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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호훈 Jun 01. 2022

현실이란, 존재인가? 인식인가?

인간가치는 메타버스의 ‘실재감’이 아니라 ‘실재’로 결정된다


지구촌 global village이라는 표현으로 유명한 미디어 이론가 마셜 매클루언(H. Marshall Mcluhan)은 그의 책 「미디어는 마사지다(The Medium is the Massage,1967)」에서 이렇게 말했다. ”바퀴는...발의 확장이다. 책은 눈의 확장이다…옷은, 피부의 확장이다...모든 미디어는 인간이 지닌 재능의 심리적 또는 물리적 확장이다.” 그러면, 메타버스는 무엇을 확장하고 있는가?




인간의 확장에서 세계의 확장으로


코로나19는 인류의 일상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전염병의 확산을 막기 위해 사람이 모이는 곳을 피하거나 접촉을 최소화하는 ‘사회적 거리두기 Social Distancing’와 함께 업무, 수업, 소비, 소통 등 전 영역에 걸쳐 언택트 Untact라는 디지털 전환 Digital Transformation이 일어났다.


이러한 변화들은 관련 기술과 서비스를 통해 가능했으며, 집에 갇혀 고립될 것만 같던 삶 속에서도 우리는 일상을 이어갈 수 있었다. 이를 통해, 우리는 굳이 물리적으로 만나지 않아도 함께 있는 경험을 할 수 있었으며, 시간의 제약을 벗어나 오히려 이전보다 더 많은 것이 가능해졌다.


이렇게 우리는 팬데믹이라는 환경의 제약을 극복하고, 더 나아가 환경을 확장해 나가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개념이 최근에 등장한 것은 아니다. 월드 와이드 웹 발명 30년 전에 그 존재를 이미 예견한 매클루언은 「미디어는 마사지다」에서 이러한 기술과 미디어를 통한 ‘인간의 확장’ 개념을 이야기한 바 있다.


그는 문화비평론적 관점에서 “하이테크시대의 미디어는 인간의 촉각만을 편향적으로 발달시키고 있다”며 미디어를 마사지 massage에 비유하였으며, 기술결정론적 관점에서 “미디어는 환경을 변화시킴으로써 우리 내부에 있는 특정 부위를 자극하여 지각하게 한다. 그야말로 감각의 확장은 우리의 사고와 행동 유형-우리가 세계를 인식하는 방법-을 변화시킨다.”며 미디어의 영향력을 강조했다.



전쟁을 인식하는 새로운 방법


1991년, 미디어를 통해 ‘세상을 인식하는 방법’의 전 지구적 변화가 일어난 사건이 발생한다. 걸프전 Gulf War이다. 1990년 8월 쿠웨이트를 침공한 이라크군을 이듬해 다국적군이 섬멸하며, 쿠웨이트의 독립을 탈환한 전쟁이다. 미국의 최첨단 군사력과 과학기술도 놀라웠고, 석유를 둘러싼 전쟁이라는 것도 큰 관심사였지만, 걸프전이 유명해진 데에는 다른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인류 역사상 최초의 ‘전쟁 생중계’라는 것. 미국의 24시간 케이블 뉴스 채널 CNN은 43일 밤낮으로 전쟁을 방송했다. 방송에서 보이는 최신 전투기의 요격 장면은 흡사 1인칭 슈팅 게임(FPS, First Person Shooting Game)에서 타깃을 조준하는 것을 방불케 하고, 이라크의 수도 바그다드 밤하늘을 날아다니는 수많은 총알과 포의 궤적은 마치 폭죽놀이를 보는 듯했다. 전 세계인들은 이 게임인지 전쟁인지 모를 뉴스를 보며, 현실과 가상의 경계에 대한 충격에 휩싸였다.


30년을 지나 2022년 2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는 틱톡 TikTok 라이브가 CNN을 대신하고 있다. 소셜 미디어를 통해 전쟁의 참상과 메시지를 전하려는 이들의 진심 어린 노력에 전 세계가 눈물을 흘리고 있는데, 이 와중에 어떤 이들은 전쟁 게임 화면이나 과거 전쟁 뉴스 등을 편집한 가짜 라이브로 조회수를 챙기고 있는 것이 확인되어 충격을 주고 있다.


걸프전 이후 게임을 연상케 하는 전쟁 생방, 전쟁 생방을 연상케 하는 전쟁 게임은 더 이상 특별한 것이 아니다. 실제 전쟁을 그대로 재현한 그래픽과 타격감(육체적∙심리적인 자극의 강도)을 게임에서 경험하며, 마치 전쟁을 경험하는 듯 우리의 감각과 세계는 확장될 수 있었다. 하지만, 실재와 가상의 모호한 경험은 우리에게 전쟁에 대한 무감각도 덤으로 주었다.



현실을 압도하는 비현실


지금 우리는 물리적인 세계와 가상의 세계-메타버스를 함께 살아가고 있다. 메타버스는 ‘현실이 확장된 가상의 세계’라는 다소 모호한 개념으로 표현되지만 흔히, 가상현실(VR: Virtual Reality), 증강현실(AR: Augmented Reality), 혼합현실(MR: Mixed Reality), 그리고, 확장현실(XR: eXtended Reality)을 통해 구체적으로 이야기되곤 한다.


쉽게 말하자면, VR은 어떤 상황이나 환경을 컴퓨터로 만들어 직접 체험하지 않고도 현장감을 느낄 수 있게 하는 것으로, 실제와 유사하지만 실제가 아닌 것을 말한다. AR은 실제 환경에 정보를 겹쳐서 overlay 물리적 세계와 디지털 세계를 연결해서 보여주는 것으로, 실제에 가상을 입힌 것이다. MR은 실제 세계에 단순히 정보를 입힌 AR을 넘어, 디지털과 실제 세계가 상호 작용하여 혼합된 세계이다. 그리고 XR은 가상현실, 증강현실, 혼합현실이 연계된 현실을 의미한다.


이러한 현실과 비현실의 무(無) 경계는, 전쟁 사례에 볼 수 있듯이 전쟁에 대한 감각의 확장과 함께 전쟁의 참상에 대한 무감각을 함께 경험하게 한다. 이러한 모순을 경험하는 이유는 비현실이 너무나 현실적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모순은 인간의 오감과 경험, 나아가 감성까지 자극하여 사용자에게 (현)실감을 전달하는 실감 콘텐츠 Immersive Content와 관련 기술의 진화에 따라 더 커질 것이다.


이러한 모순과 더불어 비현실이 현실을 압도하는 현상에 대해 보다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 인간이 물리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것은 한계가 있다. 하지만 메타버스에서는 경험의 한계가 없다. 오히려 현실에서 경험할 수 없는 경험을 가능케하며, 실재보다 더 실재감을 주기도 한다. 하여, 우리는 메타버스에서의 경험을 실존하는 것으로 인식하게 되며, 현실보다 더 큰 경험을 주는 비현실을 현실이라고 착각할 수 있다. 이것은 인식이냐? 존재냐? 의 질문과 다름 아니다.



실존에 대한 고찰


지금 우리는 ‘현실세계’보다 ‘현실적인 세계’에 집중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현실적인 세계에서 살아갈 ‘나의 아바타 Avatar’도 결국 ‘나’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현실세계’라는 실존에서의 인간가치가 반영되지 않은 ‘현실적인 세계’는 기술적으로 연결될지언정, 모순은 더 커질 것이기 때문이다.


*코로나19로 재택근무를 실시했던 애플, 구글, 트위터가 최근 사무실 복귀를 결정하고, 재택 및 사무실 근무를 결합한 하이브리드 정책을 실시한다고 한다. 여성 및 유색인종은 지속적인 재택근무를 선호하지만, 이러한 추세는 기업의 다양성과 포용 노력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는 조사 결과 때문인 듯하다. 이러한 변화는 메타버스의 기술적 한계성보다는 인간가치에 대한 고민의 반영일 것이다.


커뮤니케이션 테크놀로지인 미디어가 사회 변화를 이끄는 견인차 역할을 한다는 '미디어 결정론'의 신봉자였던 마셜 매클루언이 말하고 싶었던 것은, 미디어와 기술을 통한 인간의 확장보다 그 미디어와 기술을 받아들이는 인간 주체의 실존에 대한 것이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일런 머스크는 사무실에 복귀하지 않으면 퇴사라고 한다.(관련 뉴스 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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