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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Column

침착하게 사랑하기

故차도하 시인

by 발렌콩

침착하게 사랑하기

-차도하


몸에 든 멍을 신앙으로 설명하기 위해 신은 내 손을 잡고 강변을 걸었다 내가 물비린내를 싫어하는 줄도 모르고


빛과 함께 내려올 천사에 대해, 천사가 지을 미소에 대해 신이 너무 상세히 설명해주었으므로 나는 그것을 이미 본 것 같았다


반대편에서 연인들이 손을 잡고 걸어왔다


저를 저렇게 사랑하세요? 내가 묻자

신은, 자신은 모든 만물을 사랑한다고 말했다


저만 사랑하는 거 아니시잖아요 아닌데 왜 이러세요 내가 소리치자


저분들 싸우나봐, 지나쳤던 연인들이 소곤거렸다


신은 침착하게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고 나는 신의 얼굴을 바라보지 않고 강을 보고 걷는다


강에 어둠이 내려앉는 것을, 강이 무거운 천처럼 바뀌는 것을 본다

그것을 두르고 맞으면 아프지만 멍들지는 않는다


신의 목소리가 멎었다 원래 없었던 것처럼

연인들의 걸음이 멀어지자 그는 손을 빼내어 나를 세게 때린다




이건 사랑에 대해 말하면서

사랑하지 않음에 대해 고발하는 시


그것도 신과 연인이라는 두 가지 상징을 써서, 이중의 배신과 고립감을 터트리는 구조.

감정적 진실을 너무 태연하게 건드려서 더 아픈.


차도하의 《침착하게 사랑하기》

폭력의 증거일 수 있다는 해석,


특히 이 부분


신의 목소리가 멎었다 원래 없었던 것처럼

연인들의 걸음이 멀어지자 그는 손을 빼내어 나를 세게 때린다


이건 단순한 상징이 아니라,

사적인 공간 안에서 벌어진 폭력을

정교하게 숨긴 문장


신이라는 말, 연인들의 시선, 강변이라는 배경…

전부 다 외부 세계와 분리된 관계의 폐쇄성을 상징


그리고 마지막 줄은… 거의 고백이자 절규.

“누가 봤으면 좋겠는데, 아무도 못 봤다.”

이 시는 그런 은폐된 증언처럼 읽힐 수 있다.


하지만 이게 문제다.


그가 직접 그 시에 대해 그렇게 말했다거나,

구체적인 증거를 남긴 건 없다는 것.


그래서 이 시는 증거가 아닌, 유일한 흔적이 된다.

폭력을 당했던 사람의 목소리는


언제나 너무 조용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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