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정말 좋아해요. 그런데...
"딸기뷔페 좋아해요?"
좋아해요. 정말 좋아해요. 딸기는 호불호가 없는 과일이죠. 브런치니까 솔직할 수 있죠. 세상에서 제가 못 먹는 건 딱 두 개 있어요. 없어서 못 먹는 거, 안 줘서 못 먹는 거.
저는 솔직하지 못했어요. 이걸 물은 그분은 팀 동료였어요. 무슨 식당 하나 찍으면 점심시간에 30분 가서 20분 기다리고 10분 먹고 30분 돌아오더라도 반드시 가야 하는 분이셨거든요. 저는 그냥 지하 구내식당 휘리릭 갔다 오고 1시까지 사무실에서 혼자 놀거나 밀린 일 처리하는 게 제일 편했죠. 그런데 "딸기뷔페 좋아해요?' 여기다가 "제가 못 먹는 건 둘입니다! 없어서 못 먹는 거! 안 줘서 못 먹는 거!" 이래 버리면 "우리 다 같이 딸기뷔페 가자, 날 잡아요!" 이게 될 거니까요.
"그냥..."이라 말했죠. "왜요?"로 돌아오네요. 안 좋아하는 것도 사실이 아닌데 이유까지 만들어 내자니 쉽지 않네요. "이리저리 음식 집으러 돌아다니는 거 별로 안 좋아해서..."라고 그랬어요. 그랬더니 "원래 움직이기 싫어하세요?"가 되어 돌아오네요. 주거니 받거니 잘 이어지는 대화를 '티키타카'라 하던데, 이건 '티키이이이이이 타카아아아아아'죠.
"그럼 뭘 좋아하세요?"
".... 메밀소바요."
왜 메밀소바냐고요? 어설프게 잘못 대답했다간 어디 무슨 미슐랭인지 나발인지 찾아서 삘삘 산 넘고 + 삘삘 물 건너 + 줄 서서 + 낑겨서 먹고 + 비싼 돈 쓰고 + 잔뜩 기빨리고 + 허이허이 들어오고 + 온종일 헤롱헤롱. 이게 될 거잖아요. 돈가스 맛집이나 파스타 맛집은 있어도 소바 맛집은 어지간해서 없으니, 그래야 어디 허덕허덕 멀리 가지 않을 거니까요.
그런데 이게 뭐랄까, 대충 때우는 음식이란 인식이 있나 봐요. 실제로 별 거 없잖아요. 일본 맛 가득한 국물에 검정 국수 풍덩 빠뜨린 아주 단순한 거죠. 그래서인지 되돌아오는 말이 "맛있는 거 많이 못 먹어 봤어요?" 이거네요. 어떨 땐 "진짜 맛있는 게 뭔지 잘 모르시나 봐요?"일 때도 있고요. 아닌데. 적은 나이도 아니고, 연애하면서 비싼 것들도 많이 먹어 봤고, 여러 나라 음식들 질리도록 먹어 봤고, 이젠 뭘 먹어도 새로운 게 없어서 단순한 걸로 되돌아온 건데.
삘삘 산 넘고 + 삘삘 물 건너 + 줄 서서 + 낑겨서 먹고 + 비싼 돈 쓰고 + 잔뜩 기빨리고 + 허이허이 돌아오고. 그분은 그러면서도 에너지를 얻는 분이셨지만, 전 그러면 에너지가 쪽쪽 빨리는 사람이거든요. 맞고 틀리고는 없어요. 그냥 서로 너무 다른 사람이었던 것뿐이죠. 식사를 좌지우지하던 건 늘 그분이었는데, 그분이 미슐랭 어쩌고 찾고 계시면 저는 그분의 화면을 보지 않아도 자판에 손가락 끝이 부딪치는 소리만 듣고도 쎄함을 느꼈죠. 그분은 쏘믈리에. 나는 쎄믈리에.
네? 말도 안 된다고요? 그게 되니깐 쎄믈리에라는 거죠. 쏘믈리에도 그렇지만 이 쎄믈리에도 아무나 못해요. 삘삘 산 넘고 + 삘삘 물 건너 + 줄 서서 + 낑겨서 먹고 + 비싼 돈 쓰고 + 먼 길 털레털레 돌아오고 이거 한 30번만 해 보세요. 아주 그냥 도가 튼다니까요. 타닥.. 탁탁탁.. 클릭클릭 띡띡.. (푸드덕푸드덕, 쎄믈리에 도 트는 소리)
가수 누구 좋아하냐고 물었을 때도 있었는데, 몇 명 있긴 했지만 대답하지 않았어요. "진짜 좋은 노래가 뭔지 모르시네요." 할 것 같아서요. 가벼운 물음에도 대답이 흐려지네요. 딱히 좋아하는 게 없다거나, 그쪽으론 잘 모른다거나로요. 그런데, 대답한 쪽보다 묻는 쪽이 오히려 자기에 대해 더 많은 걸 드러낼 때가 가끔 있어요. 나는 고작 메밀소바가 좋다는 사실만 알려줬을 뿐이지만, 물은 사람은 자신이 고작 취향을 가지고 사람 자체를 평가해 버리는 이임을 드러내는 거니까요.
취향 말고도 많은 걸 물으셨어요. 짧게 대답할 수 없는 게 많았죠. 묻기는 한 마디지만 대답도 한 마디가 되진 않아요. 한 줄로 묻고 대여섯 줄로 답하면 그건 자소서나 면접이죠. 그렇다고 한 줄로 뭉개자니 아무런 의미 없는 대답만 되지만, 그걸로도 상대는 평가를 진행하기도 하거든요. 살면서 무수히 뭔가를 묻고 또 대답하며 살지만, 대답을 한다는 건 묻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선 여러 가지 이유로 힘든 일이 되기도 하는 것 같아요.
남한테 뭔가 묻는 거 별로 안 좋아해요. 어차피 한두 마디로 설명할 수 있는 것도 아니라면 그 사람이 뭐라고 대답하든 그걸로 알 수 있는 건 별로 없으니까요. 다수의 시선에선 이리 해야 할 것 같은데 저리 하는 사람은 그만의 이유가 있어요. 대답이 뭐든 진짜 이유는 따로 있을 수 있어요. 그 사람의 한두 마디를 대답으로 알면 안돼요.
또 있어요. 무엇이든 묻기는 쉽지만 대답하기는 어렵죠. 예전 직장은 왜 그만뒀어요? 그 사람이랑은 왜 헤어졌어요? 요새 잘 안보이던데 무엇 때문에 힘드셨어요? 결혼을 왜 안 하셨나요? 왜 아이를 안 낳는 건가요? 단순하지 않은 걸 단순하게 묻는 건 대답하는 사람에게 짐을 안겨줘요. 누군가를 그렇게 만들고 싶지 않아요. 저는 티키타카가 좋아요. '티키이이이이이 타카아아아아아' 이거 싫어요. '키이이이이이~' 하고 싶은데 억지로 '키!'해야 할 것처럼 만들기도 싫어요.
물음표(?)로 끝나는 말은 많이 쓰지 않고 싶어요. 나를 향해서는 많이 쓸 거예요. 정말 많이요. 하지만 남을 향해서는 꼭 필요할 때만 쓰고 싶어요. 궁금한 게 없어서가 아니라, 관심이 없어서가 아니라,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어디까지 말해야 할까 고민하게 만들기 싫어서요. 그저 그 사람이 말하고 싶은 만큼만 말해주면 그걸로 족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