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배가본드 Sep 20. 2022

너 내가 그럴 줄 알았어

흐미, 노스트라다무스가 나타났다

값이 떨어진 주식을 사고 결과적으로 더 떨어져서 손실이 나면 

"그러게 참을성을 가지고 기다렸어야지, 처음에 주식한다고 할 때 너 내가 그럴 줄 알았어."


값이 떨어진 주식을 살까 말까 하다 말았는데 그 직후 오르면

"그러게 물 들어올 때 노 저었어야지, 그래서 어떻게 돈 벌 건데? 너 내가 그럴 줄 알았어."




어우, 제삼자가 들어도 왜 이리 꼴 보기 싫지? 전형적인 방구석 여포의 화법이다. 누군가가 사귀던 사람과 헤어져서 힘들면 "그러게 처음부터 잘 맞는 사람을 신중하게 골라서 만났어야지." 누가 큰 병에 걸리면 "그러게 평소에 건강을 잘 챙겼어야지." 이런 식이다. 무슨 놈의 선생이 세상에는 이리도 많을까.


이런 화법에는 자신의 혜안과 선견지명을 현시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 한 마디로 이런 사람들은 남을 끌어내리며 자기가 높아지는 느낌을 받는 것이고,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화가 치밀어 오르는 건 그런 속내가 그 짤막한 한마디로도 고스란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사후확신 편향 (Hindsight Bias)


지나서 보면 자신이 마치 처음부터 이렇게 될 거라고 다 알고 있었던 듯한 인지적 착각. 일반 사람의 상상 가능 범위 안에 있는 여러 경우의 수들 중 하나만 되어도 "이렇게 될 거 난 다 알고 있었다" 이게 되어 버린다. 


인간의 이런 착각은 자기 능력을 과대평가하게 만든다. 학생들이 시험을 보고 와서 "아는 걸 틀렸어요!" 이러는 걸 흔히 보는데 정답을 알고 보는 그 시점에서는 당연히 그렇게 보이고 실제로는 누구도 문제를 틀릴 때 실력 부족 말고 다른 이유로 틀리지 않는다. 이게 어릴 때부터 버릇 들면 '안다'의 기준이 자기도 모르게 낮아지고 마는데, 실제로 상당수 학생들은 어디선가 들어 본 적이 있다 싶은 느낌만 들어도 '안다'라고 해 버린다. 딴에는 진짜로 안다고 믿기 때문에 다음에도 같은 이유로 틀려 오고 똑같은 말을 한다.


"올해의 환율은 1달러당 700원에서 1,700원 사이가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네? 뭐라고요? 지금 1,400원대 진입이 눈앞이라고요? 허, 내 그럴 거 같더라니깐."

문제는 이런 생각이 '에이고 넌 그것도 몰랐냐' 이런 식으로 타인을 향한 비하가 될 때다. 기본적으로 이 말에는 자기는 탁월한 혜안을 갖고 있지만 상대방이 그런 결과를 받아 드는 걸 보니깐 자기보다 하수임이 분명하다는 킹리적 갓심이 배어 있다.


그렇게 어딜 가나 남의 일에 나서서 한 마디 해야 성에 차는 사람들이 있다. 그 전제는 자기가 탁월한 예지력을 가졌다는 믿음이다. 메타인지능력이 고작 그 수준에 머무르는 사람의 예지력이 좋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지만, 이게 다 네가 안타까워서, 너를 위해서 하는 말이란다. 차라리 다음 주 로또 당첨 번호나 미리 좀 알려 주지 그랬을까?


"많이 애썼는데, 이렇게 되어 버렸네, 사람 일이 뜻대로 되지 않나 봐." 정도로 충분한데도 그렇게 말해야 하는 이유는 뭘까? 마음에 우월감을 품고 있는 사람은 그 우월감을 은연중에 어떻게든 표현하며 살아야만 한다. 뭔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아서 상심해 있는 사람은 딱 좋은 먹잇감이 된다. 사후확신 편향적 착각에서 나오는 괴랄한 해석을 들고 와서 그 사람을 밟고 자신의 우월감을 충족시킨다.


그들도 안다. 그런다고 상대방이 "아이고 도사님, 앞으로는 도사님의 사전 승인을 받겠으니 저를 제자로 삼아 주십시오." 이렇게 되지 않는다는 걸. 그런데도 그러는 건 그들에게는 이 우월감의 충족에서 오는 심적 쾌감이 크기 때문이고, 기본적으로 공감능력이 낮은 사람들이라서 애초에 상대방의 기분 따위는 관심이 없다.


하나 신기한 거. 사람이 살다 보면 좋은 일도 있고 나쁜 일도 있는데 어쩐 일인지 이 사람들은 타인이 뭔가 잘 되지 않았을 때만 귀신같이 "내가 그럴 줄 알았어"를 시전한다. 혹시 누군가가 잘 되는 것에는 관심 없고 오직 누군가가 잘못되거나 괴로운 상황에 처하는 것에만 주목해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다.


내가 그럴 줄 알았다는 말은 누군가에게 좋은 일이 있을 때 칭찬하는 말로만 쓴다면 어떨까. 좋지 않은 상황에 직면한 사람에게 던지는 '내 그럴 줄 알았어'에는 어떤 진심도 없고, 어떤 선견지명도 없다. 혹시나 그 선견지명이라는 게 '先犬之暝(나서기를 좋아하는 개의 어두움)'이라면 마지막 한 마디는 틀린 말이 될 수도 있겠다.



< 표지 이미지 출처 : Media SK (blog.sk.com) >

이전 03화 귀인을 찾는다며, 귀신만 찾아다녔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