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다른 직장에서의 일이다. 한 선배가 계셨다. 나온 대학교가 같아서 선배라고 표현은 했지만 나보다 연차가 무려 16년 높았다. 드라마라면 대기업의 유능한 직원의 전형으로 묘사될 딱 그런 분이었다.
회사는 중국시장 진출을 위해 청두(成都)라는 곳에 현지 법인 설립을 추진했고, 선배는 이 프로젝트의 요직을 자청했다. 그런데 어느 날, 나에게 그 선배가 둘이서만 조용히 저녁을 먹자고 한다. 장어구이가 자글자글 익어 가는 불판 너머로 소주가 두어 잔씩 오가고, 선배는 작심한 듯 말했다.
"어이, 방랑자 배가본드!"
"네 차장님. 아니, 선배님."
"너 나랑 같이 가줘야겠다."
"......"
'같이 가자'도 아니고 '같이 가줘야겠다'다. 글로 모든 것을 옮기기는 어렵지만, 그 분위기와 상황으로 알 수 있었다. 선배에겐 이게 오래된 생각이구나. 선배는 같이 일할 사람이 필요해서가 아니라 나와 일하고 싶구나.
나는 그때까지 외국에는 나가 본 적도 없었고, 이 일은 시쳇말로 '맨땅에 헤딩'이었다. 하지만 그 선배는 내겐 말하자면 롤모델이었고 그와 같이 프로젝트를 하는 이런 기회는 또 없을 것 같다는 생각만은 또렷했다.
하지만 여러 사정상 그때 나에겐 해외근무는 쉽지 않아서 절충안을 냈다. 프로젝트에는 몸담되 청두에 상주하진 않고 필요할 때만 오는 것으로. 그렇게 선배는 현지에서, 나는 국내에서 나름의 역할을 맡게 되었고 수십 명 규모의 TF(Task Force: 특정 과업 수행을 위한 임시 조직)가 편성됐다.
내 삶에서 가장 열심히 일했던 때가 그때다. 일당백의 출중한 선배 덕분에 해외 법인의 초기 안정화는 잘 되어 갔고 마무리되는 대로 2기 멤버들에게 바통을 넘겨주면 되었다. 나에게도 좋은 일이었다. 내 경우는 많이 보탬이 되었다고 하긴 어렵지만 어찌 됐건 나도 그중 하나였으니.
그런데 이렇게 되자 실제로는 자기야말로 진짜 공로자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여기저기 늘어 갔다. 원래는 사업 제안서와 착수 보고서에 자기 이름 들어가는 것조차 싫다던 사람들이었는데, 이젠 자기가 사석에서 지나가듯 말한 게 나비효과처럼 이렇게 된 거라는 둥, 자기가 그때 그 한마디 안 했으면 이 모든 상황은 없었다는 둥 온갖 망언을 서슴지 않는다. 누가 보면 이 회사는 모두가 청두 법인 업무만 하는 줄로 알겠다. 하아, 이 꼴 보느니 차라리 선배 따라서 중국으로 튀어 버릴 걸. 부장 라인에서는 서로 자기 공이라고 싸움도 났다는 후문이다(전화로 싸웠는지 실제로 만나서 현피 뜨고 싸웠는지는 나도 모른다).
그런데, 이듬해 여름에 문제가 생겼다. 중국 서부가 그야말로 초토화된 쓰촨성(四川省) 대지진 참사가 그때 있었다. 쓰촨성의 대표 도시인 청두는 도시 기능을 상실하다 못해 사실상 도시가 아니게 되다시피 했고, 회사의 청두 법인은 그야말로 개점휴업 상태가 되었다.
이렇게 되니 재미있는 상황이 벌어졌다. 며칠 전만 해도 저마다 자기를 빼놓으면 청두 법인 설립 프로젝트를 말할 수 없는 것처럼 떠들더니, 이제는 다들 그런 게 있다는 것조차 까맣게 몰랐거나, 중국 청두에서 뭔가 한다고는 들었지만 자기 일로 바빠서 정확히 뭘 하는지는 전혀 몰랐고 아무 관계도 없는 사람들이 되어 버렸다. 다 함께 까마귀를 삶아 먹고 기억상실증에라도 걸린 것인가?
손실 소명하라고, 그룹 고위층에 보고해야 한다고, 하루가 멀다 하고 이리저리 불려 다니고, 내부 감사에 착수하고... 벌집을 쑤셔 놓은 것처럼 난리가 났다. 나는 극심한 스트레스로 심신의 건강을 잃고 더는 도저히 일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결론만 말하면, 지금 그 선배도 나도 회사에 없다. 성과평가에서 최하등급을 받았고(정량화할 실적 자체가 없었다), 사실상 회사에 남기 어렵게 되었다. 나는 그 선배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알지 못하며, 그도 내가 지금 어디서 뭘 하고 사는지 알지 못한다.
대형 서점의 수많은 자기계발서들, 그리고 직장에서 높은 분들의 훈시엔 이 말이 빠지지 않는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도전하라!" "도전에 따른 실패는 성장을 위한 밑거름이다!" 나는 지금 속한 곳이 3번째 직장인데, 3개 직장에서 모두 이 말을 들었다.
그러나 도전에 따른 실패가 성장을 위한 밑거름이 되는 건 조직의 입장이지 직원의 입장이 아니다. '조직의 성패=자신의 성패'인 오너가 다른 오너한테 그렇게 말할 순 있어도, 오너가 직원에게 또는 직원이 직원에게 그렇게 말한다면 이건 그야말로 공염불이다. 오너 아닌 직원의 입장에서 실패가 어떻게 밑거름이 되는 것인가?
권고사직 절차가 진행되는 동안 있었던 새해맞이 비전 선포식에서, 나는 "열 번 도전해서 한 번만 성공해도 그건 성공이다!"라는 희대의 헛소리까지 들어야 했다. 열 번이나 도전하게 해 주는 직장이 있긴 한가? 나중에는 철저히 결과론에 따라 '프로는 결과로 말한다!' '직장은 학교가 아니다!' '직장은 배우는 곳이 아니라 증명하는 곳이다!' 이게 되는데?
기업은 왜 "열 번 도전해서 한 번만 성공해도 그건 성공이다!"라고 외칠까? 나는 그 이유를 안다. 기업은 실패를 도려내어 버리기 때문이다. 당연히 실패의 연루자들도 함께 도려낸다. 이렇게 기업은 성공 가도를 달린다. 그리고 오늘도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적극 도전하라고 외친다.
그러나, 직원의 입장에서 보면 도전이란 그야말로 자기의 명줄을 내어 거는 일이다. 어떤 이유로든 결과가 성공이 아니면 대가는 참혹하다. 불가항력의 천재지변마저도 '담당자가 책임 안 지면 누가 지느냐' 이게 되는데, 혹시나 뭐라도 까딱 잘못해서 생기는 결과는 굳이 말해 뭐할까.
직업 자체를 바꿔 버리고 3번째 직장인 현재 직장에 들어오니, 회식 자리에서 가장 상석의 그가 훈시를 한다. 비록 우리가 직업 특성상 무사안일하기 쉽지만 늘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패기 있게(누굴 팬다고?) 도전하며, 실패를 밑거름으로 조직과 함께 성장하라고 한다. 그리고는 '하일 히틀러!' 할 때 딱 그 자세와 팔각도로 소주잔을 들며 '위하여'를 외친다. 위하여! 으웨악! (그런데 내 귀엔 왜 떼창 '위하여'가 '으웨악'으로 들릴까?)
이제 그는 한 손엔 퍼런 소주병, 한 손엔 자기가 쓰던 잔을 들고 테이블을 번갈아 습격한다. 거나하게 취한 그는 내 어깨에 손을 턱 얹고 말한다. "그런데 자네는 거, 예전 직장은 왜 그만둔 건가?"
'도전! 열정! 패기! 실패는 밑거름!' 곳곳에서 종교처럼 외쳐대는 이 말은 왜 이렇게 똑같을까? 다 모아 놓고 뭔가 먹이기라도 하는 건가? 그럴 때마다 나는 신고 있는 양말을 밧어 그의 입에 턱 쑤셔박고 에잇에잇 삑삑 돌려 틀어막고 싶은 마음을 내리누르는 게 참 힘들다. 중국 고사에는 냇가에 뛰어가서 귀를 씻고 온다던데.
전라남도 담양에 가면 시원한 대나무 숲이 아주 좋다고 들었는데 이번 주말엔 거기라도 가서 외쳐 볼까. "여보쇼! 나 그런 말 몰라! 그런 말은 전생에서도 들어 본 적 없어! 그리고 당신도 직급만 달랐지 월급 받으면서 실적 만들고 윗사람 눈치 봐야 하는 나랑 똑같은 털 없는 노란 원숭이 아니오? 아니냔 말이오? 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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