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국적불명의 말은 누가 만들어낸 것일까
"천재는 노력하는 자를 이길 수 없고, 노력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이길 수 없다"
이젠 지겨울 정도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고, 귀에 딱지가 수십 번은 앉았다 떨어질 것 같다. 이젠 아예 '공자의 명언'이라면서 인생 선배들이 청년들에게 주는 대표 메시지처럼 되어 있다.
부끄럽지만, 어떤 시험에서 전국 수석이라는 것을 해 본 적이 있다. 그런데 만약 누가 즐기면서 했느냐고 묻는다면, 차마 그렇게 말할 자신이 없다. 목표에 조금씩 가까워지는 듯한 작은 성취감도 문득문득 있기는 했지만 그 기간 전체를 놓고 보면 아주 작은 부분이고, 그런 순간들이 있었다고 "저는 즐겼습니다!" 이런 어마어마한 말을 입에 올리기에는 양심이 너무 찔린다.
왼쪽 사진은 세계적인 발레리나 강수진 씨의 발, 오른쪽 사진은 은퇴한 축구스타 박지성 씨의 발. 아무리 봐도 즐긴 사람의 발로 보이진 않는다. 어쩌면 우리가 아는 탁월한 실력을 가진 사람들은 즐겼기 때문에 그런 수준까지 올라갈 수 있었던 게 아니라 어쩌면 그 출중한 기량에서 나오는 능숙함 때문에 우리의 눈에 마치 즐기는 것처럼 보이는 건 아닐까?
노력하는 사람을 이길 수 있는 길은 즐기는 게 아니라 그 사람보다 더 절박하게 하는 것 아닐까. 그렇게 해도 꼭 이긴다는 보장은 없고 단지 가능성만 높아질 뿐이지만 멈추는 순간 가능성은 완전히 제로가 되니,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고 나머지는 하늘에 맡길 뿐. 그렇게 죽어라 피눈물을 쏟아도 될까 말까인데 노력하는 자를 이기려면 즐기라는 말은 나에겐 좀처럼 와닿지가 않는다.
뭔가 이상했다. 대학자인 공자님이 그런 괴상한 말씀을 하셨다고 믿기 어려웠다. 정말 그런지 알아보았다. 알고 보니 공자님의 말씀은 '지지자 불여호지자(知之者不如好之者), 호지자 불여락지자(好之者不如樂之者)', 뜻을 풀면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는 것은 즐거워하는 것만 못하다.' 즉, 학문의 태도가 '앎-좋아함-즐거워함'의 3단계로 성숙함을 뜻하는 말이었다. 원전에서 인용된 부분 이외의 앞뒤 이어짐을 보아도 우리가 알고 있던 그런 뜻의 말은 전혀 아니었다.
소크라테스가 "악법도 법이다"라고 말한 적이 없는 것처럼(사실은 일본의 법학자 오다카 도모오의 말), 공자도 "천재는 노력하는 자를 이길 수 없고 노력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이길 수 없다"라고 한 적이 없다. 공자는 단지 알기만 하는 상태에서 더 학문을 닦으면 배우기를 좋아하는 상태가 되고, 나중에는 배우기로 즐거움을 삼는 상태로 발전한다고 했을 뿐이다.
이것이 우리나라에서는 "천재는 노력하는 자를 이길 수 없고, 노력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이길 수 없다"로 둔갑해 있다. '놈 자(者)'의 오역은 논외로 하더라도 '천재' '노력하는 사람'은 아무리 보아도 언급이 전혀 없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서울특별시 공무원 신규임용자 연수과정에 출강하면서 많은 신규 공무원들과 교류하고 지내니, 1년도 못 가서 그만두는 사람들이 갈수록 많아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나라 전체 통계를 보아도 재직 5년 미만 공무원 퇴직자가 2020년 9,968명으로 2019년(6,664명), 2018년(5,670명), 2017년(5,181명)에 비해 계속 늘고 있다.
누가 그렇게 그만두면 이런 얘기가 꼭 나온다. "요즘 사람들은 배가 불러서 나약하고 근성이 없어. 나 때에 비하면 좋은 건데"
그러나 그분들이 말하는 '나 때'에는 노력에 따른 신분 상승이 지금처럼 원천 봉쇄되어 있지는 않았다. 1인당 국민소득은 지금의 고작 1/20 정도였지만 사회는 급격히 덩치를 불리고 있었던 시기였다. 많이 힘들지만 혼신의 힘을 다할 이유가 최소한 지금보다는 뚜렷했다. 그때의 힘든 포인트는 '요즘 사람들'이 과포화 상태의 레드오션에서 지금 겪고 있는 어려움과는 성격이 다른 것이었고, '요즘 사람들'을 가장 힘들게 하는 건 노력에 따라 허락되는 열매의 기대 가능성이다. 단순하게 '나 때에 비하면 나은 건데'라고 하기 어려운 이유이다.
많은 인생 선배들은 의식주가 과거보다 훨씬 풍족해졌음을 강조한다. 그건 사실이다. 이 사실을 가볍게 보아서는 안되고, 앞 세대에 고마워할 일이다. 그런데 그분들이 크게 간과하는 게 있다. 그 의식주를 자력으로 얻는 과정은 '나 때'보다 훨씬 가혹해졌고, 그 가혹함은 풍족함으로 허락되는 만큼보다 더 큰 행복을 앗아갔다는 점이다.
우리 귀에 익은 금수저니 흙수저니 하는 말도, 많은 사람들은 그저 요즘 사람들의 경박한 언어 사용이나 루저들의 푸념 정도로 치부해 버린다. 그런 말이 왜 나오는지 그 이유에는 주목하지 않는다. 그리고는 또다시 요즘 사람들은 끈기가 없다고 말한다.
어릴 때부터 입시 지옥에 내몰리면서 아예 놀면서 뭘 하는지조차 스펙이 되고, 대학교에 가서는 학자금 대출로 아예 사회생활 시작도 하기 전부터 빚을 안고 시작하는 게 조금도 이상하지 않게 된 이들에게, 자칭 인생 선배들이 주는 말이 "아프니까 청춘이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 "청년들은 꿈이 없어 불행하다" "노력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이기지 못한다" 이런 식이면 듣는 쪽은 어떤 느낌을 가질까?
"인생 선배들 말씀 듣지 말자" 이렇게 말하고 싶지는 않다. 그들이 정말 후배들을 걱정해서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그것만이라도 믿고 싶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분들이 후배들을 진심으로 걱정한다는 것과 그분들의 말이 객관적으로 옳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인생 선배들이 "이게 다 너희를 위해서 하는 말이야"라고 암만 강변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