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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가본드 Jun 24. 2023

'저는 솔직함이 장점입니다'가 주는 불편함

그와 몇 년 만에 만났다. 커피를 사이에 두고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말하고 있었다. 그에게 요즘 글쓰기의 매력에 푹 빠져 있으며 나중에 글을 써서 작가가 되어 보고 싶다고 하자 그는 기겁을 하며 내가 단념해야만 하는 이유를 조목조목 설명하기 시작한다.


이젠 챗봇이 글 다 써 줄 텐데.


챗봇? 챗GPT의 작동원리는 근본적으로 '확률(probability)'이다. 그놈은 가장 확률적으로 그럴듯해 보이는 문장을 작성해서 보여주는 놈이다. <나는 이따 2시에 그녀를 만나서 서촌에서 ____을 먹을 거야> 챗GPT는 여기에 파스타+피자나, 삼겹살+물냉을 넣을 것이다. 실제 여기에 들어갈 말은 무궁무진하지만 챗GPT는 '옳은 답변이 될 확률이 가장 높은' 선택지를 꺼내든다. 당연히 챗GPT의 답변 능력은 인간보다 더 합리적이고, 더 객관적이며, 더 정확할 확률이 높지만, 이는 반대로 '확률적으로 낮은’ 답변을 내놓기는 힘들다는 뜻이다.


무슨 말이냐면, 챗GPT는 "빵 먹을까?"라고는 말해도 "따끈하게 구운 크루아상 먹을래?"나 "갓 구운 바게트 먹을래?"라고는 못한다는 얘기다. 그런데 "빵 먹을까?"처럼 그렇게 확률적으로 높은 문장을 쓰는 사람은 작가 축에 들지 못한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 없다지만 그걸 뻔히 알면서 늘 새로운 문장, 아니 '확률적으로 낮은' 문장을 쓰려고 안달 내는 족속이 작가라는 이들이다. 설령 이단아적 발상으로 공학도 호적에서 파이는 한이 있더라도, 세월 지나도 챗GPT가 작가를 대체할 수 없다고 내가 굳게 믿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이다.


하지만 원래 설명하기를 좋아하지 않는 현가본드의 선택은 이런 상황에서 늘 그랬듯 조용한 무늬연구™였다. 그러지 말고 할 말 있으면 하고 살아야 한다고 말할 사람이 분명 있겠지만, 오직 중요했던 건 이 인간을 참교육하는 게 아니라 이 대화를 1초라도 빨리 끝내는 거였으니까. 그러자면 그의 할 말이 떨어질 때까지 어떤 말도 해서는 아니 되었다(하지만 그런데도 30분을 넘게 가더군).


그런데.. 넌 공대 나오지 않았냐? 글쓰기 교육은 받아 봤어?


글쓰기를 어디 가서 누구한테 교육받는단 말인가. 글쓰기는 오직 글쓰기를 통해서만 배울 수 있고 글쓰기 밖에서는 어떤 배움의 길도 없다. 하지만 뭐가 됐든 내가 말을 하면 한마디당 최소 10분은 길어지겠지. 테이블이 민무늬가 아니어서 다행이다.


내가 솔직하잖아. 나니까 이런 말도 해 주는 거야.


아, 드디어 끝인가? 그 말만 기다렸어. 그런데 이 탁자의 무늬는 정말 예술적이군. 아예 시선강탈 수준인데.




스스로 '나는 솔직함이 장점'이라 하는 사람들은 대개 생각나는 대로 내뱉는다. 아무렇지 않게 남을 지적하고 비난한다. 때로는 외모에 대한 품평도 서슴지 않는다. 솔직함이라는 무기로 남은 자주 비난하면서 자기가 똑같이 당하면 급발진하기 일쑤다. 가끔 자신이 자가당착에 빠진 걸 알고 '아, 분노하면 안 되는데' 하다 쿨병에 걸리기도 하는데 이 정도만 돼도 엄청 괜찮은 축에 속한다. 그런데 그럴 거면 그냥 솔직하지 말면 안 되나?


악의 없는 농담일 때도 있지만 그렇다고 상대에게 상처를 안 주는 것도 아니다. 다른 사람들은 솔직하지 못하고 가식적이라서 그에게 무례하다 말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딱 하나의 차이가 있다면, 다른 사람들은 느끼는 대로 모두 다 말하지 않는 게 배려임을 알 뿐이고, 솔직함보다 그게 우선임을 알 뿐.


혹시라도 기분 나쁜 티를 내면 "난 솔직하게 말했을 뿐인데 왜 이렇게 예민해?"라며 프로불편러 취급을 받기 십상이다. 솔직함을 가장한 무례함은 꼭 무슨 손오공처럼 온데간데없이 뿅 사라지고, 그 자리에 '지나치게 예민한 너'만 남는다.


참으로 후장이 답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불쾌한 감정은 성격상 주관적이라서 다른 사람이 허락하네 마네 할 성질의 것부터가 애초에 아니지 않나. 그런데 불쾌한 감정까지 허락받고 가져야 하는 것처럼 되어 버리다니. 이게 싫어서 보통은 속으로 삭이고 넘어가는 쪽을 택하지만 천년만년 그럴 수도 없으니 이건 아예 금붕어로 역진화해서 아가미가 답답해질 노릇이군.


남의 허물에 대해 솔직한 건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이다. 그냥 아무 생각 없으면 되는 일이다. 겨우 그런 게 솔직함이면 무엇 때문에 솔직하기가 어렵다고 할까? 그들 딴엔 누군가 아침에 세수하다 코딱지가 시속 80km/h로 튀어나와서 셔츠에 뭉개져 붙어 있는 거 말해주는 것도 얼마나 어려운지 아느냐고 강변할진 모르지만, 아무리 그래도 "여러분 실은 제가 오늘 하루종일 티셔츠에 코딱지를 대문짝만 하게 붙이고 다녔습니다 엉엉" 이게 훨씬 더 어려운 건 분명하니 말이다.

'Honesty is the best policy.' 처음 들을 때부터 이 말이 싫었다. 정직이 최선의 방책이라니? 누군가가 자기 여친 예쁘지 않냐고 내게 물었는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면 그럼 '아니, 안 예뻐' 이게 최선이란 건가? 무슨 이런 쓰레기 같은 말이 다 있담.


그런데 한참의 세월이 지나서야 알았다. 영어의 honesty는 자신에 대해 거짓됨이 없음이라는 걸. 그건 오직 부족한 자신을 거짓되게 포장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문제라는 걸. 이 사색에 닿았던 사람은 그 말의 어마어마함을 알기에 자신을 주어로 세워서 쓸 생각 자체를 하지 못한다는 걸.


사람들은 말한다. '솔직함과 무례함은 종이 한 장 차이'라고. 그게 아니라 아예 영역 자체가 다른 건 아닐까? 솔직함은 자기의 허물에 거짓됨이 없는 거고 무례함은 타인의 허물에 할 말을 못 참는 거고. 누구도 이 문제를 명확히 정의해 준 적은 없지만 나는 이 기준이 제일 편하다. 적어도 그 둘을 헛갈릴 일은 없으니.

저는! 솔직함이!! 장점입니다!!!


누가 이러면 움츠러든다. 정말 솔직한 사람은 저런 말 하지 않던데. 솔직함을 1인칭으로 쓰는 사람들에게 진정 솔직함을 온종일 사색해 본 날이 있었을까. 그랬다면 그 세 글자가 목구멍을 채 새기도 전에 전신을 덮쳐오는 그 말의 형용할 수 없는 무게를 온몸으로 먼저 알아 버렸을 텐데.


또 어쩌면 이런 생각도 들지 모르겠는데. 솔직함은 일단 잠깐 접어두고, 우리가 일부러 입을 열어 뭔가를 말할 땐 그게 최소한 침묵 이상의 가치는 있어야 한다는 걸. 그동안 자기가 솔직함이라 믿어 왔던 건 어쩌면 실제로는 솔직함이 아니라 입으로 하는 설사였을지도 모른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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