와 제도적 보장을 이뤄나가야 할 것이다.


이야기가 너무 거창해졌는데, 내가 본 미국의 노인들은 일하는 사람들이었다. 물론, 앞서 말한 캠핑카를 타고 여행을 즐기는 사람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노인들은 일하며 여행하고, 일하며 취미를 즐기며, 일하며 스스로의 삶을 책임진다는 자존감을 지킨다.


미국에 있는 동안 내 대화 상대를 해주었던 George 할아버지의 모습이다. George 할아버지는 대학병원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다가 은퇴하고, 동네(우리나라로 치면 주민센터)에서 이민자 등을 대상으로 하는 ESL(English as a Second Language) 선생님으로 활동하고 있다. 굳이 경제적 활동을 하지 않아도 노후를 보내는 데는 부족함이 없어 보이는데 그는 낮과 밤에 동네 사람들의 영어 선생님으로 사람들을 가르쳤다. 그것도 열과 성을 다해서.



내가 본 일하는 노인 중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분은 보행기를 사용하면서도 음악회가 열리는 콘서트 홀에서 관객들을 안내하고 질서를 유지하는 일을 하는 할머니셨다. 사진을 보면 빨간 유니폼을 입고 보행기를 잡은 채 공연 전에 바쁘게 객석 사이를 오가는 할머니가 보인다. 워싱턴 D.C에 있는 케네디 센터에 음악회를 보러 갔다 목격(?)한 것인데, 이 분은 얼굴 한 번 찡그리지 않고 상냥하게 음악회를 보러 온 사람들을 안내하고, 질문에 답하며 자기가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해 임했다. 이 할머니 말고도 대부분의 안내자가 노인이었다. 보행기를 짚고 있는 노인이라면 우리는 요양병원을 먼저 떠올리고, 음악회를 안내하는 사람은 당연히 젊은 사람이라고 생각할 텐데 이렇게 노인들이 활약(?)하고 있었다. 이뿐 아니라 케네디센터에 있는 카페테리아에도 음식을 먹으러 온 사람들을 안내하는 일을 파란 옷을 입은 노인들이 맡고 있었다.


동네에서도 일하는 노인들을 어디서나 만날 수 있었다. 마트에서, 음식점에서 당당하게 일하는 노인들. 그게 자연스러운 일상인 사람들. 충분치 않은 복지로 노년에도 노동해야 하는 부정적 상황으로 이해할 수도 있겠지만, 내가 볼 때는 누구에게 의지하기보다 자신의 삶은 자신이 책임진다는 독립적인 문화의 투영으로 해석됐다. 앞서 소개한 George 할아버지는 정치전문 언론인 폴리티코의 기자로 일하는 아들이 있는데, 아들이 대학에 진학한 후 독립해 크리스마스와 추수감사절과 같은 명절에 모이는 것 외에는 각자의 삶을 살고 있었다. 가족의 정과 서로의 삶에 대한 존중과 책임이 구별된 문화, 그것이 일하는 노인들의 모습으로도 드러나고 있었다. 건강하게 오래 사는 사람들이 많아질 때, 우리는 노인을 잘 모시고 자신들의 삶을 잘 꾸려가도록 해야 할 것이다. 누구에게나 동일한 먹고사는 문제 앞에 노인들이 빈곤에 허덕이며, 질 낮은 일자리에 내몰리는 현실은 우리의 문화와 제도에 모두 큰 도전을 주고 있다.


작가의 이전글 미국 겉핥기 2_모든 것은 링컨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