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박물관 같아요!”
윤아가 건조한 톤으로 내뱉는다. 모처럼 한가한 일요일 오후. 소파에 온몸을 풀어헤치고 드러누운 윤아. 허공을 떠돌던 시선이 거실 한편 책장으로 머물렀던 가보다. 눈에 거슬렸나 보다.
외할아버지 책들. 서재에서 그 책들이 차지하는 공간은 삼분의 일도 채 되지 않는다. 내가 어릴 적 만해도 온 방안에 아버지 책이 가득했는데....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
윤아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서재에서 책 한 권을 꺼낸다. 먼지가 뿌연 겉표지를 두 손으로 조심스럽게 잡아 천천히 속에 든 책을 끄집어낸다. 마치 고대 유물 발굴하듯 아주 진지한 표정이다. 책을 감싸고 있는 겉표지는 벌써 종이가 너덜거려 금방이라도 부서져 내릴 것만 같다. 속에 든 책은 질감 있는 비닐이 표지를 입히고 있다. 두께는 보통 5센티미터가 넘는다. 두꺼운 책 두께만큼 누렇게 바래져 있다. 윤아는 오른쪽 표지를 한 장 펼친다. 할아버지 책은 오른쪽부터 시작이라는 것 정도는 안 지 오래다. 작가 두세 명의 오래된 사진들이 펼쳐진다. 요새는 이런 편집은 거의 없다. 유고 작가들 전집류에나 가끔 삽입될까? 윤아는 그 사진들에 눈이 갔다. 자기가 태어나기도 훨씬 전인 작가들이 평범한 일상을 찍은 사진들. 지인들과의 술자리 사진, 긴 롱코트 차림으로 전차가 다니는 길에 서서 몇몇 친구들과 찍은 사진, 일제 강점기에 교복 입은 단체 사진.
마치 제 집 식구들 사진첩을 보듯이 신기한 눈빛으로 한 장 한 장 넘긴다.
아버지는 꿈이 시인이었다. 그래서 책에 대한 집착이 남달랐다. 가장 먼저 나오는 전집류나 신간이 있으면 월급을 다 털어서라도 반드시 사고야 말았다. 내 유년기는 경제적으로 그다지 풍족하지 못했다.
아버지는 늦은 결혼을 해서, 마흔이 넘어서야 자식을 보기 시작했다. 아버지 지인들은 모두 우리를 손자처럼 대했다. 간혹 부유하게 사는 지인들이 고급 양장점에서 맞춰 입히다가 작아진 옷가지들을 보내곤 했다.
그래서 내 유년기는 평범한 옷이 없었다.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허리끈으로 매는 코트나 온통 수가 가득한 상의, 순모로 만든 치마 등.... 거북하고 불편했다. 다른 아이들과 다르다는 것 자체가 거북했다. 물려 입은 옷 따위는 신경 쓰지 않았다.
어느 겨울, 아버지는 잠에 어린 나를 깨워 새벽시장에 갔다. 해가 뜨기도 전이었다. 그런데 사람들은 분주하게 역동적으로 움직였다. 경매꾼 소리, 짐꾼 소리, 장사꾼 외치는 소리들.
아버지는 장 한쪽에서 녹색 트레이닝 복 한 벌을 사 주셨다. 내 기억에 그 옷을 무릎이 닳도록 입고 다녔다. 다른 아이들이 입는 싸구려 장에서 파는 바로 그런 옷이었기 때문이다. 정말 좋았다. 아버지는 내 마음을 벌써 읽고 있었던 것이다.
아버지처럼 나도 유난히 책을 좋아했다. 아니 젖먹이 때부터 온 방안 가득한 책 냄새를 맡고 자라서 그런지도 모른다.
붉은빛에 금장이 박힌 동아세계 백과사전.
그 전질이 처음 나올 때 지방이라 유통망이 어려워 그랬던지 아버지는 일주일마다 몇 권씩 나눠서 집으로 들고 왔다. 커다란 가방에 불룩하게 들고는 늦은 밤 걸어오셨다.
책을 가지고 오는 날은 술도 마시지 않았다. 맛난 야식이라도 있나 하고 어린 눈을 말똥말똥 떠서 지켜보면 지퍼를 열고는 두꺼운 책들을 꺼내는 것이었다. 초 천연색 칼라 백과사전. 나는 정말 신기했다. 그런 날 밤이면 아버지와 나는 의기투합이 되어 그 칼라 백과사전을 보느라 잠도 설쳤다. 그렇게 유년의 내가 고스란히 담긴 백과사전이 서재 한 곳에 나란히 꽂혀 있다.
윤아는 어느새 천천히 책을 읽어 내리고 있었다. 두 단 세로 읽기가 어려운가 보았다. 마치 암호문 해독하듯이 더듬더듬 한 자씩 눈 새김을 한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 나왔다.
윤아는 알까? 할아버지 책들이 어떻게 모여 저기 저렇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지를. 월급을 쪼개고 밥값을 아껴가며 할아버지가 오랜 세월 한 권 한 권 모았던 책이며 서재라는 것을.
벌써 내 나이 마흔 넷이다.
아버지는 내 나이에 둘째 자식을 낳았다. 그때는 차마 몰랐다. 아버지가 왜 시인의 길을 포기했는지, 왜 아버지와 어울리지 않는 직장을 다니며 월급을 받았는지, 왜 휴일이면 내 손을 꼭 잡고 시내 작은 화랑이며 어수선한 길목 다방을 찾으며 지인들과 어울려 다녔는지. 그리고 왜 아버지 책들을 내게 물려주었는지를....
이 나이가 되도록 아직도 변변한 책 한 권 내지 못하는 나를, 당장 끼니를 위해 나도 그때의 아버지처럼 어울리지도 않는 장부를 하루 종일 쳐다보며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왜 하루에도 수 십 번 이 길을 포기해 버리고 싶어지는 지를....
아버지는 내게 이 서재를 통해 과연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대학 시절, 처음으로 어느 지방 백일장에서 상을 받고 지방 뉴스에 얼굴이 잠깐 나온 적이 있었다. 그 소식을 들은 아버지는 말이 없었다. 제일 기뻐할 줄 알았는데, 제일 담담했다.
“그 길을 가려고?”
그 한 마디뿐.
그리고는 씁쓸하게 등을 돌리며 담배를 피우셨다. 많이 서운했다. 그때 아버지 심정을 나이 마흔넷이 되고서야 헤아려진다.
아버지 임종을 지킨 사람은 오직 나뿐이었다. 그 늦은 밤 급하게 지갑을 들고 슬리퍼 신은 채 구급차에 동승한 사람. 그 길이 아버지 마지막이 될 줄 아무도 몰랐다. 몇 번 위급상황이 있었기 때문에 또 한 고비라고만 다들 생각했다. 그러나 그 밤 그 길로 아버지는 영영 집에 돌아오지 못했다. 나는 자정 가까운 그 시간에 응급실 구석에서 임종을 지키며 벌벌 떨고 있었다. 아버지는 마지막 있는 힘을 다해 내 손을 꼭 잡아주었다. 그리고 숨소리하나 흐트러지지 않고 편안하게 잠들었다. 마지막까지 삶의 평화를 그대로 보여주셨다.
내게 돌아온 유품은 아버지 젊은 시절 썼던 시들이 담긴 습작 노트 한 권과 생전에 모았던 책들이었다. 아버지가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그 길을 나는 절대 포기하지 말기를, 아버지 유품들을 매일 보면서 그 길을 걸어갈 용기를 내기를, 절망은 해도 포기는 안 된다고. 그래서 내게 그것들을 남기신 것일까?
“와! 할아버지 사진이에요!”
윤아가 밝은 톤으로 소리를 지른다.
빛바랜 흑백사진 속 아버지. 환하게 웃으며 철길 옆에 앉아 있다. 윤아는 보물이라도 발견한 것처럼 좋아했다. 그 전집류 속에 사진이 끼워져 있었나 보다.
나는 사진 뒤 적힌 오랜 세월 빛바래고 번진 만년필 글씨를 천천히 읽어 내렸다.
‘내 꿈을 위해!’
아!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다. 윤아는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아버지 서재는 내게 꿈이며 희망이며 동경이다. 그리고 현실이며 삶이며 유산이다. 윤아가 영문도 모른 채 따라 눈물을 글썽이며 내 눈물을 닦아준다.
오후 햇살이 거실에 가득 내리쬐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