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호훈 Nov 07. 2018

또 다른, 사랑의 언어 - 영화<청설 >

말이 없는 공간을 당신의 감정으로 채울 수 있다면, 꼭 봐야 할 영화

브런치 무비 패스 #2


※ 스포일러가 조금 있습니다. 영화적 완성도나 스토리에 대하여 평가하고자 하는 마음을 버리고, '달달하고 싶은 분'이 보시면 좋은 영화입니다. 수화로 전개되는 영화 특성상 극장에서 보셔야 몰입도가 높습니다.




브런치 무비 패스 영화 시사회에 초대되었다. <청설>( Hear Me, 聽說, 2009년작 )


멜로/로맨스, 드라마 | 대만 | 2010.06.17 개봉, 2018.11.08 재개봉 | 109분, 전체 관람가
(감독) 청펀펀
(주연) 펑위옌(티엔커 역), 천이한(진의함, 양양 역), 천옌시(진연희, 샤오펑 역)
(평가) "사랑하고 싶다면 이들처럼…" - 유지나 | 씨네21
영화 <청설> 포스터


대만, 영화,...

그것은 나에게 오랜 일본의 식민지, 원주민과 중국 이주민의 갈등, 중국과의 분단-양안(兩岸) 관계 정도. 여행이라도 가봤으면 모르겠으나, 대만은 큰 연이 없었던 것 같다. 그래도 ‘대만영화’는 ‘대만’이라는 나라보다는 의미가 있다.


<자객 섭은낭>, <비정성시>의 허우 샤오시엔 (侯孝賢 | Hou Hsiao hsien) 감독, <라이프 오브 파이>, <와호장룡>, <색,계>, <음식남녀>의 이안 (李安 | Lee Ang) 감독의 나라이기 때문인 듯.


대만의 복잡한 내부 사정과는 달리 대만 영화는 다양한 장르가 제작되었는데, 최근 몇 년 사이 국내 소개된 <말할 수 없는 비밀>,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 <나의 소녀시대> 등 청춘/로맨틱코미디/드라마 장르는 꾸준히 사랑을 받고 있다.


우리나라와 대만의 사랑에 대한 정서가 비슷한가?...잘은 모르겠으나, <아메리칸 파이>류(類) 의 미국 정서보다는 닮아 있을 것이라 생각해 본다.


여튼, ‘로맨스’ 이긴 하지만, 하이틴, 첫사랑, 말랑말랑 이런 것들이 연상되는 나로서는 큰 기대를 하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영화보고 첫사랑의 기억을 떠올려, 연애세포라도 살아나면 어쩌려고…;;; 40 중반을 바라보는 ‘아재’에게 살짝 곤란한? 영화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대만영화 특유의 오글거리는 웃음이라도 느껴보자는 마음으로 시사회로 발걸음을 옮겼다.


영화 <청설> 예고편

Click! 더 많은 <청설> 소개 영상_다음Daum 영화



(재개봉작이라 이미 리뷰가 많다. 많은 리뷰에서 줄거리를 이야기 했을 터, 초간단으로 적어본다. 사실 플롯 자체가 복잡하지 않다. 영화 후반에는 <식스 센스>와 맞먹는 깜짝 놀랄 반전이 있었는데 정말 그건 말하지 않겠다 :-))


#STORYLINE_갈등1_티엔커와 양양의 첫사랑



진실한 사랑에 빠진 남자는 그 애인 앞에서 어쩔 줄을 몰라 제대로 사랑을 고백하지도 못한다. – 칸트 Kant

수영장. 수영하는 사람은 있으나 말소리는 없다. 수영하는 사람들은 장애인 올림픽을 위해 훈련하는 청각장애인 선수들이기 때문이다. 청각장애인으로 올림픽 기대주인 샤오펑, 그리고 그녀의 동생 양양.


수영장에 음식배달을 온 티엔커는 한 눈에 양양에 반하고 (추억의) MSN 메신저를 딴다. 티엔커는 도시락을 건네주며 지속적으로 작업을 시도한 끝에 호감을 얻는데 성공하지만, 연애는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양양과 티엔커의 조우


언제나 바쁘게 알바를 하는 양양 때문. 엄마는 어릴때 돌아가셨고, 선교사인 아빠를 대신해서 국대 수영선수인 언니를 뒷바라지 하는 양양의 하루는 언제나 알바로 가득 차 있다.


양양에게 작업 거는 티엔커


자기가 자기 생각을 안 하니까, 내가 네 생각만 하게 되잖아…(티엔커의 작업 멘트, 괜찮은것 같다)

밥 먹을 시간도 돈도 빠듯한 그녀를 위해 도시락으로 애정공세를 하는 순정남(男) 티엔커에게 그녀의 장애는 아무것도 아니다. MSN 메신저로 대화를 이어가며 결국 데이트에 성공! 평소 티엔커가 도시락을 챙겨 준 것에 대한 보답으로 양양은 힘들게 모은 동전을 하나씩 세며 계산을 하는데…기다리는 사람 때문에 티엔커는 자신의 지폐로 계산을 해버린다.


 

양양은 거리 예술을 하며 억척스럽게 동전을 모은다


내가 이 돈 얼마나 힘들게 번 건데 사람들 좀 기다리면 어때? 너는.. 너까지 왜 날 안 기다려 주는건데?

(이렇게, 지폐와 동전이라는 갈등이 둘의 많은 입장 차이를 상징하는 것이 아닌지 생각해 본다)



하지만, 데이트의 끝은 시작처럼 순탄하지 않다. 양양의 집에 불이 났는데, 훈련에 지쳐 자던 샤오펑이 소리를 듣지 못하고 다친 것이다. 크게 다친 것은 아니지만, 목전에 둔 올림픽에는 나가지 못하게 된 것이다.

사고로 부상을 입은 샤오펑


사고로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된 양양의 언니 샤오펑. 자신을 위해 모든 걸 포기하는 동생에게 꿈도 사랑도 포기하지 말라며, 자신도 다음 올림픽에 나가겠다고 다짐을 한다.(언니 샤오펑과 양양의 갈등은 아래 따로 다루기로 한다)


(중간에 꽁냥꽁냥 로맨스인지, 가족영화인지 모를 에피소드가 있지만 패스.)


4년 뒤, 샤오펑은 다시 경기에 나가고,


사랑과 꿈은 기적이다. 듣지 못해도, 말하지 못해도, 번역 없이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라는 아름답기 그지없는 말과 함께 영화는 해피엔딩으로 끝.


#STORYLINE_갈등2_샤오펑과 양양의 정체성


친밀도가 너무 강해지면 가족구성원은 서로의 생각, 감정, 환상과 꿈에 대해서도 같이 느끼게 된다 - 보웬 Bowen


우리는 이 영화에서 첫사랑 말고 중요하게 보아야 할 것이 하나 더 있다. 바로 가족 간의 희생에 대한 이야기다.


일상과 다른 데이트라는 일정을 소화하느라, 집에 불이 난 것도 몰랐고 언니가 다친 것도 몰랐던 양양. 올림픽 유망주인 언니 샤오펑의 부상, 그로 인해 경기에 나가지 못해 모든 노력이 물거품이 되어버린 것을 자신의 탓이라며 자책 하는데…당신이 양양의 언니라면 어떤 답을 하겠는가?


샤오펑과 양양의 갈등. 갈등의 핵심은 일방적 희생에 대한 불편함


샤오펑은 술에 취해 양양에게 화를 내며 이렇게 말한다.


“아직도 모르겠어? 내가 힘든 건 내가 메달을 못 따서가 아니라 너한테 못 갖다 줘서야”

“남의 꿈을 위해 살지 마”

“난 누군가에게 짐이 되는 게 싫어….”

“니가 언젠가 날 떠나서 물새처럼 자유롭게 비상하게 되면 좋을 것 같아. 내 독립을 믿어준다는 거니까”


이렇게 일방적인 희생이란, 남을 미안하고 불편하게 만들 수도 있다. 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참고 인내하며 희생하는 것이 아니라, '따로 또 같이'라는 말처럼, 결속과 자율이 함께 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니면, 헬리콥터맘과 마마보이(혹은 캥거루족)의 관계처럼 일방적 희생과 기대에 부응하기 위한 무조건적인 수행으로 서로 ‘자존감 없는 삶’을 살게 될지니.

(헬리콥터맘: 갖은 걱정과 근심을 끊임없이 떠올리면서 자식 주위를 맴돌며 과잉보호를 하는 부모)




영화를 보고 난, 지극히 개인적인 느낌과 감정들


대단한 인기라 디지털 리마스터링 된 것도 아니고, 지금 대한민국에 이 영화가 다시 상영하는 이유는 무얼까? 달달한 사랑에 목마른 사람들의 심리가 반영된 것일까? 죽어있던 연애세포에 CPR이라도 하고 싶어서? 아니면, 하석진을 닮은 티엔커나 유민상을 닮은 티엔커 아빠를 보려고 일까?


여러 생각이 들었다는 것은 (개인적으로) “미친 듯이 재미지다”라는 것은 아닌 것이 확실한다. 하지만, 이런 생각이 들게 되는 것 자체가 큰 의미라는 생각도 들었다. 우리의 일상은 사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여지는 것처럼 MSG가 듬뿍 들어가 있지 않다. 매일이 이벤트고 행복해서 환장하고 살인을 할 만큼 분노가 있지도 않다는 것이다.

간이 안된 고깃국처럼 맛은 없지만 담백한 영화다. 단짠을 줄이면 건강해지는 것처럼, MSG없는 이런 영화가 우리의 감성을 건강하게 만들지 않을까?


이 영화는 그런 것을 충분히 담았고 ‘하루하루 라는, 일상이란 원래 그런거야. 평범하다 못해 지루할 수도 있고, 심지어 고요하기까지 하지. 그 안에서 갈등과 오해와 설레임 등 많은 에피소드들이 있지만, 손발이 오그라들 만큼 간질간질하고 꽁냥꽁냥하고 귀엽고,,,그런 감정들이 삶을 담백하게 만들어 주는거야’라는 말을 하는 듯이 느껴졌다.


또한 이 영화는 수화로 소통하는 장면이 많다. 마치 연기자의 연기에만 몰두해서 영화를 보라는 듯이 조용했고, 극장 안 사람들은 그 조용함을 깨기 싫어 숨소리 마저 아꼈다. 덕분에 낯선 몰입감도 느껴보았다. 아…그런데 이게 다가 아니었다.


배우 사이의 소리 없는 목소리, 음성이 없는 공간을 손짓과 표정, 그리고 바로 ‘나’의 감정으로 채워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사랑의 언어는 꼭 입에서 나오는 ‘말’이 다가 아니라는 것이다.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과 게리 채프먼의 ‘5가지 사랑의 언어’에서 이 영화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가 있다.




사랑의 기술 혹은 사랑의 언어


입이 아닌 손으로 대화하기. 우리는 이 영화에서 첫사랑의 달달함과 함께, 서로 다른 소통 방식을 가진 이들이 어떻게 소통을 해나가는지를 보며 따뜻함을 느꼈을 것이다. 이것이 가능한 일일까?


게리 채프먼이 제시한 ‘5가지 사랑의 언어’에서 통찰력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사람들은 ‘상대를 격려하고 인정하는 말, 함께 시간 보내기, 선물과 상대를 위한 투자, 육체적인 접촉(스킨십), 상대를 위한 섬김(봉사)’와 같은 5가지 사랑의 언어를 사용하는데, ‘제1의 언어’가 다르더라도 다른 언어로 활발한 의사소통을 한다면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5가지 언어는 결국 하나의 선처럼 이어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는 에리히 프롬이 그의 저서 ‘사랑의 기술’에서 말한, “대부분의 사람들은...사랑은 활동이며 영혼의 힘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찾아야할 것은 올바른 대상이 전부이며 그렇게만 되면 모든 것은 저절로 진행될 것이라고 믿는다. 이러한 태도는 마치 그림을 그리려는 사람이 기술은 배우지도 않고 단지 적당한 대상이 나타나기만 기다리면서 대상을 찾게 되면 멋지게 그리겠다고 주장하는 것에 비유될 수 있다. 내가 진실로 어떤 사람을 사랑한다면 나는 모든 사람을, 이 세계를, 삶을 사랑하는 것이다. 만일 내가 어떤 사람에게 ‘당신을 사랑합니다’라고 말할 수 있다면 또한 ‘나는 당신을 통해 모든 사람을 사랑하며 당신을 통해 이 세계를 그리고 나 자신까지도 사랑합니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라는 것과 일맥상통함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래서 추천합니다


그래서 이 영화 추천합니까? 라고 묻는다면 나는 추천한다고 할 것이다. 단, 서두에 밝혔지만 영화를 보는 동안 논평하려 하지 말고, ‘달달하고자 하는 노력’을 하긴 해야 할 것이다. 그러면 행복해질지니~


※ 본 영화평은 브런치 무비패스 제공으로 시사회에 참여한 후 작성했습니다.




#브런치 #무비패스 #브런치무비패스 #시사회 #영화 #영화평 #영화리뷰 #리뷰 #대만영화 #청설 #청펀펀 #펑위옌 #천이한 #진의함 #천옌시 #진연희 #사랑 #수화 #심리 #심리분석 #상처 #치유 #자존감 #작가 #정호훈

매거진의 이전글 상처와 치유에 대한 노래, 영화<스타 이즈 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