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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Vagabond May 25. 2021

나는 왜 백수에 끌렸을까.

ep1. 부지런한 백수

새로이 방문한 이 세계에는 아직 나의 내공으로는 정의하기 어려운 강렬한 끌림이 있다.


백수가 되기로 마음을 먹은 지, 근데 그건 또 아니네. 더 정확하게 더듬어보면 10개월 전, 퇴사할 때까지만 해도 스스로를 백수로 정의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스스로를 백수라 정의하고 닉네임을 부지런한 백수로 바꾸었을 때, 나는 누군가에 대한 의존에서 철저히 벗어나야 하는 차가운 온도를 느껴서였다. 내 삶의 무게가 왜소한 나의 두 어깨로  소복이 쌓이는 중력을 느껴서였다.


안정적인 월급도, 경력도, 따뜻한 관계들도 나에겐 매일매일 당연한 것들이었는데 그중에 더 이상 내가 의존할 수 있는 건 남아있지 않았다. 이제 내가 익숙해져야 할 것은 매일 나를 반겨줄 오피스텔 벽. 그건 안 좋은 일이기도, 너무 좋은 일이기도 했다.


 좋은 이유는 많고도 많다. 기본적인 보장이라고 여겨지는 4 보험 가입이 중지되었고 언제 월세를  잔고가 없을지   앞도 모르거니와 언제 건강이 회복되어 정상적인 사회생활이 가능할지도 모른다. 유병자라서 표준실비보험 가입도 되지 않는다. 애매하게 멈춰진 경력은 나중에 인정받기 힘들  같고 이대로 경력이 단절되어  년이 흐르면  이상 메인 스트림으로 돌아가기 힘들 것도 직감했다. 싫증을  내지 않는 성향으로 지난 10 동안   분야만 바라보고 왔었고 내가 하는 일을 많이 사랑했다. 하지만 기술사 시험을  생각도  해봤거니와, 준비도 전혀  되어 있었다. 그저 좋아서  ,  걸음 걸어가니 사다리 하나가 보였고  걸음 올라가니 다음 사다리가, 다음 방향이, 다음 행선지가 보였을 뿐이다. 그렇게 조금씩  마음을 따라간 , 그게 다였다. 원없이 해보고 질렸던 건 또 아니라서 두번 다신 없을거라고 하진 못하겠다. "궁금하다", "하고 싶다" 에서부터 어떻게 하는지 조금은 알게 되기까지  대충 10년이 지난  같다.  번째 학부 입학으로부터 퇴사하기까지 6년이란 시간동안 멈추지 않고 경제활동을 하며 살아왔는데 마치 돌려도 돌려도 제자리로 돌아오는 쳇바퀴처럼 잔고는 텅텅 비어있었다. 달력에 유일한 일정은 병원 예약이었고, 뭔가 허약한 심신만 남은 듯한  삶이 웃겼고,  상황을 이해할  있는 사람은  말고  누구도 없었다. 내가 낙동강 오리알같이 느껴지기도 했다. 당신이 위에 서술된 상황에 놓여있다면 어떤 생각과 결정들을 했을까?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에겐 어쩌면 비관적인 상황일 수도. 뭐 아닐 수도 있고 나는  모르겠다. 당신의 생각들이, 당신들의 생각이 궁금하다.


사실 나는 그저 사실을 나열한 것뿐,  상황들이 좋지도  좋지도 않았다.  하나, 확실하게  좋다 말할  있었던 것은 모든 결정을 혼자 내려야 하는  길이 무지하게 외롭다. 친구도 남자 친구도 가족들도  고독을 이해하지 못했다. 수차례 해설을 시도해보면서 문제는  표현의 한계가 아니라는 것을 느끼고 이해받기를 포기했다. 말로만 전해 듣는 간접경험으로 전달되기에 정말 턱없이 부족한 크기의 스릴과 책임감이었으니까. 지구 어딘가에  말을 이해할 사람  명은 있지 않을까 기대하며   명을  삼아 고독함을 달랬다.


그리고 좋은 점을 말하자면 나는 자유인이다. 정해진 시간 동안 정해진 공간에 가야 할 의무도 권리도 없다. 예상했음에도 놀라웠던 이 시공간의 자유, 이 자유는 나의 삶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이 자유를 더 충분히 느끼기 위해 나는 내가 가진 그 어떤 스킬도, 배경도 나라는 사람을 정의하고 판단할 수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를 백수라고 소개하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니 지난 10개월 간의 백수생활은 단 하루의 허비도 없었다. 자꾸 마음이 가는 것들이 생산되고 소비되고 중첩되고 소실되었다. 항상 하고 싶은 것들이 있었고 나는 그럴 때마다 바로바로 실행에 옮기며 부지런하게 살았다. 그건 내가 자유를 만끽하는 방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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