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배가본드 Jun 08. 2023

안녕하세요? 완전 대체가능한 둥근돌이랍니다

네모난 침대에서 일어나 눈을 떠보면
네모난 창문으로 보이는 똑같은 풍경
네모난 문을 열고 네모난 테이블에 앉아
네모난 조간신문 본 뒤
네모난 책가방에 네모난 책들을 넣고
네모난 버스를 타고 네모난 건물 지나
네모난 학교에 들어서면 또 네모난 교실
네모난 칠판과 책상들
주위를 둘러보면 모두 네모난 것들 뿐인데
우린 언제나 듣지 잘난 어른의 멋진 이 말
‘세상은 둥글게 살아야 해’
지구본을 보면 우리 사는 지구는 둥근데
부속품들은 왜 다 온통 네모난 건지 몰라
어쩌면 그건 네모의 꿈일지 몰라

              – 화이트, 네모의 꿈 –


천국은 어떻게 생겼을지, 상상해서 그려 보란다. 엄청나게 큰 도서관을 그렸다. 아주아주 커다랗고 텅 빈 도서관의 수많은 책들 속에서 마음껏 혼자이고, 마음껏 조그만 내 모습.


다시 그려 와.


사방팔방에 온갖 꽃이 만발하고 천사가 하프를 뜯으며 앵앵 날아다니는 걸 바랐던 걸까. '참 잘했어요!' 도장을 내게는 찍어 주지 않았으니 내가 그린 건 천국이 아니었나 보다.


선생님도 천국 본 적 없잖아요.


뭐라고 대답이 돌아오긴 했는데 그 대답은 기억이 나질 않고 그때 기분만 기억난다. 속시원한 기분은 아니었다. 뭔가 말씀하시던 선생님의 웃음에서 느껴지는 요상한 기분만 어슴푸레 기억날 뿐이다. 둥글둥글하라는 말을 그 무렵에 무척 많이 들었고, 그 해에 받았던 성적표 하단의 선생님 의견란에는 자필로 '(블라블라 어쩌구저쩌구...)하나 사고가 엉뚱한 데가 있음'이라는 말이 있었다.




횡단보도에서 파란불이 떨어지길 기다리며 많은 아이들이 서 있다. 혼자 오른쪽에 가서 서니 녹색 깃발을 든 누군가가 이쪽으로 오란다. 차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오는데 왜 왼쪽으로 건너야 하는지 궁금했다. 내가 모르는 무슨 이유가 있을 것도 같은데. 방학숙제의 일기에 적었다.


이런 건 일기에 쓸 내용이 아냐.


왜요? 그랬더니 다른 애들이 쓰는 걸 좀 보라는 말이 돌아왔다. 그 후로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에 대해 "왜요?" 하면 돌아오는 답은 대부분 "사람들이 바보냐? 다 이유가 있으니 그런 거다(...그래서 그게 뭔데요...)" "넌 쓸데없는 생각이 너무 많아(...하지 말아야 할 생각의 범주에 들어가는 거네요...)" "좀 둥글게 둥글게 살아, 사사건건 따지지 말고(둥글어도 그렇게 둥글면 남만 좋은 일 시키는 건데요...)" 이 셋 중 하나였으니.

아니, 안 하겠다는 게 아니라, 제발 그 이유라도 좀 알고...

내가 만약 학습능력이 나쁘지가 않아서 차라리 그런 건 안 묻느니만 못하다는 걸 진작 터득했다면, '이런 건 일기에 쓸 내용이 아니야'라는 말에도 차라리 아무 말 없이 석연찮은 미해결 상태를 택했을 텐데. "왜요?" 하는 진짜 이유는 뭔가를 받아들이기 싫어서가 아니라 사실은 받아들이고 싶은데 그게 잘 되지 않아서였는데. 늘 돌아오는 게 '둥글게 둥글게'일 때 그런 대답을 듣는 기분이 말 없는 석연찮음보다도 더 싫었고, 그러면서 점점 뭔가를 묻는 것조차 잊어버린 맹한 어른이 되어 갔다.


그러다 나중에 어른 되어 외국에서 몇 년 살다 오니 복도든 횡단보도든 모두 우측통행이 되어 있다. 횡단보도는 아예 유도 화살표까지 넣어 놨다. 그제야 알고 보니 좌측통행은 일제강점기의 흔적이고 우린 우측통행이 맞는데, 일본군이 물러간 게 도대체 언제인데 그 후로도 수십 년을 이유도 모른 채 당연히 그래야 하는 걸로 생각하고 열심히 좌측으로 통행하며 많은 사람들이 횡단보도에서 죽고 다치는 와중에 내가 들은 말은 '이런 건 일기에 쓸 내용이 아냐'였다니. 그럼 이렇게 써야 했던 걸까.


"오늘은 아침에 샌드위치를 먹었다. 맛있었다(동글). 누나랑 보드게임을 했다. 점심은 라면을 먹었다(동글). 오후에는 밖에 나가 한강에서 자전거를 탔다(동글동글). 집에 와서 정몽주의 위인전을 읽었다. 저녁은 된장찌개를 먹었다. 참 맛있었다(동글동글동글)."
오죽하면 이 화살표까지 필요했을까. 언젠가는 이 화살표도 없어지겠지. (사진 : daki post)

모두가 둥글게 둥글게를 외친다. 나만의 모를 버리라 한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 한다. 한 세상 사는데 모날 까닭이 어디 있느냐 한다. 그렇게 모난 돌을 배척한다. 여차하면 모난 돌을 난타하는 망치 노릇을 자청한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말은 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겠지만, 그걸 강조하는 결과는 결국 동조과잉(overconformity)에 따른 몰개성이다. 상호 대체가능성 무한하고, 무엇도 의문시하지 말고, 할 말 있어도 없고, 도저히 아니어도 외면하고. 이래도 흥, 저래도 흥, 이러면 누이 좋고 매부 좋으니 엄청 조용할 것도 같은데, 정작 세상은 왜 이리 시끄러울까.


진짜로 정을 맞아야 하는 건 오히려 둥근돌 아닐까. 닳아 빠진 둥근돌은 주춧돌로도 디딤돌로도 못 쓴다. 모셔 놓고 보는 것밖에 못 한다. 잘해야 금붕어 어항 바닥에 깔기가 전부다. 그야말로 아무 짝에도 못 쓰는 둥근돌이 어딘가에 쓰이려면 정을 치고 모양을 만들어 쓸모를 내야 한다. 역사에 이름을 남긴 사람들 중 둥근돌 없던데. 아이들한테는 모난 돌들의 재미없는 이야기를 억지로 읽게 하면서, 말로는 둥글게 둥글게를 외친다.


우리한테 정말로 필요한 건 작은 동그라미 슬롯에 들어맞는 무수한 동그라미들일까. 아니면 세모난 돌, 네모난 돌, 별난 돌을 모두 담을 수 있는 굉장히 큰 동그라미 한 개일까.




다시 도서관. 강산이 몇 번 바뀐 지금 또다시 누가 내게 천국이 어떻게 생겼을지 그려 보라 한다면, 내 그림은 여전히 도서관이다. 그건 천국이라 하기엔 너무 흔한 거 아니냐 할지 몰라도,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든 사람 구경을 하든 그냥 멍 때리다 졸든 그 편안한 행복감이 얼마나 큰지를 생각하면 어쩌면 우린 오래전에 이미 모두 죽었고 지금 천국에 와 있는 건 아닐까.


그래, 도서관은 도서관인데, 두 개는 그때랑 다르려나 모르겠다. 하나는 한 줄기 햇빛이 유리 천장에서 뿜어져 나와 내가 읽고 있는 책 페이지를 따스하게 내리쬐고 있을 것이고, 둘은 그땐 마음껏 혼자인 나를 그렸지만 지금은 마음껏 둘인 걸로 그리고 싶어질지 모르겠다. 나는 실제로도 늘 그렇듯 그림 속에서도 책을 보다 헤드뱅잉을 하며 졸고 있을 것이고 옆에 그려진 사람은 그렇게 궤도를 뱅뱅 그리다가 언제 궤도를 이탈할지 모르는 위태로운 내 대가리를 외면하고 옆에서 사뭇 진지하게 책을 읽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사람을 아무리 진지하고 심각하게 그려도 졸라맨밖에 안 되기 때문에 그런 그림은 때려죽인대도 나올 수가 없으니 이건 그냥 상상일 뿐이다. 상상 속에서는 무슨 일이든 가능하니까 말이다.



이전 11화 알고 보면 나쁜 사람이 없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