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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노 Jul 24. 2024

초록대문집 겨울

  커다란 교실 한가운데 있는 난로 구멍탄 연기에 질식할 것 같았다. 


  발가락은 시리고 머리는 연기에 뇌가 가득 찬 느낌이었다. 추운 겨울날이다. 교실마다 배급되는 구멍탄이 창고에서 바닥날 때쯤이면 겨울 방학을 한다고 옆집 언니들이 그랬다. 아침에 바람이 너무 세서 우리 1학년 동급생인 연자랑 영민이 형식이랑 나랑 넷이서 맨날 꼭 붙어 등교한다. 정말 춥다. 보온 도시락이 꽁꽁 얼 정도다. 개구리만 한 학기 내 잡던 현수도 요새는 추운지 밖에 싸돌아다니지 않고 바로 등교를 한다. 근데 교실에서 틈만 나면 난로 앞에서 손장난이다. 선생님이 아무리 야단을 쳐도 현수는 안된다. 호기심 천국이다. 그래서 선생님이 아예 현수에게 난로 구멍탄 당번으로 정해주셨다. 다 싫어하는 일인데 현수는 신이 나서 맨날 제일 먼저 등교해서 구멍탄에 불을 피우고 마칠 때도 재랑 뒤처리를 한다. 그래서 요새 현수는 맨날 물에 젖은 대신 그을음에 코가 시커멓다.      


  안나 언니가 결혼을 하고 이 초록 대문 집을 떠났다. 상냥하고 착하고 예쁜 언니가 많이 보고 싶었다. 그래서 언니 얼굴 볼 핑계를 대고 얼마 전부터 로사 언니랑 성당 주일학교에 다니기 시작했다. 주일학교에서 성탄절 연극 공연을 한다.      


  희덕 언니랑 희자 언니는 밤마다 크리스마스카드를 만들었다. 그걸로 학교 친구들하고 무슨 일일 찻집 같은 데서 판매한다고 했다. 찻집 티켓도 손수 만들었다. 펜으로 종이에 하나하나 그림을 그리고 글을 썼다. 나도 옆에서 풀칠도 해 주고 단풍잎도 붙여주고 했다. 희덕 언니는 재주가 많았다.      


  그런데 영민이가 가끔 울었다. 태원이 오빠가 집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고. 그리고 서울에 있는 요한 오빠도 방학이 되어도 집에 내려오지 않는다. 어른들은 대학생 오빠들에 대해 말을 하지 않았다. 


  그들은 어디로 갔을까? 왜 말을 안 할까? 대학생이 되면 그렇게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지는 걸까? 로사 언니도 요새는 나한테 화만 낸다. 


  희덕 언니는 갈수록 말이 없다. 다들 이상하다. 대학생 남자들은 어디로 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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