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아, 들을 때마다 스멀스멀 올라오는 이 찝찝한 기분을 어찌 하리오? 개인적으로는 '나쁜 사람이 없다'보다 '알고 보면'이 더 괴상하게 느껴진다. 그럼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모르고 보니까 그렇단 말인가? 그렇게 명쾌한 입장을 가지게 된 게 어떤 의미에선 참 부럽다. 다른 건 몰라도 최소한 엄청 편하긴 할 테니.
불특정 다수를 대뜸 가르친다는 게 이렇게나 위험하다. 모든 사람에게 다 들어맞는 얘기를 하려다가 누구에게도 들어맞지 않는 얘기가 되어 버리고 마는 것. 특히 인터넷 강연이나 자기계발서에서 이런 일이 자주 생기는데, 이것이 '불특정 다수 계도의 역설'이다.
내 직장에는 전설과도 같은 에피소드가 하나 전해 내려온다. 어떤 직원이 ♡장님께 사업계획서 보고를 드리려고 30페이지가 넘는 사업계획서를 만들어서 가져가니, 보고서는 한 글자도 읽어 보지 않고 이렇게 묻더란다.
"자네, 3에서 1을 빼면 뭐가 남나?"
"2입니다."
♡장님은 테이블을 때려 부술 기세로 벽력같이 호통을 쳤다. 너는 정신 상태가 글러먹었으니 답을 알아 올 때까지 보고하러 올 생각하지 말라고. 결국 이 직원은 보고서 얘기는 한 마디도 꺼내보지 못하고 쫓겨났고 이 답을 알아내려고 무려 3주를 야근하고 백방으로 수소문하며 ♡장님이 원했던 답을 알아냈다.
♡장님이 요구한 대답은, '삶(3)에서 일(1)을 빼니 아무것도 남지 않더라(0)', 그래서 답은 '0'이었던 것이다. 그 3주 동안 사업계획서 결재를 못 받아서 사업은 아예 착수조차 못했고, 이런 사정을 알 리 없는 계약 대상 민간업체는 왜 빨리 계약하고 사업비 안 보내 주느냐고, 우리 직원들 월급이 못 나가고 있다고 난리, 난리...
그 직원은 이 답을 알아내고서야 간신히 ♡장님을 알현할 수 있었고 결재를 받아 사업을 시작할 수 있었다. 그런데 불과 열흘 후가 3월 31일이라 1분기 진척도를 보고해야 하는데 그 시점에서는 당연히 진행된 게 있을 수가 없었고 왜 진작에 일을 미리미리 시작하지 않았느냐며 무려 2시간을 왕창 깨진 것이다. 2시간 동안 ♡장님이 무슨 얘기를 했는지 정확히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마지막 말은 "말대답하지 마"였다고 전해진다.
그런데, 그 ♡장님이 하필 이리로 발령 나서 온다는 것이 아닌가? '그분께서지나간곳 풀한포기안남는다'라는 표어까지 있는 판에 하필 여기로? 망할 망(亡)이다. 충격과 공포로 적막만이 감돈다. 아무도 말이 없지만 다들 휴직을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음을 모두 안다. 이심전심이라던가? 이순자가 심심하면 전두환도 심심하다.
누군가가 무거운 침묵을 깬다.
"그래도, ♡장님이 집에서는 좋은 아빠래요."
세상에 나쁜 사람은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 그들의 주장은 늘 이렇다. 나쁜 사람은 없고, 그를 나쁘게 보는 눈만 있을 뿐이라 한다. 사람이 나쁜 게 아니고 상황이 나쁜 거라 한다. 좋은 사람 나쁜 사람도 단지 우리의 주관적 기준일 뿐이라 한다. 이익이 이익만은 아니고 손해도 손해만은 아니니 즐겁게 손해 보라고 한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니 소중한 인연 소중히 대하라고 한다.
난 잘 모르겠다. 평소에 그렇게까지 생각하고 살지 않아서 이런 거 논쟁할 깜냥도 못 된다. 그런데 제발 하나만 좀 어떻게 안 될까. 백 번 양보해서 정말 그렇다고 쳐도 "알고 보면 나쁜 사람이 없으니까 적극 환대하고 수용하라' 이런 식의 괴상한 결론으로 점프해 버리는 것만은 제발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가 아무리 무식해도 이분법으로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을 가르는 건 반대다. 단지 나랑 맞지 않을 뿐인데도 상대방을 대뜸 나쁜 사람으로 규정할 때가 많다는 것 정도는 안다. 이해관계가 대립해서 양쪽 다 상처만 남긴 채 서로를 나쁜 사람으로 기억하게 되는 일도 많이 봤으니까. 나 자신도 그런 일을 겪었으니까.
하지만 '알고 보면 나쁜 사람이 없다' 이게 만인 앞에서 공공연히 포교까지 할 정도의 무게를 가지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알고 보면' 나쁜 사람이 없는데 '모르고 봐서' 몰랐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일차적으로 중요한 건 그게 아니라, 특정인 때문에 내가 계속해서 너무 힘드니 상대로부터 나를 어떻게 보호할지의 문제이다. 상대방이 정말로 악독한 마음을 먹고 날 괴롭히든 배려가 없어서 내가 괴롭게 되든 그게 만성적이 되면 이미 그는 내게 나쁜 사람 아닌가. 알고 보면 나쁜 사람이 없다(네놈은 모르고 보니까 그런 거 아니냐) 그런 말은 달나라의 토끼한테나 하면 될 것이다.
다 맞다고 치자. 알고 보면 나쁜 사람 없고, 나쁜 건 상황뿐이라 치자. 그래도 누군가로 인해 내가 지속적으로 힘들다면, 이 살벌한 세상에서 나를 지키기 위해 그를 가까이하지 않아야 한다는 그 하나의 사실은 불변이다. 알고 보면 나쁜 사람이 없고 있고는 그다음 문제다. 제발 그 순서를 뒤집어 외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그래도, ♡장님이 집에서는 좋은 아빠래요."
태생적으로 '본인피셜'일 수밖에 없는 말이지만, 정말 그렇다고 쳐도 일단 나부터 살고 봐야 하니 하루빨리 짐 싸서 튀어야 한다는 그 사실 하나는 변하지 않는다. 그가 집에서 좋은 아빠인지 아닌지는 나중에 할 일 더럽게 없을 때나 논하자. 그리고 맨 앞의 '그래도'는 좀 빼자. 그래도가 뭐냐 그래도가.
'알고 보면 나쁜 사람이 없다' 이 논의 자체가 본질을 흐리는 건 아닐까. 복잡하지 않은 건 복잡하지 않게 생각하고 싶다. 설령 나 같은 범부의 깜냥으로는 알지 못하는 심오함이 있을지라도 그 영역은 학자들에게 맡겨두고, 나는 살아가는 데 필요한 만큼만 고민하고 싶다.
성선설이냐 성악설이냐 성무선악설이냐 하는 문제도 그냥 학자들한테 맡겨 두면 어떨까. 어느 것이 맞든 나에게는 에너지 뱀파이어로부터 나를 어떻게 지킬지가 중요할 뿐이다. 그가 나쁜 사람이라서인지, 나쁜 사람은 없고 나쁘게 보는 눈만 존재할 뿐인지는 그 상황의 당사자에게는 구별의 실익이 없는 한가한 공론일 뿐이다.
네. 알고 보면 나쁜 사람이 없는데 모르고 봐서 몰랐네요. 죄송해요. 하지만 일단 사람 좀 살고 싶어요. 그냥 '알고 보면 나쁜 사람이 없다' 거기까지만 해주세요. 나와 너무 안 맞는 사람까지도 나쁜 사람 아니란 이유로 억지로 뭔가를 해야 한다거나 억지로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한다는 기이한 결론으로 쿵 떨어지진 않았음 해요. 그런 인연에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기엔 인생은 너무 짧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