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구리가 인천에 갔다. 인천축구경기장 앞. 개구리의 발걸음이 멈췄다. 많은 차. 많은 사람들. 기가 죽을 정도의 후끈한 열기.
여긴 뭐지.
제39회 새얼 백일장.
개구리는 새얼 백일장을 찾아봤다. 전국 최대 규모 문예 대회에, 여러 유명 시인과 소설가들도 이 대회를 거쳤다고 한다. 그런데 개구리야, 넌 왜 여기 있니? 낄 데랑 빠질 데는 알아야 하진 않니? 연애 한 번 안 해 본 사람을 모태솔로라 하는데 태어나고 올가을까지 그 흔한 백일장 한 번을 가 본 적 없는 개구리는 모태글꽝(?) 정도 되겠다. 개구리는 주위를 휘휘 둘러보았다. 전광판에 눈이 닿았다.
'나만의 기념일' '택배 상자' '산책'. 하나를 택해서 글을 쓰란다. 나만의 기념일? 개구리한테 그런 건 전생에도 없다. 택배 상자? 개구리는 택배가 특별했던 기억이 없다. 산책? 이걸로는 어지간히 잘 쓰지 못하면 턱도 없겠네. 중학교부 '고백'이 탐나는데 저게 일반부였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중학생이라 빡빡 우기고 고백으로 쓰자니 얼굴이 흉기라 그렇게 할 수도 없군.
개구리 손에 들려 있던 불쌍한 원고지 뭉치는 백지로 쓰레기통에 버려질 신세다. 그런데 개구리는 물건을 잘 못 버린다. 특히 백지상태의 종이를 버리는 걸 못한다. 개구리는 어릴 때 학교에서 더 쓸 수 있는 공책을 버렸다가 뒈지도록 뚜드려 맞은 적이 있다. 이때 머릿속에 물자절약이라는 말이 각인된 개구리는 반항심이 발동해서 다음날 숙제를 안 해 가고 이유를 묻는 말에 '물자절약하려고요!' 했다가 전날보다 더 뚜드려 맞곤 걷기는커녕 기지도 못했다. 이래도 맞고, 저래도 맞고, 뭘 어쩌란 말인가? 학습하는 개구리는 한참 후에야 깨달았다. 종이는 백지로 두면 안되는구나. 종이를 버리려면 그전에 뒤라도 한 번 닦아야 되는구나. 그래, 여기까지 왔는데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떡이 되든 종이나 채우고 가자.
웅성 웅성. 장내는 축구경기 시작 5분 전의 그 느낌이었다. 그래, 오늘은 이 일 아니었어도 어차피 이 근처에 왔어야 했잖아. 이런 분위기에서 글 써 본 적 없잖아. 우물 안의 글 못 쓰는 개구리 바깥 구경 한 번은 해야지?
놀 사람은 놀고, 읽을 사람은 읽고, 쓸 사람은 써라! 그리고 즐겨라!
개구리는 고뇌에 빠졌다. '놀 사람은 놀고, 읽을 사람은 읽고, 쓸 사람은 쓰고+즐겨라' 이건가, 아니면 '놀 사람은 놀고+즐기고, 읽을 사람은 읽고+즐기고, 쓸 사람은 쓰고+즐겨라' 이건가? 그러니까, 안 쓰고도 즐길 순 있는 건가? 안 쓰면 못 즐기는 건가? 두 상반된 해석이 내면에서 사생결단의 한판 혈투를 벌여 자아의 붕괴가 이루어졌다. 부스에 가서 안내직원에게 물어보고 싶은데 부스가 너무 멀고 어쩐지 직원도 잘 모를 것 같다. 아 참, 소재가 뭐였지? 이크, 벌써 30분이나 지났네.
경기장은 이미 사람들이 빽빽이 들어차 있었다. 관중석의 제일 한적한 곳에 자리를 잡고 낑낑 쓰는데 아뿔싸. 좀 쓰다 보니 개구리는 그제야 거기 사람이 없었던 이유를 알았다. 잠시 해를 가리고 있던 구름이 지나가자 쨍쨍 내리쬐는 햇빛에 눈이 멀어 종이 위의 글씨가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개구리는 바리바리 짐을 싸서 통로로 피신했다. 예열된 머리도 식어 버리고 박자감도 잃어버렸다.
개구리는 땅바닥에 쪼그리고 웅크려서 부랴부랴 글을 썼다. 목이 저리다. 발도 저리다. 무릎도 저리다. 개구리 시간 조절 못했다. 개구리 퇴고도 못했다. 개구리는 경기장을 나오면서 화가 났다. 머리를 싸쥐고 자책했다. 자기 마음에 들만큼 쓰지 못해서 속상하기도 했지만, 이게 무슨 시험도 아닌데 속상해하는 자신이 멍청이 같아서 또 속상했다. 어떤 속상함은 일단 시작되면 그 자체의 힘으로 무한히 이어진다.
남에게 인정받기와 자신에게 인정받기. 어느 쪽이 쉬울까? 둘 다 개구리가 못하는 거지만, 개구리는 후자가 조금 더 쉽다고 생각했다. 남에게 인정받는다는 건 자기를 끊임없이 드러내고 남을 설득시켜야 하지만, 자신에게 인정받기는 생각 하나만 바꾸면 되는 거니까. 하지만 그것도 뭔가 스스로 납득할 만한 이유라도 있어야지 그게 없으면 정신승리밖에 안 되니, 꼭 상을 타겠다는 욕심이 아니라 자신이 봐도 만족스러울 정도로 썼다는 그 하나의 사실이 절실했다. 그 하나가 안되니 개구리는 그렇게나 속이 상했다.
결과가 나왔다. 무슨 변괴인지 장원 바로 다음 자리에 개구리가 있었다. 그때는 망한 느낌, 지금은 멍한 느낌. 아무래도 현장에서 제목을 주고 제한시간 내에 써야 하는 백일장의 특성상 실력 외의 변수가 많고, 7,475명이 참가했다는데 그 많은 사람들 속에서 여기저기서 잡담 소리, 음식 냄새, 휴대폰 소리, 따가운 햇볕... 그 어수선함 속에서 누가 집중해서 글을 쓸 수 있었을까. 개구리는 그 덕택에 어부지리를 얻긴 했지만 정말로 글을 잘 쓰시는 분들이 온전히 제 실력을 발휘하기엔 어려운 상황인 건 분명했다.
개구리는 자기가 글을 못쓴다고 생각해 왔다. 일단 기본적으로 문장실력이 없고, 문예지에 등단을 했다든가 자기 이름으로 책을 내 본 것도 아니고, 비공식적으로라도 주변에서 변변한 인정을 받아 본 일도 없었으니까. 오죽하면 가장 많이 받았던 피드백이 '세 줄 요약 좀...'일까. 그런데 개구리는 그제야 알 것 같았다. 우주의 기운이 도와줄 때에 한해서나마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그 자신의 기준에선 평균 이하라고 생각해도 남들의 일반적 기준에서는 어쩌면 그게 아닐 수도 있다는 걸.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개구리의 머릿속엔 이런 생각이 꽉 차 있었다. '내가 나를 믿으면 안돼. 내가 잘할 거라고 생각하면 안돼. 내가 못할 거라 생각하기에서 출발해야 그나마 중간이라도 갈 수 있어. 내가 생각하는 것보단 더 열심히 해야 하고, 그걸 생각하더라도 그것보다 더 열심히 해야 해.'
입시생이나 고시생이라면 그게 맞을지 모른다. 문제는 그 후에도 이런 마음으로 살아갈 때다. 개구리가 구식 교육을 받아서 그런 것도 있지만 지금도 그것 때문에 자기가 이렇다고 개구리는 말해도 좋을까? 아니. 어른으로 살아간다는 건 자기가 판단하고 결과에 책임진다는 것도 있지만, 어릴 때 뭔가 잘못 배운 게 있다면 판단해서 버릴 줄도 알아야 하는 무거운 숙제도 들어 있다. 개구리는 그걸 못 했다. '어릴 때 잘못 배워서 아직까지 이 모양 이 꼴이야' 늘 이 말만 되풀이했다. 그건 어른이 되고도 자기 삶의 운전대를 틀어잡지 못한 개구리의 면피였다.
개구리는 생각했다. 백일장이 브런치와 무슨 차이가 있을까. 사람들이 흩어져서 보이지 않는 거, 사람들이 모여서 보이는 거. 그 하나 빼곤 차이점을 알 수가 없었다. 개구리는 다짐했다. 나중에 백일장에 또 나가 보기로 한다면, 그땐 이번보다는 어른스러운 태도를 가지리라고. 못 써도 자책하지 말고, 글을 쓰는 상황 자체를 즐거워하리라고.
무엇보다도 개구리는 자기는 못한다고 생각해도 남의 기준에선 아닐 수 있다는 걸 알아서 기뻤다. 어쩌면 글쓰기 하나만 그런 게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해서 또 기뻤다. 커다란 축구 경기장에서 머리를 싸맨 수천 명 사이에 끼어 글을 쓰고 나와서 무슨 시험을 말아먹은 고시생처럼 버럭버럭 화를 내던 개구리는 그렇게 우물 밖으로 나와서 처음으로 세상 구경을 하고는 전보다 글쓰기를 조금 더 즐겁게 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