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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호훈 Dec 21. 2017

대학교수가 꼽은, 역대 '올해의 사자성어'에 대한 단상

우리는 왜 해마다 사자성어 타령인가?

해마다 연말이면 《교수신문》에서 그 해를 되돌아보며 사자성어로 논평을 한다. 《교수신문》에 따르면, 올해의 사자성어는 사자성어 후보 추천위원단 추천, 본 설문용 예비심사단(pilot test) 심사, 전국 교수 대상 본설문 등 3단계에 걸쳐 선정된다고 한다.

[사자성어 관련 내용: 나무위키 / 네이버 지식백과 ]

 

대학교수가 꼽은 역대 '올해의 사자성어'는 다음과 같다. 사자성어 의미는 Daum사전에서 서칭하였고, 각각의 관련 내용은 《교수신문》 사이트에 있는 년도별 기사를 링크하였다.




2001년. 오리무중(五里霧中) 넓게 퍼진 안개 속에 있다는 뜻으로, 일의 갈피를 잡을 수 없거나 사람의 행적을 전혀 알 수가 없는 상태를 이르는 말

2002년. 이합집산(離合集散) 모였다가 흩어지는 일

2003년. 우왕좌왕(右往左往) 올바른 방향을 잡거나 차분한 행동을 취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왔다갔다함 (관련 기사)


2004년. 당동벌이(黨同伐異) 하는 일의 옳고 그름은 따지지 않고 뜻이 같은 사람끼리는 한패가 되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배척함 (관련기사)  


2005년. 상화하택(上火下澤) 위에는 불 아래는 연못이라는 뜻으로, 불이 위에 놓이고 연못이 아래에 놓인 모습으로 사물들이 서로 이반하고 분열하는 현상을 비유한 말 (관련기사)


2006년. 밀운불우(密雲不雨) 하늘에 구름만 빽빽하고 비가 되어 내리지 못하는 상태를 의미하는 것으로, 여건은 조성 되었으나 일이 성사 되지않아 답답함과 불만이 폭발할 것 같은 상황을 비유한 말


2007년. 자기기인(自欺欺人) 자신을 속이고 남을 속임다는 의미로, 자신도 믿지 않는 말이나 행동으로 남까지 속이는 사람을 풍자한 말


2008년. 호질기의(護疾忌醫) 병을 숨기면서 의사에게 보이지 않는다는 의미로, 문제가 있는데도 다른 사람의 충고를 듣지 않음을 비유한 말


2009년. 방기곡경(旁岐曲逕) 일을 순리대로 하지 않고, 부당한 방법으로 억지로 함


2010년. 장두노미(藏頭露尾) 진실을 공개하지 않고 숨기려 했지만 거짓의 실마리가 이미 드러나 보인다는 말


2011년. 엄이도종(掩耳盜鐘) 자기 귀를 막고 종을 훔친다는 의미로, 자기가 나쁜 일을 하고도 잘못됐다는 생각은 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비난을 듣기 싫어 귀를 막지만 소용이 없다는 것을 비유한 말


2012년. 거세개탁(擧世皆濁) 온세상이 모두 혼탁함


2013년. 도행역시(倒行逆施) 차례를 바꾸어 행함,  도리에 맞지 않는 짓을 하다


2014년. 지록위마(指鹿爲馬) 윗사람을 농락하여 권세를 제 마음대로 휘두르는 짓


2015년. 혼용무도(昏庸無道) 세상이 온통 어지럽고 무도하다는 뜻


2016년. 군주민수(君舟民水) 임금은 배 백성은 물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 ;;;)


2017년. 파사현정(破邪顯正)  사견이나 사도를 깨어 버리고 정도를 나타냄


2018년. 임중도원(任重道遠)  맡은 책임은 무겁고, 이를 실천할 길은 어렵고 아득함 


2019년. 공명지조(共命之鳥)  목숨(=命)을 공유(共有)하는 새(鳥)라는 뜻으로, 「상대방(相對方)을 죽이면 결국 함께 죽는다」는 말


2020년. 아시타비(我是他非)  나는 옳고, 남은 그르다’는 뜻이다. 요즘 많이 쓰는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과 같은 의미


2021년. 묘서동처(猫鼠同處) 「고양이와 쥐가 함께 있다.」는 뜻으로, 곧, 도둑을 잡아야 할 사람이 도둑과 한패가 된다는 의미


2022년. 과이불개(過而不改) 「잘못을 하고도 고치지 않는다.」는 뜻으로,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남 탓만 한다는 의미


2023년. 견리망의(見利忘義) ⌜눈앞의 이익(利益)을 보면 탐내어 의리(義理)를 저버린다.⌟는 뜻으로, 이익 앞에 떳떳해야 한다는 의미




대충 봐도 어려운 내용이고, 자세히 봐도 그러하다. 이유는 이것이 단순히 사자성어 뜻풀이로 끝날 것이 아니라, 해마다 저러한 것들이 선정된 시대적 배경인 문맥을 이해해야 하기 때문이다. 궁금하시거나 시간이 되시는 분은 친절하게 링크까지 달아 드렸으니 처음부터 다시 자세히 보시면 될 것 같고, '올해의 사자성어'를 보다 보니 조금 불편함이 있었다거나 궁금증이 생겼다는 분은 바로 아래를 보시면 될 것 같다.


불편함은 아마 비슷할 것 같다. “대단히 어려운 사자성어입니다. 허허허”라고 표현되는 생소함에서 오는 불편함, 그리고 “저렇게 어려운 사자성어를 쓰시는 것을 보니, 역시 배운 분들은 다릅니다. 허허허”라고 표현되는 괴리감에서 오는 불편함이 그것이 아닌가 싶다.

 

혹시 의사나, 변호사나, 회계사나, 개발자와 대화하며 불편함을 느낀 적은 없는가? 보통 전문가는 특정 분야의 전문용어나 특수용어(자곤 jargon 이라고도 한다)를 통해 커뮤니케이션하는데, 종종 그것을 일상에까지 가지고 나온다. 그 용어를 씀으로써 자신이 특별하다, 혹은 우월하다는 것을 표현하기도 하고, 자신의 전문성을 증명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일반화할 수 없고, 반론의 여지도 크지만 내 이야기에서는 논외이므로 제외한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많이 쓰이는 사자성어를 올해의 사자성어로 선정할 수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많이 쓰이지 않은 사자성어를 선정한 것은 약간의 의도적인 부분이 있다고 생각할 수 있겠다.

(대한민국의 교수님들께서 부디 괘씸하게 여기지 마시길. 저도 겸임교수 이긴 합니다만.)


그러나, 선수는 어려운 것을 쉽게 전달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며, 중요한 것은 역시 커뮤니케이션은 듣는 사람 입장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라스웰의 커뮤니케이션 이론에서 볼 수 있듯이, 아무리 좋은 의미라도 부호화 encoding 가 발신자만 알아 먹을 수 있는 것이라면 수신자가 그 의미를 해독 decoding 할 수 없기 때문에 그야말로 삽질 소통이 된다.

라스웰의 커뮤니케이션 이론, SMCRE모델이라고 한다.


물론 상대방이 알아먹든 말든 최소한 '가오'라도 세울 수 있다면 뭐 그럭저럭 나쁘지는 않겠다. 그러나 남들이 듣기에 '그들만의 리그'처럼 생각하여 자칫 '보그 병신체'처럼 취급받을 수 있으니, 적당한 지적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보그 병신체: 패션잡지 ‘VOGUE’에서 자주 사용되는 외래어와 국어의 해괴한 결합을 희화화하여 일컫는 말)

자곤jargon으로 보기엔 허세스럽고 우스꽝스럽지만, 맞춤양복보다 비스포크 수트라고 해야 이태리 느낌이 나는 것은 어쩔~ 보그병신체는 이미 독특한 화법으로 자리 잡은 듯!




그러면, 다음은 궁금증이다. 바로, “해마다 저걸 왜 하냐”는 것이다. 지극히 개인적인 관점으로 해석을 해보면 두 가지 정도가 있지 않을까 싶다.


첫 번째는 “어차피 대중은 개돼지들입니다. 적당히 짖다가 알아서 조용해질 겁니다”라는 대사로 유명한 영화 ‘내부자들’의 관점이다. 영화에서 언론사 논설주간 이강희는 "말이 권력이고 힘이야"라고 하는데, 교수 집단은 ‘한 해를 한 마디로 규정’함으로써 힘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영화 '내부자들' 포스터

고작 사자성어 ‘한 마디’로 어떻게 힘을 얻을 수 있겠냐고 생각하겠지만, 마케팅에서의 포지셔닝 Positioning, 광고에서의 컨셉 Concept, 디지털마케팅에서의 SEO (Search Engine Optimization), 그리고 PR에서의 프레이밍 Framing 이 ‘키워드’ 하나를 잡기 위해 싸우는 것이라는 측면에서 이해한다면, 동일한 개념으로 해석할 수 있다.


[같이 보면 좋은 글] 우리가 인식하는 세상이 진짜 세상인가


우선 포지셔닝에 대하여 먼저 말해 보겠다. 포지셔닝이란 사람들의 마인드에 들어 있는 내용을 조작하고, 기존의 연결 고리를 다시 엮어 줌으로써 사람들의 ‘인식을 재구성’하고 영향을 끼치는 것이다. 포지셔닝의 전설이라 불리는 Avis 렌터카의 'Avis is only No.2', 7-Up의 'The Uncola', Volvo의 'safety', BMW의 'driving'에서 보듯이 키워드를 정의하고 소유하는 것이 얼마나 큰 힘인지 알 수 있다.


다음은 프레이밍이다. 프레임frame 이란 원래 "사고의 틀이자 생각의 출발지점"이라는 의미이지만, 포지셔닝과 같이 프레임을 잡으면 힘이 생긴다. 혹시, 위안부에 대한 문제가 네이밍naming 하나로 바뀔 수 있었다는 생각을 해 본적이 있는가? 우리는 그동안 위안부를 'comfort women'이라고 명명했지만, 'sexual slaves'라는 단어로 바꿔 사용했다면 위안부 문제의 풀이, 즉 게임의 판도는 완전히 달라졌을 수도 있었다. 이렇게 프레이밍이란 키워드 하나로 게임의 룰을 유리하게 바꾸는 작업이기 때문에, 자신에게 유리한 구도를 짜려는 프레임 대결 혹은 프레임 전쟁은 직장에서도, 시장에서도, 정치에서도, 사람이있고 말이 오고 가고 누군가 힘을 더 많이 얻고자 하는 곳에서는 언제나 볼 수 있는 것이다.


[같이 보면 좋은 기사] 대선, 프레임전쟁에서 이기는 4가지 키워드 (출처: 중앙일보)


그렇다면, 이즈음에서 궁금증이 다시 나와야 한다. 누가 힘을 얻기 위해 하는 것이지? 라는 것이다. 우선 집단은 힘이 세다는 것을 (진부한 표현이지만) 삼척동자도 안다. 그리고 그 집단이 교수라면 그 힘을 가늠할 수는 없겠지만 매우 강력하다는 것도 알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교수라는 지식인 그룹을 통해 누군가 이 사회의 아젠다 agenda 를 끌어가고 싶은 것은 아닌지, 다소 음모론적 상상 이지만 합리적인 의심을 해본다. 혹은 교수 집단 스스로가 힘을 얻기 위해 하는 것일 수도 있다(당연히). 


'그릇된 것을 깨뜨리고 올바르게 바로 잡는다'는 의미의 '파사현정'이 올해의 사자성어로 선정되고 그것이 언론에서 언급될 때, 연관어로 '적폐청산'이라는 단어와 함께 다수 쓰이는 것을 보면, 정치적 의도가 전혀 없었다고 아니 볼 수도 없을 것 같다. 사실 《 적폐(積弊, 오랫동안 쌓이고 쌓인 폐단) 청산(淸算, 과거의 부정적 요소를 깨끗이 씻어 버림) 》이라는 단어의 의미적 유사성은 오히려 '폐단의 근원을 아주 뽑아 버려 다시 고친다'는 의미의 사자성어인 '발본색원(拔本塞源)'과 더 가까운데 구태여 '파사현정'을 쓴 것을 봐도 그렇다.                     




여기서 “해마다 저걸 왜 하냐”는 것에 대한 궁금증의 두 번째 이야기를 할까 한다. 두번째 이야기의 관점은 20세기 프랑스를 대표하는 지성인이였던 장 폴 사르트르의 생각을 빌려 보겠다.

Jean-PaulCharles Sartre(1905.6.21 ~ 1980.4.15), 프랑스 실존주의 철학자로 대표적인 실존주의 사상가이며 소설가 • 극작가 • 에세이스트이다.


사르트르는 그의 저서 《지식인을 위한 변명》에서

장 폴 사르트르의 '지식인을 위한 변명' 많이 배우고 말은 많이 하는데 실천을 하지 않는 지금의 지식 전문가에게 일독을 권한다.

“지식 전문가들은 자신의 보편주의적 전문지식과 지배자의 이데올로기가 그의 내부에서 끊임없이 싸운다고 하는 바로 그 모순에 의해 규정되는 존재인 이상, 누구나 모두 "잠재적 지식인"인 것이다.”

"자신의 연구분야에서 보편적 법칙과 진리를 얻은 지식 전문가가 그 진리를 사회와 인간 전체에로 보편화시키려고 하는 과정에서 그는 지식인이 되는 것이다."


라며, "지식인은 '영원한 자기 비판'과 '실천'이 있어야 한다"고 하였는데,


반대로 해석하면, 역사적 산물로서의 지식인은 사회를 비판해야 하지만 한편으론 사회 변혁을 위한 행동을 하기 어려운 모순을 가지고 있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사르트르의 철학으로 보면, 지식인은 고작 사자성어를 찾아 사회에 화두를 던지는 것으로 실천을 대신해서는 안 되며, *폴리페서와 같은 방식의 실천도 옳지 않다는 것이다 라고 해석할 수도 있을 것 같다.

*Polifessor, '정치'를 뜻하는 '폴리틱스(politics)'와 '교수'를 뜻하는 '프로페서(professor)'의 합성어. 현실 정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자신의 학문적 성취를 실현하려는 교수. 또는 그러한 활동을 통하여 정계 또는 관계에서 고위직을 얻고 입신양명을 꿈꾸는 교수를 가리킨다. 한국의 정치 상황에서 빚어진 신조어이며, 주로 부정적인 의미로 쓰인다.


사르트르의 관점에서 더 이상의 논의는, 내 몫이 아닌 것 같다…라며 피해야겠다.

이것은 매우 어려운 이야기이므로…




지식인으로서 자신의 입지를 위해서든,

프레이밍으로 힘을 얻기 위해서든, 누군가가 그 힘을 이용하기 위해서든,

지식인으로서 자신을 증명할 수 있는 소심한 실천이든,

혹은 《교수신문》 사이트의 트래픽을 높여 광고를 좀 더 유치하려는 단순한 목적이든,

아니면, 진정 한국사회의 성장을 위해 경종을 울리는 숭고한 의도든,

우리는 그것을 알 수는 없다.


그저, 우리는 조금 더 성실하고 진지하게 사회를 바라보면 될 뿐이다.


단상이 이어지고, 군더더기가 많아지니, 잡담이 되어버린 느낌이지만, 이것으로 만족하겠다.

좌정관천(坐井觀天 혹은 정저지와 井底之蛙)인지라, 정문일침(頂門一鍼 혹은 촌철살인 寸鐵殺人)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었으나, 견문발검(見蚊拔劍)의 마음으로 경거망동(輕擧妄動) 쓴 것은 아니니, 너그러운 마음으로 읽어주셨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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