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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가본드 Feb 02. 2023

귀인을 찾는다며, 귀신만 찾아다녔죠

난 항상 그게 궁금했다. 귀인 귀인 하는데 귀인이란 뭘까? 여기저기 찾아보니 귀인이란 나에게 이로운 사람이라고 하는데, 뭔지 알듯 알듯 하면서도 모르겠다. 악인은 또렷하게 내 기준이 있는데.


이런 적이 있다. 산다는 건 뭘까, 나는 누굴까, 나는 세상에서 어떤 의미일까, 이런 걸 고민하는 내가 좀 아니꼬웠던지 누군가가 말하길 "너는 왜 답도 없는 문제를 붙잡고 쓸데없는 생각만 하고 사냐?"라고.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제 고민에 답이 없는 건 맞습니다. 하지만 답이 없는 문제 속에서 길을 잃은 것보다 더 좋지 않은 건 아무런 질문도 없는 상태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랬더니 뜬금없이 옛날에 뭘 전공했었냐고 묻는다. 일부러 철학과라고 해 봤다. 아무래도 뭔가 가답안을 가지고 그게 맞는지 확인하고 싶은 듯한데 그 짐작대로 던져주고 그 뒤에 나오는 말이 들어 보고 싶어서. 근데 돌아오는 말이 내 예상을 완전히 벗어났다. “딱 보기부터 그렇게 생겼어” (응?).


띠용. 이건 무슨 말이냐. 멍할 틈도 없이 질문이 이어진다. "철학과는 뭐 배우냐?" 이크, 난리 났다. 철학이라곤 대학 1학년때 교양 과목으로 동양철학사 들은 게 전부인데 기말시험에서 '공자가 말하는 군자의 도를 포스트 모더니즘의 관점에서 논하시오'라는 문제에 '소인이 어찌 감히 군자의 도를 논하리오?' 이래 놨다가 D학점(어떤 면에선 F보다도 더 나쁘다)을 받은 기억만 있을 뿐이다. 그런 내게 철학과는 뭘 배우냐고? 내가 자초한 상황이니 어떻게든 내가 풀긴 해야지. 그래서 1학년 때는 손금과 관상을, 2학년 때는 별자리와 타로카드를, 3학년 때는 물 위를 걷는 법을, 졸업반 때는 장풍 쏘기를 배운다고 하니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으음, 그래...(끄덕끄덕)" 이런다. 에라이, 아니거든 이 무식쟁이야?

안녕 나는 4학년이야. 넌?

전에 어떤 시험을 준비할 때는 "야, 전에 내가 해 봐서 아는데, 요즘 그거 날고 기는 사람들 다 달려들어!"라고 한 사람이 있었고, 누군가랑 취미 얘기를 하다가 '잘은 못하지만 취미로 가끔 글을 쓸 때가 있다'라고 하니 "에이, 내가 널 아는데, 넌 글쓰기는 아냐. 넌 천생 뼛속까지 이과야, 이과!"라고 말한 사람이 있었고, 무슨 음식을 좋아하냐는 물음에 메밀소바라고 답하니 "맛있는 거 별로 못 먹어 봤어요?"라고 한 사람이 있었고, 삶에서 행복을 느끼는 지점을 말했을 때 "그런 건 스스로를 속이는 가짜 감정이지 진짜 행복이 아냐! 결혼하고 애를 낳아서 키우는 거야말로 진짜 행복이야!! 그러니까 빨리 결혼하란 말이야! 애도 낳고 좀!!"이라고 한 사람이 있었다(저기, 잠시만요. 말씀 중에 죄송한데, 진짜로 행복하신 거 맞... 죠?).


나에게 악인이란 그런 식으로 자기의 세계에 나를 가두어 버리는 사람이다. 내겐 무언가를 결심하거나 어떤 의견 또는 취향이 만들어지기까지는 보통 상당한 시간이 걸리는데 정작 나의 그것을 대뜸 홱 뒤집어 버리는 건 호떡 뒤집기보다 빠른 사람. 그렇게 나의 사고의, 나의 세계의 확장을 저지하는 사람이 내겐 악인이다.




그럼 귀인은 그 반대일까? 글쎄. 뭔가가 싫은 이유는 명확해도 뭔가가 좋은 이유는 그 정도로 분명하진 않을 때가 있다. 단지 내 기준의 악인을 빼고 남은 사람들을 천천히 살펴보고 싶고, 그중에서 귀인을 하나씩 찾아보고 싶을 뿐이다. 나에게 귀인이란 정의할 수 없고 단지 묘사할 수만 있을 뿐이지만, 귀인 하면 떠오르는 사람들의 공통점이 뭐였나 생각해 본다면 나는 잠재의식 속에서 귀인을 어떤 사람이라고 보는지 어렴풋이 알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 방식의 생각회로를 통해 조심스럽게 내 기준의 귀인을 묘사(정의X)해 보면, 그건 '나의 세계를 넓혀 주는 사람'이다. 내가 뭔가 결심하고도 첫 발 떼기를 힘들어할 때 용기를 주는 사람, 정작 그는 나를 가르치려 한 적이 없었는데 내가 그냥 따라 하고 싶은 사람, 바쁨을 핑계 삼는 나에게 자기 관리란 이런 것임을 말없이 보여주는 사람, 무디고 메마른 나를 문학의 신세계로 안내하는 사람 등. 그렇게 나를 새로운 것으로 인도해 주는 사람, 그 사람 앞에서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을 갖도록 만들어 주는 사람. 나에겐 그런 이가 귀인이다.


이렇게 귀인 타령을 하면서도 정작 나 자신은 사교적이지 못하고 대인관계가 넓지 않으니 많은 사람들은 나에게 인맥 만들기 모임을 권했지만 썩 내키지가 않았다. 그건 아마도 자기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사람을 찾으려는 이들이 절대다수일 텐데 기버(giver)는 없이 테이커(taker)만 존재하는 집단에서 내가 과연 의미 있는 관계를 만들고 오랫동안 가꿔 나갈 수 있을지, 그게 자신이 없었다.




그런데, 얼핏 그럴듯해 보이는 나의 이런 생각에는 치명적인 구멍이 있음을 나는 오랫동안 알지 못했다. 되돌아보면 나의 생각은 '귀인이란 뭘까?' '나의 삶에서 귀인은 누굴까?' 늘 여기에만 머물러 있었다. 다른 이에게 나는 어떻게 귀인일 수 있을지, 그 고민은 전혀 들어있지 않았다. 어떤 사람이 나에겐 이로운 사람이지만 정작 나는 그 사람에게 그렇지 못하다면 그의 입장에서 볼 때 나는 악인인데 그런 생각은 쏙 빠진 채 세상에는 귀인이 될 사람이 많지 않다고 한탄이나 해 대고, 그런 도둑놈 심보 가득한 거지근성으로 살면서 내가 그러고 있는 줄도 여태 몰랐다.


이런 것만 생각했었지. 참 오래됐네...

귀인도 준비된 사람에게 찾아오는 거라면, 그 준비란 어쩌면 내가 누군가의 귀인 되기에 합당한 이가 되는 일은 아닐까. 당장 나부터 그게 안되었으니 이제까지 많은 귀인을 맞이하지 못한 건 아니었을까. 귀인은 혜성처럼 짠 하고 나타나서 아무런 대가도 없이 무조건 내 편을 들어 주는 사람도 아니고, 로또 당첨번호를 뽑아 던져주는 사람도 아니고, 무슨 손오공처럼 등 뒤에서 뿅 하고 나타나서 내가 풀지 못하는 문제를 한 방에 해결해 주고 바람과 함께 사라지는 그런 사람일 것 같지도 않다(그게 귀인이냐, 귀신이지). 어쩌면 내가 귀인으로 묘사하는 그런 사람들, 그들도 우리가 아는 보통의 다른 이들처럼 누군가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 중 하나는 아닐까.


그럼 나는 다른 이에게 어떻게 귀인이 될 수 있을까. 내가 귀인이라 생각하는 이와 함께 있을 때를 떠올려 본다면 답이 거기에 있을지도 모른다. 특정인과 함께 있을 때는 내가 뭔가 아주 좋은 사람이 된 듯한 느낌, 뭔가 커지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그들은 나 자신도 알지 못하는 내 장점을 찾아서 알려줬고, 결코 나를 자기의 판단 아래에 두려 하지 않았고, 나와 다른 생각을 가졌을 때도 내 생각을 따뜻하게 품어주며 자기의 생각을 살짝 얹을 뿐이었다. 함께 있을 때 즐거운 사람은 내가 그 사람 앞에서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게끔 해 주고, 그렇게 나의 세계를 넓혀 주는 사람이다.


성공은 위로 높아지는 느낌이지만 성장은 옆으로 넓어지는 느낌이다. 내겐 높은 곳은 무섭고 어지럽다. 제자리에서 옆으로 넓어지는 넉넉한 느낌이 좋다. 그 넉넉함 속에 머물고 싶다. 그 느낌을 선물해 주는 이들에게 곁을 내주고 서로에게 그런 느낌을 주며 살았으면 좋겠다.


비록 내겐 남들에 비해 딱히 낫다고 자랑할 수 있는 어떤 재주 같은 것은 없지만, 귀인이라는 게 어떤 별난 재주를 갖고 되는 게 아니라는 건 안다. 그나마 내가 할 수 있는 건 사람의 장점과 매력 발견하기이고, 돈 되는 재주가 아니라서 자본주의적 관점에서 가치 있는 재주는 아니지만 그 하나만으로도 누군가의 세계를 넓혀 줄 수 있는 것이라면, 자그마한 두 조각의 꿈을 쌍둥이 인형처럼 내 방 안에 나란히 살짝 놓아 본다. 가진 것 없는 나도 어쩌면 누군가에겐 귀인이 될 수도 있으리라는 꿈을, 그땐 나를 닮은 그 마음의 문틈에 한마디를 들릴락 말락 속삭일 수 있으리란 꿈을.



   내가 당신의 귀인이 되어 줄게요.

   당신도 나의 귀인이 되어 주세요.


   우리들의 상상으로 만든 기억,

   그 기억 한편에 머물러 있던 그런 귀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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