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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가본드 Sep 19. 2024

나는 양산이 쓰고 싶은 남자입니다

저 앞에 두 사람이 걸어간다. 한 명은 우산을, 또 한 명은 양산을 썼다. 두 사람 다 키가 작아서 다리만 보인다. 우산을 쓴 사람은 남자인지 여자인지 알기 어렵다. 하지만 양산을 쓴 사람은 여자라고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게 대부분 맞다.




내가 양산을 처음 써 본 것은 몇 해 전. 여성인 부서장님께서 점심시간에 식사를 하러 양산을 들고 나가실 때 누군가는 그 양산을 받쳐 드려야 했다. 그때 부서의 몇 안 되는 남자들 중 가장 키가 컸던 게 나라는 이유로 부서장님의 점심시간 양산을 받쳐드리는 건 나의 일이 됐다(무슨 올림픽 개회식 선수단 입장 기수도 아니고...). 그렇게 원치 않게 그분과 양산을 같이 쓰는 이놈의 신세.


아니 그런데,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었다.


양산의 맛을 알고 나니 안 쓰고 살기 어려웠다. 몇 년 후, 그때의 기분을 기억하는 나는 양산을 쓰고 출근했다. 양산을 책상 위에 접어 놓고 잠깐 자리를 비웠다 오니 동료 한 명(여성)이 출근해 있다. 동료는 뭔가 얘기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는 표정으로 나에게 묻는다.


"설마... 이거 쓰고 출근한 거... 아니시... 죠?"


나는 입을 다물었다. 대화가 어떤 방향으로 이어질지 직감해서. 이건 그분만의 생각일까? 다른 사람들도 이렇게 생각할까? 검색을 해 봤다. 내가 편해도 그게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는 행위라면, 하고 안 하고를 떠나 최소한 알고는 있는 것도 나쁘지 않으니까.

이게 이렇게나 혐오의 대상인데 그걸 나만 몰랐나?

이런 생각을 가진 이들이 전체 중 얼마 정도인지는 모르겠지만 체감상 극소수는 아닌 걸로 느껴졌다. 남자가 양산을 쓴다는 건 꽤나 결단이 필요한 일이었구나. 무척 덥던 2018년에도 한 신문 기사로 양산 논쟁이 불붙었던 적이 있었음도 처음 알았다. 이게 어떻게 논쟁씩이나 될 수 있는 건지 나는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기자 직업의 특성상 90:10이라도 50:50처럼 보이도록 해야 한다는 걸 감안하면 아예 이해 못 할 일은 아니었다.


며칠 전, 30대로 보이는 남자가 양산을 쓰고 걷는 모습을 보았다. 맞은편에서 걸어오다 나와 눈이 마주친 그분의 얼굴에는 사람들의 시선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한 듯한 쑥스러움의 기색이 찰나의 순간에도 뚜렷했다. 그분께 내적 친밀감을 느꼈다. 그분의 모습은 내겐 성별이나 나이와는 아무 상관도 없이 그저 비 오는 날 우산을 쓰고 가는 흔한 모습과 하나도 다를 게 없었다. 그분의 모습에서 나도 언젠가는 양산을 쓸 수 있는 가능성을 희미하게나마 엿볼 수 있었다. 비록 내 손으로 직접 양산을 펴 들고 거리를 활보한다는 건 완전히 다른 문제고 그건 그야말로 혁명의 횃불을 치켜들고 '제폭구민 보국안민'을 외치는 수준의 비장한 용기가 필요한 행동이라서 상상 속의 대리만족으로 그치진 했지만.


일부 용자들의 그런 모습을 볼 수 있지만 아직은 드물다. 이들을 지금보다는 좀 더 관대하게 보아주면 어떨까. 누가 양산을 쓰건 우산을 쓰건 아무 생각 없는 게 그렇게 어려울까. 세상은 이상하리만치 타인에게 과도한 오지랖을 부린다. 배려도 아닌, 애정도 아닌, 쓸데없는 참견일 뿐.

지금은 바뀌었지만 작년까지도 사전을 찾으면 이랬다.

양산 말고 우산도 예전에는 여성 전용이었다고 한다. 예전 기록을 보면 비 온다고 우산을 쓰는 남자는 남성성 떨어지는 걸로 취급받았고, 군인은 아직도 우산을 쓰지 못한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검은 우산을 든 영국 신사가 나타났고 어느 때부터는 우산은 더 이상 여성의 상징물이 아니게 되었다.


내가 너무 단순하게 생각하는 걸까. 그냥 비가 오면 우산 쓰고 햇볕이 강하면 양산 쓰면 될 일 같은데. 우리는 불필요한 것까지 너무 나누고 가르고 정하며 살고 있지 않은가. 전에는 남자가 쓴다고 상상조차 못 했던 우산이 그랬듯, 언젠가는 양산도 남자의 손에 자연스레 쥐어질 날이 오기를 기다려 본다.


'그루밍 족(Grooming 族)'도 특별한 남성 아닌 그냥 보통의 남성이다. 한국은 세계에서 남성 화장품을 가장 많이 쓰는 나라이다. 안티에이징 한다고 화장품을 쓰는 중년남도 많고, 자외선 차단제는 늘 챙겨 다니는 남성들도 많다. 지금 내 방에도 간단한 비비크림과 톤업 선크림 정도는 스킨로션 옆에 놓여있다.


약 20년 전 '꽃을 든 남자' 컬러 로션이 처음 나왔을 때를 떠올린다. '무슨 저런 걸 쓰냐, 남자가?' '호모냐?' 이런 사람들이 많았고, 로션만 양산으로 바뀌었을 뿐 그때와 다른 건 전혀 없다. 어쩌면 지금이 약간 의견이 왔다 갔다 하는 딱 그때 아닌가 싶다. 양산 논쟁도 한 20년 지나면 이럴지도 모른다. "라떼는 말이야, 남자가 양산 쓰는 걸로 논쟁도 했었어."


길을 걷다 머리카락에 불이 붙을 것 같다. 양산이 필요하다. 하지만 난 아직도 머뭇거린다. 이 시대 남자로서 직면하는 공고한 벽을 끝내 넘어서지 못했다. 아직 무더위는 완전히 물러가지 않았지만, 소심한 결심을 해 본다. 내년엔 기필코 양산을 써 보고 말리라. 2024년 올해, 정말 더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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