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변의 마음

곧 20대 중후반에 접어든다. 중반의 반과 후반의 반이 섞인 중후반.

by 발렌콩

곧 20대 중후반에 접어든다. 중반의 반과 후반의 반이 섞인 중후반.


일전에 머물었던 직장에서는 30대 중반에서 40대 초반의 사람들과 어우러져 업무를 하고 있는데, 그들은 모두 하나같이 토끼처럼 어리고 귀여운 자식들을 키우고 있다. 업무를 할 때 꼭 필수적인 모 메신저의 프로필 사진에도, 그들은 모두들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귀여운 아들, 혹은 딸 자식들을 프로필 사진으로 내걸고 있다. 상사인 그들이 업무 지시를 내릴겸 메시지를 보낼 때 마다, 뽀송뽀송한 아이 얼굴이 먼저 뜨는데 마치 그 어린 아이들이 내게 지시를 내리는 것 같아서 기분이 묘해진다. 진짜 명령조가 섞였거나, 명령조의 느낌을 빌린 단어들이 놓인 문장 위에 올려진 때묻지 않은 순수한 표정의 아기 사진. 알록달록 아기자기한 옷만큼 생동감 넘치는 표정들, 걱정이 1g도 섞이지 않은 활짝 피어난 웃음들, 그 어여쁘고 순수한 표정을 기꺼이 아낌없이 담아내는 아기들. 메세지를 보낸 그들을 꼭 닮은, 마치 그네들의 어린모습처럼 느껴지는.


업무에 지쳐 숨쉬듯이 한숨을 내쉬는 상사들도 밥 먹을 때마다 잠깐씩 꺼내게 되는 아이 이야기에는 죽어있던 눈빛이 반짝반짝 빛난다. 그건 마치, 고양이를 키우는 집사들이, 각자 키우고 있는 고양이의 이름을 언급하며 수다스런 이야기를 꺼내는 모습과도 흡사하다. 사실 그들도 마찬가지다. 아이들 이야기를 할 때 마다 반짝이는 눈빛들은 아이들 표정만큼이나 순수하고 생동감 넘친다.


곧 20대 중후반에 접어든다. 만 스무살 성인이 넘은지 어언 6년이 흐르고 있는데도, 아기를 키우고 가정을 이뤄낸 그 어른들을 접할 때마다 묘한 경탄에 이른다. 진짜 어른이구나, 나도 '진짜 어른'이 되려면, 아직은 까마득 멀었구나. 그런 맘이 들면, 진짜 어른이 되는 것이 좋은건가, 진짜 어른이 된다면 어떤 마음일까, 의구심이 솟구친다. 나와 친한 사람들이라면 몇몇 알고 있겠지만, 근래 나는 격변의 마음을 맞이했다. 하지만 좋은 마음도 뒤따른다. 얹짢음과 기쁨이 공존하는 마음을 '격변'이라고 표현하면, 그 격변을 더 긍정적으로 헤쳐나가리라 다짐해본다. 얼마전에 내게 일어났던 기쁨의 순간을 떠올려본다. 지인의 결혼식, 그리고 작은 상이지만 입상 소식, 내 이름이 실린 상장과 내 소설이 실린 책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기쁨 다음 불행. 곧 얼마전에 벌어졌던 불행의 사건들을 이따금씩 떠올려본다. 김주혁 배우의 교통사고, 창원 터널의 유조차량 폭발사건,


김주혁은 가장 좋아하는 남자 배우중 한 명이었다. 한혜진과 주연으로 연기한 소믈리에 와인 드라마 '떼루아'에서 팬이 되어 그 진중한 눈빛과 목소리톤을 이따금씩 떠올렸다. 그리고 한효주와 등장했던 영화 '뷰티 인 사이드'의 마지막 이별 장면도. 그 잔잔하면서도 고요한 김주혁 배우만의 분위기도.

내가 쓰는 소설의 대부분은 남성향이며, 남자 캐릭터가 많이 등장하는데 그때마다 내 머릿속 가상 캐스팅의 주인공은 대부분 배우 김주혁이었다. 그랬기에 갑작스런 사상사고는 더욱 충격적이었다. 자살은 아니니 '베르테르 효과'로 표현할 수는 없지만 그와 버금가게끔. 사고가 일어나는 순간에 촬영된 블랙박스와, 꼼짝없이 처참히 쳐박힌 차량에서 꺼내는 김주혁의 몸도, 검색만 하면 너무도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SNS와 블랙박스의 발달은 과연 득인가 실인가-


창원터널 사고가 터졌을 때는 한창 업무 중이었고, 속보로 뜬 헤드라인 몇줄과 먹구름처럼 짙은 연기 사진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모닝과 스파크차량의 두꺼운 차 유리가 소멸될만큼 불탄 차의 잔재들, 검은 철재들이 앙상한, 나와 동갑인 여자 차주는 죽기 전,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2번의 고함을 질렀다고 했다. 딸의 전화에 놀란 엄마는 딸에게 사고가 생긴걸 직감하고 위치추적으로 급하게 창원 터널로 향했고, 그 아수라같은 잔상에 너무도 놀라 주저앉을 수 밖에 없었다고 표현했다. 기사를 읽을수록 절망적으로 우울해졌다.


사고가 일어나는 순간에 촬영된 블랙박스와, 꼼짝없이 피어오르는 집채만한 시커먼 구름들도, 지옥이 따로 없을 정도로 활활 타고 있던 그 도로도. 검색만 하면 너무도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SNS와 블랙박스의 발달은 과연 득인가 실인가-


오늘 포털에서는 불에 타고 있던 인도 아기 코끼리의 사진을 접했다. 아기 코끼리의 하반신엔 붉고 주황빛의 불이 활활 타고 있다. 아기 코끼리는 지금까지 벌려보지 못했던 크기로, 거의 찢어질듯이 입을 크게 벌리고 있다. 불에 타는 고통에 저도 지금껏 벌려보지 못했던 입일텐데. 얼마 안 자랐는데, 더 자라야하는 몸인데. 그 인도 소재의 사진이 한국의 포털 메인에 노출된 지금쯤 저 아기 코끼리는 과연 살아있을까? 격변의 마음들을 억지로 달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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