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면 차라리 아무 말을 말자
그날 밤. 나는 퇴근할 수 없었다. 시간은 한밤중을 향하고 있었다. 언제 퇴근할 수 있을지도 알 수 없었다. 분위기상 최소한 자정 전은 글렀다.
업무용 메신저로 뾰로롱 뭔가 날아온다. 다른 부서의 지인이다. '주임님?' 한다(내 직장에서는 간부를 제외하고 직급에 관계없이 모두 '주임님'이라고 부른다). "네"하고 대답하니, "고생이 많네요"라는 말이 돌아왔다.
그분이 하고 싶은 말은 얘기하다 보면 나오겠지. 나는 "좋은 날 다 간 것 같아요"라고 대답했다. "아뇨 고생은 무슨..."이라 할 수도 있었지만, 어쩐지 지금 그도 나랑 비슷한 상황 같아서.
'ㅎㅎㅎ'한다. 뭔가 싸하다. 무슨 말을 하려고 나에게 말을 건 걸까? 그냥 아무 말로나 대화를 이어 줬다. "(작년) 7월 이후로 어째 분위기가 많이 달라요" 그랬더니...
"○○과는 여기 반도 안돼요."
땡땡땡. 대화가 끝났다. 여기서 뭔 말을 해. 깨구락 짜부라져야지 뭐. 여기서부터는 무슨 말이라도 하는 순간 징징이가 되는 거 아닌가. 가만히 있어 봤다. 아무 말도 날아오지 않는다. 결국 그 말을 하려던 거였구나.
그는 나름 격려를 하려 했을 것이다. 삔또가 완전히 빗나가서 격려가 전혀 될 수 없는 말이 되었을 뿐이지. 그러니 문어적 표현 자체보단 그 사람이 무슨 뜻을 말하고자 했을까에 더 주목하기로 했다. 쉽진 않아도 그것부터 되어야 내 마음을 지킬 수 있으니.
하지만 만약 내가 반대 입장이 될 수 있다면, 지금 괜찮은지부터 물어 주고 싶다.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해 주고 싶을 때 해 달라고 하고 싶다. 그게 가장 좋은 대답이라서보단 내 말솜씨를 가지고는 힘든 사람한테 뭔가 신박한 한 마디를 해 줄 자신이 없어서.
더 힘든 누군가가 세상 어딘가에 존재한다는 게 그 사람이 힘들어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되진 못한다. 언제부터 사람이 상대평가로 아프고 말고 하는 게 되었을까. 거기서 불행 배틀이 웬 말인가. 암만 한국인이 비교하고 순위 매기는 거 좋아해도 그렇지, 누가 더 힘든가 그것까지 배틀을 할 이유는 뭘까. 귀신이 씨나락 까먹다가 졸겠다. '도로롱 피유~ 도로롱 피유~' 하고 졸겠다.
저마다의 이유로 다들 힘들게 산다는 그걸 누가 모를까. 그 사람은 그저 부정적인 생각 속에서 질식하지 않고 싶을 뿐이다. 들어만 줘도 고마워하고 기뻐한다. 이 상황에서 "너보다 힘든 사람도 많아"라는 말로 '별 것도 아닌 걸로 힘들어하는 놈'으로 박제해 버리는 것만큼 최악의 말이 또 있을까.
나도 내가 세운 기준을 100% 실천하며 살고 있진 못하지만, '너보다 힘든 사람 많아'보다는 '너 지금 괜찮니...?'가 낫고, '힘내라'보다는 '한번 같이 힘내 보자, 나도 그래 볼게'가 낫고, 상황에 따라서는 '있잖아 난.. 오늘 밤 네가 편안히 잠들 수 있었으면 좋겠어'는 어떨까. 정 좋은 말이 떠오르지 않으면 그냥 들어주는 건 어떨까. 듣는 사람은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뭔가를 할 수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