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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가본드 Jul 06. 2022

우리 모두는 책이다

  때입니다. 아버지는 전화로 치킨집에 배달을 시키라고 하셨죠. 저는 전화를 들고 쭈뼛쭈뼛하다가 결국 못하고 방으로 뛰어들어와서 방문 닫고 형편없이 엉엉 울어 버리고 말았죠.


어쩌면 저는 그때 전화로 치킨 배달시키는 게 눈물 나게 싫어서라기보단, '이런 멍청아, 왜 너는 이거 하나를 못하니?' 저 자신을 향하는 이 생각에서 오는 분한 마음이 컸던 것 같습니다.


그 정도로 저는 말을 하는 게 힘들었습니다. 뭔가 앞에 나가서 발표를 하는 것도 소름이 끼치도록 싫었습니다. 앞에서 10분 말하는 것보다 차라리 10분 두들겨 맞는 게 낫겠다 싶을 정도였어요.


지금 강연 하나를 나가고 있습니다. 2018년부터니 5년째네요. 신규 공무원 연수과정 중에 있는 토크콘서트 형식의 3시간짜리인데, 초록초록한 사이트의 블로그에서 3년 전의 글을 보면 저는 2019년 시점에서 2018년 한 해를 이렇게 회고하고 있었습니다.



■ 제목 : 원하는 건 (2019.9.4.)

...... 하지만 다행히도, 얼마 안 가서 그 떨림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초보는 초보 티가 날 때 가장 아름다움을 알고부터. 그렇기에 애써 잘하려 할 필요 없음을 알고부터. 어설프게 뭐라도 되는 척해 봐야 그 무수한 전국의 수재들 앞에서 바로 탄로 날 것임을 알고부터, 딱 내가 살아온 그만큼만 보여주면 됨을 알고부터, 오히려 그게 듣는 이에게 더 큰 울림이 됨을 알고부터.

그렇게 마음먹자, 떨림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다른 것이 살그머니 들어왔다.
뜨거움.

내겐 두 달에 한 번 정도 있는 루틴일 뿐이지만 듣는 이에겐 평생 딱 한 번 있는 시간이기에 한 번도 대충 할 수가 없다. 하지만 그 마음 하나가 너무 컸던 걸까. 처음에는 수십 장의 대본을 무식하게 암기하고, 허공을 쳐다보며 리허설하고 그랬지만... 이젠 아니다. 이젠 안다. 그렇게 준비하는 게 아니다.....(중략)

내가 나중에 한동안 이걸 안 하다가 컴백하는 일이 생길지라도, 그 전과 똑같이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내용을 완벽히 외워서가 아니라 아예 내 삶이 그걸 외워버려서, 전혀 준비하지 않고 몇 달, 몇 년이 지나도 여전히 똑같은 내용이 그대로 나올 수 있도록.

그렇게,
나 자신이 그들에게 말하는 그 모습 그렇게,
그렇게 살길 원한다.

뭔가 자신만만해 보이고 텐션도 있어 보이네요. 아니, 어릴 때는 전화로 치킨도 못 시키던 놈 아니었나요? 발표만 시키면 머리를 쥐어뜯던 놈 아니었나요?


제가 변한 걸까요? 아뇨. 지금도 전화 공포증은 여전해서 수화기만 들면 할 말을 빠그작 까먹기 일쑤입니다. 지금도 회식 건배사 시키거나 워크숍 같은 데서 갑자기 한마디 해야만 하는 상황이면 그야말로 아가미가 답답하고, 없는 맹장도 답답합니다. 에라 차라리 날 때려죽여라, 죽여.


그 3시간을 위해 준비하는 시간은... 잘 모르겠습니다. 100시간? 확실히 넘고, 200시간? 음, 넘을 것 같아요. 300시간? 음... 모르겠네요. 거기서 오는 안락감이 조금 있고, 더 중요한 건... 그때 아무도 안 하려는 걸 등 떠밀려서 간 게 아니었습니다. 저는 모르는 분들이 저를 원했습니다. 제가 할 일이 있었고, 왜 하는지를 또렷이 알고 있었습니다. 그 상태에서 수백 개의 눈이 무중력 공간에 둥둥 뜬 저를 꼭 안아주면... 편안함이 됩니다.


왜 그럴까요. 비었을 때보다... (※사진 저 아님)
오히려 찼을 때가 편안한 것은...

이젠 알아요. 저는 말하기가 싫은 게 아니었습니다. 준비가 안 된 상태로 타인의 시선이 집중되는 상황이 싫었을 뿐입니다. 뭔가 준비된 얘기가 있고 누군가가 흥미 있게 들어주는 상황에서 말을 하는 건 어릴 때나 지금이나 즐거운 일입니다. 다만 살면서 그런 상황이 자주 오진 않으니 말하기를 싫어하는 놈처럼 보일 뿐입니다.




한번은 부서에서 누군가가 우연히 이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말한 건 아니었죠. 그게 뭐냐고 물으셔서 짤막하게 설명드렸습니다. 사실 좀 오래되었다는 말도 함께. 그분이 말씀하시네요. "의외네?"


"왜요?"라고 물어봤습니다. 예상과 토씨 하나 안 다른 대답이 돌아오네요. "주임님 말 없고 조용하잖아요?" 그날따라 제가 좀 심심했나 봅니다. 말 나온 김에 좀 더 물어봤습니다. 이번에 돌아온 대답은 "주임님 회의할 때 보면 한 마디도 안 하시던데요?"


회의? 저라고 할 말이 없을까요. 좋은 생각 있으면 마구마구 말하며 신나게 일하고 싶죠. 하지만 입 뻥긋하는 순간 그 회의 안건을 하나에서 열까지 덤터기 쓰는 K-직장 매직을 너무도 잘 알기에 회의테이블 무늬연구(?)만 하는 것뿐이거든요. 들어온 지 얼마 안 되는 의욕 넘치는 직원이 참신한 의견을 낼 때도 가끔 있긴 하지만, 항상 돌아오는 건 '시키는 거나 잘 해라'가 전부인 걸요. 어차피 해야 할 일은 정해져 있고 회의는 결국 구색 맞추기를 위한 절차일 뿐 결국 저녁에 곱창 먹으러 가자는 게 결론이면, 이런 미네랄, 회의는 뭐하러 하나요? 이러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싶을 뿐인데, 그랬더니 대뜸 '너는 말이 없고 조용하니깐 수백 명 앞에서 떠든다는 건 있기 어려움'으로 박제당해 버리네요.


세상은 통째로 하나의 거대한 가면무도회장입니다. 그 안에서 사람들은 다양한 배역으로, 다양한 페르소나를 품고 살지요. 혼자 있을 때, 가족들과 있을 때, 친구들과 있을 때, 직장에서 일을 할 때, 모두 같지 않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정작 자신은 그렇게 살면서 왜 자기 빼고는 전부 쌩얼로 산다고 생각하는 것일까요?


의외인 사람은 없어요. 우리가 잘 몰랐던 사람만이 있을 뿐이죠. 우리 모두는 책입니다. 사람들에게 읽히기를 기다리는 한 권의 커다란 책입니다. 사람들은 책을 아무 페이지나 펼쳐 듭니다. 발췌독을 합니다. 그리고는 자기가 그 책을 안다고 생각합니다. 자기가 아는 어느 책하고 닮았다고도 말합니다. 읽어 보지 않은 부분을 펼쳐 보여 줍니다. '의외네?'라고 합니다.


엔데믹 되고 서점에 사람이 확실히 많아졌네요. 예전만큼은 아니라지만 종이책은 여전히 인기가 좋아요. 저도 종이책이 좋습니다. 이젠 종이책 말고 사람책도 많이 보고 싶습니다. 저마다 고유의 책향이 있고, 어느 것과도 똑같지 않고, 절대 완독할 수 없는 사람책요.


우리 모두는 책입니다.



"사람들 앞에 서는 거 싫어하죠?"
"아뇨."
"그럼 무대 체질이에요?"
"음... 아뇨."
"이도 저도 아니면 뭐예요?"
"사람요."
"네?"
"전 사람입니다."
".....(별 싱거운 놈 다 보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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