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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노 Jul 24. 2024

초록대문집  에필로그

 테이블 위에 올려 둔 핸드폰 진동소리가 요란하게 온 집안을 울린다. 서영은 소파에 엎드린 채 그대로 길게 팔을 뻗어 폰을 잡았다. 소파 위에 놓인 사진첩 주위로 흑백사진들이 흩어져 있다. 커튼 사이로 흐릿한 밝은 빛이 흩어져 들어와 있다. 아침이다.     


  “서영아!”     


  오로지 목구멍에서만 나오는 카랑카랑한 그 목소리. 그 목소리가 조금 젖어있다.     


  “외갓집에 희자 언니다. 알겠나?”     


   의외였다. 그 특유의 사투리.     


  “외삼촌이, 아버지가 … 새벽에 가싰다!”     


  심장 깊숙이 바람이 파고들었다. 형제들 중에 가장 마지막까지 살아계시던 분이 … 이제 다 사라졌다. 오래전 어릴 적 기억에 있던 어른들은 모두 사라져 버렸다. 아버지, 어머니, 외삼촌, 외숙모, 사라 언니네 아저씨, 아주머니 … 모두 다!


  남은 건 나처럼 알 수 없는 허무를 가슴에 지고 살아가는 끝도 길도 알지 못하는 늙은 중년들뿐이다.      


  장례식장은 시골집에서 가까운 인근이었다. 아마 며칠 걸릴 것이다. 마지막 가시는 분이니 오래 머무르고 싶었다. 서영은 시골집에서 가까운 어릴 적 살던 그 도시에 호텔을 일주일 예약했다. 그리고 출판사에도 전화를 하고 동생들에게도 간단히 전화를 걸었다.      


  갑자기 일상에 균열이 일어나면서 바빴다. 아니 일부러 더 분주한 척 했다. 무미건조한 일상에 작은 파문이 일기 시작했다. 서영은 그 파문을 조용히 즐기기 시작했다. 물론 가슴 깊은 곳에서 슬픔이 깊은 바다 속처럼 넘실대고 있었다. 그렇지만 너무 오래 너무 깊이 묻혀있어서 그것이 슬픔인지 일상의 자질구레한 스트레스인지조차 이제는 구분이 어렵다. 그만큼 가슴은 이미 오래 전에 굳어 있었던 거다. 


  그에게는 문자를 남기지 않았다. 번거로운 일을 만들고 싶지 않았고 오해도 만들고 싶지 않았다.      


  기차역은 한산했다. 평일이라 그런가 보았다. KTX 안도 마찬가지였다. 서영이 배정받은 오 호차에는 서영을 포함해서 열 명 남짓한 승객이 앉아있었다. 아마 도착하면 오후쯤 될 것이다. 도착할 때 쯤 외사촌 기철이 마중 나오기로 했다. 서영보다 세 살 위인 외사촌 오빠다. 기차역에서 시골집까지 족히 한 시간은 걸리는 거리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남편도 없는 오십 넘은 고종사촌이 불쌍해 보였는지, 아니면 이제 타지가 되어버린 고향에 혼자 내릴 처지가 가련했던지 아무튼 기철은 자진해서 서영을 마중 나오겠다고 전화가 왔다. 상주가 자리를 지키지 않고 자진해서 마중을 나온다는 것에 처음에는 조금 부담스러웠다. 그렇다고 완강하게 거부할 명분도 딱히 없어서 그냥 승낙해 버렸다.      


  기차가 움직였다. 서영은 짐 가방을 올려놓고 코트를 벗어 담요처럼 덮었다. 오랜만에 가는 고향 길. 이제는 결혼식보다 장례식에나 갈 일이 더 많을 그 고향. 하기야 결혼식에는 돈 몇 푼 통장 이체 시키고 내려가지도 않을 길이다. 


 장례식은 달랐다. 죽음의 길에 들어서는 고인을 위해 그 길을 지켜주어야 할 의무가 남은 이들에게 있다. 죽은 이가 지켜낸 지금의 이 삶과 사람들을 추억하면서 …. 서영은 긴 숨을 내쉬며 창밖 풍경을 바라보았다. 곧 잠이 들었다.          


  낡고 오래된 철 대문.     


  초록색 페인트가 녹슬어 곰보자국처럼 온통 얽어 있는 그 대문을 열어젖히고 들어서면, 마당 군데군데 잡풀이 무성하다. 


  마당 구석에는 이끼가 끼어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평상이 그대로 놓여있다. 그 옆으로 시들어 꼬꾸라진 국화 분이 담을 타고 죽 놓여있다. 옥상 계단에는 말라비틀어진 이름 모를 화초가 놓인 화분들이 계단마다 하늘로 올라갈 듯 죽 놓여있다. 마당을 들어서서 조심스럽게 안채로 발을 옮겼다. 낮은 계단을 지나 댓돌을 지나 좁은 마루 틈에서 안방. 작고 야윈 아이가 … 방 한가운데 퍼지고 앉아 울고 있다. 흐느끼며 … 울고 있다. 혼자라고 … 다 떠나고 아무도 없다고 … 울고 또 운다 …… 아이가 … 울고 … 있었다.         

 

  가위 눌린 것처럼 퍼뜩 잠에서 깼다.     


 “다음 정차 역은 마산역, 마산역 입니다!”     


  내 고향 마산. 아버지 고향 마산. 어느 시인이 간절하게 가고 싶어 했던 남쪽바다 파란 물결 넘실대던 그 고향, 또 어느 시인이 열 일 곱에 뒷동산에 올라 바다로 펼쳐진 만을 바라보며 백 년의 고독을 노래했던 곳, 언덕 모퉁이 산장 같은 병원에서 연인이 서로를 바라보며 죽어갔던 곳, 가난한 화가가 부둣가에서 날일을 하며 담배 곽에 그림을 그리다 노숙하던 그 고향. 젊은 피가 희생된 곳, 열정과 고뇌와 고통에 신음하던 상처투성이의 내 고향.      


  서영은 객실을 빠져나왔다. 입구 차창으로 건물들이 지나갔다. 죽음과 공포와 상처와 아련한 그리움까지 한꺼번에 밀려왔다. 애증이 온통 더덕더덕 묻어나는 도시.      


  기차에서 내려 플랫폼을 지나 역사 입구 쪽으로 걸어갔다. 멀리 중년의 훤칠한 키에 뚜렷한 이목구비를 한 사내가 눈에 들어왔다. 기철이었다. 시골집 구석방 사진첩에서 본 흑백사진 속 외할아버지 모습이었다. 어머니가 늘 말한 그 모습. 외사촌 가운데 유독 외할아버지를 닮았다던 그 말을 몸서리치며 인정하는 순간이었다.     

  “서영아!”     


  어릴 적 외가에 가면 맨 먼저 부르던 그 목소리 그대로였다. 서영아!      


  “니는 세월이 비키 갔나??”     


  실없는 농담까지 하는 것 보니 마음이 많이 힘든가 보았다. 서영은 기철의 자동차 프라이드 구형에 짐을 실었다. 서영이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차를 쳐다보자 기철이 웃어댔다.     


  “야, 그래도 아직 잘 움직인다!”

  “상주가 자리 비워도 돼?”

  “니가 온다니까 전부 배웅하라고 난리더라!”

  “왜? 유명한 소설가라서??”     


  기철은 말이 없었다. 말하고 서영은 이내 후회했다. 상처를 후벼 파려고 온 여행이 아닌데. 정리를 하려고 왔는데 오히려 상처를 후벼 파는 꼴이 되었다.      


  “아직도 탁구 해?”     


  기철은 순간 몸을 움찔했다. 의도는 그게 아닌데 자꾸 입에서는 다른 말들이 튀어나온다. 서영은 스스로를 자책하며 그냥 입을 꾹 다물어버렸다. 그 때 폰이 울렸다. 편집장이었다.      


  “네! 아, 잘 도착했어요! 일주일 간 여기 있을 겁니다. 올라가서 뵙죠!”     


  기철은 운전을 하면서도 서영의 통화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애인??”


  서영은 말이 없었다.      


  “그래, 이제 재혼해야지.”

  “그런 거 안 해!”
   “으???”

  “기억 안 나? 오래 전에 그랬잖아! 내가 미친 년이라고!”     


  갑자기 속도가 확 줄었다. 기철은 고통스러운 신음소리를 냈다.     


  “그걸 아직 기억하나?”

  “난 모든 걸 다 기억해! 초록 대문 집 전부!”     


  고속도로를 달리던 기철의 차가 순간 갓길에 급정차한다. 기철은 호흡곤란처럼 가쁜 숨을 몰아쉬며 핸들에 머리를 쳐 박고 있었다.     


  “미안하다, 서영아!”

  “그 때, 내가 도움 청할 사람은 오빠뿐이었어. 아픈 아버지도 어린 동생들도 아니었어. 근데 오빠는 판사 앞에서 내가 미친년이라 했잖아! 정신 분열증이라며 약을 안 먹으면 안 되는 미친년!!!”     


  갑자기 기철이 차 문을 열고 뛰쳐나갔다. 서영은 또 후회했다. 용서했는데. 벌써 용서했는데 입은 도대체 용서가 안 되는 모양이었다. 순간 돌아서는 기철의 두 눈이 벌겋게 충혈되어 있었다.      


  “난 오빠가 올 줄은 몰랐어!”     


  기철은 아무말 없이 차를 몰았다. 가는 내내 서로 말이 없었다. 장례식장은 사람들로 붐볐다. 그도 그럴 것이 외사촌이 자그마치 일곱이었다. 시골에서 농사 지어 자식 일곱을 먹이고 입히고 공부까지 시키기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래도 외삼촌은 훌륭하게 해냈고 버젓이 잠들어있다. 빈소에 예를 갖추고 돌아서니까 외사촌들이 몰려와 있었다.     


  희자는 서영을 와락 안았다. 다들 촉촉한 눈빛으로 나를 맞았다. 초록 대문 집에 함께 살던 유년 시절의 그들. 단발머리에 교복차림으로 아침마다 버스비가 없어 내 저금통을 털어가던 막내 언니, 아침마다 작업복 차림으로 한일합섬에 출근하면서 교복을 소중하게 넣고 다니던 희덕 언니, 긴 키와 긴 목에 어울리게 항상 스카프를 매고 다니던 희자 언니. 방학마다 초록 대문 집에 와서 한 달 내내 마산 시내를 돌아다니던 오빠들. 어린 시절의 그들. 이제 서로 용서와 화해가 필요한 시간이 돌아왔다.     


  서영이 자리에 앉자마자 모두 우르르 몰려왔다. 기철은 직접 돼지국밥과 음식들이 든 쟁반을 들고 왔다. 다들 서영이만 빤히 쳐다보았다.     


  “우리 서영이 처제가, 작가가 될 줄 나는 알았지!”

  “혼자 있으모, 고향에 가끔 내려오지!”

  “고만들 있어 바라! 아-가, 밥 좀 묵고 물어 바라!”     


  희자가 큰소리를 쳐댄다. 서영은 자기도 모르게 풋- 웃음이 나왔다. 형제들 가운데 제일 큰 소리 못 치는 희자가 지금은 역전한 모양이다.      


  “처제! 며칠 있을 기제? 그라모 부산도 놀러왔다 가라! 알았제?”     


  희덕의 남편은 영화배우처럼 잘 생겼다. 그래도 서영의 눈에는 오래 전 포항 집 대학생 태원이 훨씬 더 멋있었다. 만신창이 된 태원을 희덕은 버렸고 그 후 포항 집은 경기도 어느 시골로 이사를 갔다. 지금은 경기도 작은 시에서 시의원을 하고 있다고 들었다. 갑자기 영민이가 보고 싶었다. 그 아이는 지금 어디서 무얼 할까. 서영의 소설을 읽었을까. 우리의 유년시절 초록 대문 집을 아직 기억하고 있을까. 희덕은 그 후 마도로스를 만나 결혼했고 한 때 부동산 투기로 재미를 봤다. 특유의 도도함이 내일모레 환갑인데도 온 몸을 감싸고  돌았다. 희자는 같이 야반도주까지 했던 용팔이를 떠나 한 때 방황하다가 요리사와 결혼했다. 거제에서 중국집을 열어 한 때 돈을 자루에 퍼 담았다고 한다. 그 후 남편의 외도와 폭행에 견디다 못해 이혼하고 사기꾼들에게 걸려 자기 소유의 많던 땅 다 넘어가고 지금은 혼자 지낸다고 했다. 그래도 희자는 아직 눈빛이 초롱초롱했다. 아직은.      


  서영은 자정이 가까워지도록 빈소에 앉아있었다. 술이 좀 취한 기철이 서영에게 다가왔다.      


  “서영아! 뭣 좀 묵어라!”


  서영이 술을 권하자 한 잔 마셨다. 그 때 기철의 아내가 다가왔다. 기철은 아내 손을 잡아 앉히고는 취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젤로 좋아하는 우리 고종사촌 서영이다! 우리 작가님! 알았제?”

  “아, 그 소설가?”     


  기철의 아내는 새삼 놀라는 표정이다. 기철은 결혼에 한 번 실패했다. 처음 결혼한 아내가 결혼 십 년 쯤 될 무렵 총각을 사랑하게 되어 떠났다. 그 후 아이들을 혼자 키우면서 힘들어하다가 이번 결혼은 꽤 성공한 셈이다. 기철의 지금 아내도 재혼이라, 두 사람에게 딸린 아이들이 딸만 합해서 넷이다. 아내를 서영에게 소개하고 싶었나보았다.     


  “우리 서영이! 젤 똑똑하고 당돌한 우리 서영이!!”     


  갑자기 기철이 울어댔다. 아내가 당황해서 말린다.     


  “와 이랍니꺼!”

  “흐흑, 서영아, 오빠가 미안하다! 내가 그 때 정신이 나갔지! 미쳤다고 그 놈 편을.”

  “내가 미안해! 다 지난 일인데. 마음에 담아두고 찌르고! 오빠야! 입바른 소리 잘하고 못돼 먹어서 그래, 미안해!”     


  기철은 엉엉 소리 내서 울었다. 갑자기 서러운 아이처럼 통곡을 했다. 남은 손님들이라고는 모두 가족들이라 별 실례는 아니었지만 늘 묵묵하고 조용하던 기철의 울음에 다들 하나 둘 와서 손을 잡아주고 같이 울어준다. 인생이 늘 그렇듯이 녹녹하지 않았기에, 맘껏 울어도 볼 수 없는 인생이었기에 다들 그냥 실컷 울어댔다.     


  “아버지!!! 우째 살아 냈습니꺼! 우째!!!”     


  영문을 모르는 기철의 아내는 남편의 이런 행동이 그냥 새삼스럽다는 표정이다. 희덕과 희자는 동생을 안으며 같이 운다. 도도하고 냉철한 희덕도 따라 운다. 서영은 소주잔을 비웠다. 칠 형제가 엉켜 엉엉 울어댄다. 아무도 말릴 수가 없었다. 가난하고 힘든 시절을 함께 버텨왔던 그들을 누가 말릴 수 있을까. 서영은 환상에 젖은 눈빛으로 울어대는 중년들을 힘없이 바라보았다.     


  “초록 대문 집 시절이 그리워! 그 때는 그래도 다들 눈빛이 반짝였어. 가난해도 힘들어도 희망이 있었잖아! 아버지가 월급날 통닭을 항상 서너 마리 사오셨어. 한 마리로 초록 대문 집 식구들 냄새만 풍긴다고. 그럼 문간방 영자 이모네까지 다 돌리고, 막상 우리 집 식구들은 몇 점 못 먹게 되지. 그래도 아버지는 그게 옳다고 생각하셨어. 차비 아낀다고 자전거 타고 다니시고 그 돈으로 책만 잔뜩 사서 모으고! 로사 언니네 서울 친척들이 다녀가고 비싼 양과자나 선물을 가져오면 또 온 집안에 다 나누고. 아, 딱 한 번 아버지가 아무도 몰래 우리만 먹인 게 있다! 바나나! 흐흐, 난 그 시절이 많이 그립다!”     


  울다가 서영의 아련한 넋두리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요새는 굶어죽는 사람도 없고, 그 시절 누구처럼 피 팔아 쌀 사는 사람도 없는데.”     


  희자가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그란데 와 이리 가슴이 갑갑하고 여-가 텅 뚫린 거 같노! 그렇게 아등바등 살았는데 다들 함 바라! 아직도 돈에 허덕대고 사람에 속고! 돈이 없으모 하루하루 살 수가 없고!”     


  서영이 다시 소주잔을 채웠다. 다들 옆에 모여 잔에 술을 따른다.      


  “희자 언니, 그 때 가발 사건 기억 나?”

  “가발? 아하, 희덕이 언니 기절한 거??”     


  형부들과 아내들과 아이들까지 점점 우리 주위로 몰려들었다.      


  “야! 그거 내 고모 아니었으모 죽었다!”

  “그기 뭔데???”

  “희자 이것이, 미용학원 다닐 때, 마네킹 가발을 다락 계단에 숨겨놨다 아이가! 내 몰래 미용학원 다닐 때 거던! 밤에 다락에서 책 꺼낸다꼬 문 여는데, 아- 사람 머리가 턱 안 있나?”     


  다들 와하하--- 웃어댄다. 울다가 이제는 다들 웃는다.     


  “그래, 내가 바로 뒤로 졸도했지!”

  “역시 우리 희자 처제는 실망을 안 시키지!”

  “와 이랍니꺼!!”

  “이 가시나는 그 때 용팔이하고 연애질 한다꼬, 늦게 들어오고, 내 혼자 방에서 쓰러졌는데 고모가 쿵- 소리에 놀라서 뛰어와서 식초 믹이고 동치미 국물 믹이고 손가락 발가락 다 따고 난리도 아니었지!”

  “병원을 가야지!”

  “그 때 오데 병원에 잘 갈 때가?”

  “겨우 정신 차리고 돌아오니까, 이 가시네가 들어와서는 한다는 소리가, 내 가발은 와 꺼냈노??, 안 하나?”     

  다시 또 다들 눈물이 나게 웃고 난리다.      


  “고모가 하도 성이 나서 내 등짝을 내리쳤는데, 와! 서영아, 너거 엄마 손이 얼마나 매운 줄 아나?”    

 

  서영이도 따라 웃어댔다. 돌아가신 어머니가 유일하게 구박하고 화를 내던 사람이 희자 언니였다. 덜렁대고 야무지지 못하다고 매번. 그러면서도 “저기 나중에 부자로 살 기다!”했던 말들.      


  모처럼 다시 초록 대문 집 시절 이야기로 빈소를 지켰다. 다들 깔깔대며 웃었다. 그 시절에는 한 없이 가난하고 힘들고 어려웠는데, 지금은 늘 그 시절이 그립다. 서로 살 비비고 얼굴 맞대며 살았던 그 시절이!     


  외삼촌은 평생 일궈 온 과수원 뒷산 감나무 아래 수목 장을 했다. 장례식이 끝나고 기철은 창원에 예약한 호텔까지 동행해 주었다. 서영은 사라진 도시 옛 마산을 둘러보고 가기로 일정을 잡았다.      


  “렌트 카를 알아 보까?”

  “됐어! 버스 타고 돌아보지, 뭐!”     


  기철은 어지간히도 서영이 신경 쓰이는 눈치다. 서영은 그런 기철조차 이제는 짐스럽다는 생각을 한다. 과거에 대한 짐, 운명이나 인연에 대한 짐. 다 버리고 올라간 대가로 심한 우울증과 인간에 대한 혐오, 누구는 심각한 애정결핍이라고 표현했지만 아무튼 그런 것들을 안고 살기는 한다. 도대체 서영이 잃어버린 것은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 과연 무엇을 잃은 것일까!     


  호텔에 짐을 풀고 이른 저녁 택시를 타고 창동 사거리에 내렸다. 서영은 서글픈 눈빛으로 거리를 둘러보았다. 사거리 바로 위에 큰 동생 재민이 다녔던 유치원의 뾰족 지붕의 고딕양식 교회가 있었고 사거리 옆으로 난 길을 따라가면 작은 동생 용민이 다니던 부설 유치원의 멋진 교회가 있었다. 고딕양식 교회 위로 더 올라가면 태양극장이 나오고 서영이 선 길을 따라 오른 쪽으로 조금만 가면 강남극장이 나왔다. 그리고 도로 건너 창동 안으로 조금만 들어가면 시민극장이 있었다. 서영은 계속 두리번거렸다. 극장의 흔적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서영은 창동 네거리 안으로 들어섰다. 최근에 조성되었다는 창동 예술 촌. 아버지가 어린 서영의 손을 잡고 주말이면 화랑이며 서점을 돌아다니던 곳. 창동골목에 죽 늘어서 있던 양배추샌드위치 포차들. 철판 위에서 지글대던 누런 마가린 덩어리들. 창동 골목 안쪽으로 들어가 보았다.‘고려당’이 아직도 영업 중이었다. 서영은 놀라고 기쁜 마음에 얼른 들어가 보았다. 창동에 올 때면 아버지는 언제나 커다란 통 식빵이랑 상추과자랑 양과자를 이 고려당에서 샀다. 따뜻한 통 식빵을 품에 안고 버스를 타면 집에 도착할 때까지 식지 않았고 그 향이 어린 서영의 스웨터에 촉촉하게 베여있었다. 딱히 먹을 사람도 없는데 서영은 눈에 보이는 대로 이것저것 담았다. 통 식빵도 하나 샀다. 골목을 걸어가며 상점 구경을 하다 보니 멀리‘코아 양과’가 보였다. 가게 규모는 축소되었지만 그래도 다행히 아직 건재하다. 마산에서 십 대를 보낸 사람이라면 누구나 기억할 수 밖에 없는 코아 양과점. 십 대 아이들의 대표적인 미팅 장소였고 약속 장소였던 곳. 토요일 오후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가는 버스가 이 곳을 지날 때면, 언제나 약속을 기다리며 코아 양과 앞 벤치에 줄지어 앉아 있는 사람들을 발견하곤 했다. 어떤 날은 딱히 약속도 없으면서 불쑥 내리기도 했다. 그들처럼 꼭 누군가를 기다리고 싶은 충동 때문에. 그렇게 기다리고 서 있으면 정말 누군가를 꼭 만나기는 했다. 손바닥만 한 마산 바닥에서 주말 오후에 코아 양과 앞을 한 번 쯤 서성대 보지 않고 십 대와 이십 대를 지난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렇게 서성대고 있으면 같은 반 친구를 만나거나 동네 아이를 만나거나 늘 그랬다. 그 때는 언제나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래서 늘 혼자만의 시간과 혼자만의 공간을 꿈꿨다. 미래에 대한 불안은 있었지만 이렇게 공허하지는 않았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뭐가 잘못된 것일까.     


  서영은 모처럼 추억을 더듬으며 창동 골목을 돌아다녔다. 수공예 액세서리도 사고 천연 염색이라고 자랑하는 스카프도 하나 사서 걸쳤다. 골목 군데군데 어린 시절과 학창 시절 추억이 스며있었다. 학문당 서점도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다. 어시장 맞은편에 있던 문화문고와 쌍벽을 이루던 큰 서점이었다. 문화문고는 구십 년 대 후반에 벌써 폐점을 했는데 이 서점은 아직도 건재하다. 문화문고 뒤 낡은 건물에 있던 책 사랑이라는 오래된 대여서점도 지금은 자취를 찾을 수가 없었다. 여고시절 나른한 토요일 오후에 친구들과 어울려 창동을 누비다가 책 사랑까지 흘러 내려와서 저녁 늦게까지 책에 빠져 있다가 또 몇 권을 빌려 주말을 마무리하곤 했는데. 그런 오후면 항상 저만치 앉아 신문을 보면서 우리를 흐뭇한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던 뇌성마비 시인. 서영은 갑자기 자판기 커피를 찾아 두리번거렸다. 거리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서영은 책사랑에서 이 시인을 볼 때마다 자판기 커피를 한 잔 뽑아드렸다. 그러면 안면 근육을 힘들게 움직이면서까지 감사 표시를 끝까지 하던 그 시인.      


  “언제 올라옵니까?”     


  편집장이었다. 갑자기 서영은 그가 보고 싶었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아이들 외에 누군가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은 없다. 그런데 갑자기 그가 많이 그립다.       


  “내려올래요?”     


  말을 해 놓고도 서영이 스스로 놀랐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편집장도 어지간히 놀란 모양이다.     


  “바로 갈게요!”     


  다행이다. 서영은 마음속으로 참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가 조금이라도 뜸을 더 들였다면 아마 서영의 마음은 영원히 누구에게도 열리지 않았을 것이다. 굳게 더 굳게 닫혀버렸을 거다. 얼마 후 또 전화가 걸려왔다. 한 시간 후 창원으로 오는 KTX 편에 좌석이 있다는 연락이었다. 서영의 얼굴에 모처럼 화색이 돌았다.      


  “그럼 마산역으로 오세요.”

  “마산역이요? 창원역이 아니라?”

  “마산. 여기가 내 고향이에요!”     


  서영은 그가 도착할 때까지 서너 시간을 서점에서 보낼 작정을 했다. 학문당 서점. 삼십 년 전 바닥에 쪼그리고 몇 시간이고 앉아 문고판 하나를 다 읽고서야 일어나던 장소에서, 다시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책을 넘겼다. 누군가를 기다리면서. 가슴 설레거나 두근거리는 사랑은 아니지만 언제나 곁을 지켜주었고 손을 뻗으면 항상 그 곳에서 바라봐 준 사랑이었다. 쉰이 다 되어가는 나이에 해 지는 서점 귀퉁이에 앉아 남쪽 바닷가 도시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러 달려오는 연인을 기다리는 기적 같은 시간이었다. 서영은 수줍은 미소를 한가득 지으며 프랑스 소설에 슬며시 빠져들기 시작한다.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해가 창동 예술촌 너머로 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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