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온라인에서 알게 된 매력적인 그녀의 수필을 구독하게 되었다. A4용지 두쪽 짜리 분량의 수필을 하루에 1건씩 메일로 발송 해 주는 시스템은 매우 정열적이며, 대단하다. 그렇게 20편의 진솔한 수필을 메일로 구독 받아서 보내는 구독료는 고작 1만원.
학자금 대출을 갚아야 하는 그녀가 선택한 그녀다운 발상이었다. 1만원에 20편의 따뜻하고 단정한 감상이 담긴 수필이라니 게다가 너무도 저렴한 금액이 아니던가? 그 구독 모집 글을 확인하자마자 바로 계좌이체를 했고 구독 신청서를 송출했다.
지금 고작 5편 정도를 읽었는데, 읽을 때 마다 그 솔직하고 단정한 단상에 더 열중하여 읽었다. 마음이 따뜻해지고 차분해지는 글이다. 꾸밈없이 온전한 일기장을 훔쳐 읽는 듯한 묘한 감정이었다.
한편, 나는 벌써 오육개월 전에 중단한 나의 일기장들을 생각 해 본다. 내가 솔직하게 부려적은 일기장의 타이틀, 즉 단어들을 읊조려본다. '부사는 지옥으로 가는 급행 열차다.' 내 글엔 항상 꾸밈이 많고 군더더기가 많다. 묘사를 쥐어 짜내려는 고심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불편한 글이다. 한창 마음이 미쳐있을 때 와인을 마시고 쓴 글은 느끼해서 읽는 것조차 거북하다. 내밀한 감정을 끄집어내서 진실만을 적는다면, 문장을 꾸미는 부사따위 필요 없을 테다. 그 자체가 꾸밈이 될 터이니 화려한 수사나 단어, 부사들이 무엇 필요하랴.
이렇게 모두가 확인할 수 있는 개인 SNS에 내 감정들을 솔직하게 적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나는 내 감정들과 생각들을 에둘러서 빗대어 표현할 수 있는 방식들을 택했다. 음악이나 드라마, 영화, 책을 소개하는 부분에서 조금씩 내가 생각했던 의견을 표출한다. 그러나 무척 조심스럽다. 당연하게도 나이를 먹어갈 수록, 글을 쓸 때 머뭇거리는 순간이 더 늘어났다.
과연 좋은 징조인걸까.
머뭇거림이 사라질때 조금 더 재바르게, 언젠가 글에 대해 적어두었던 비밀 일기장의 짧은 문장들을 한켠씩 공개해본다.
그럼 나는 조금 더 성숙한 표정으로
한가지 확신할 수 있는 사실은 내가 창조 해 놓은 인물들이 어느덧 조금씩 살아 움직여 생동적이고 역동적인 몸짓으로 이야기를 꾸려나간다는 사실이다. 이쯤 되면, 인물들은 더이상 나의 손과 힘에 의지되는 것이 아니라 명백히 자신들의 의지대로 이야기를 꾸려나갈 것을 직감한다. 내가 만들어놓은 가상의 인물들이 마치 정해진 길과 수순이 있다는 듯이 무심한 행동과 표정으로 나를 무시한 채 걸어가는 모습을 말없이 지켜봐야 할 때가 올지도 모르겠다. 곧.
그럼 나는 조금 더 성숙한 표정으로 그 아이들을 건설적으로 바라보며 그들이 더욱 자신의 길을 잘 걸어갈 수 있도록 길을 치워주어야겠다. 곰곰 생각 해 보니 글을 쓰게 하는 건 아마도 그 힘인 것 같다. 내가 만든 인물들이 수동적으로든 자동적으로든 제 길을 개척 해 가는 그 힘을 즐겁게 지켜보는 것이. 이왕이면 이야기 양판소가 아니라 정말 흥미진진한 서스펜스를 잘 접목시킨, 뒷 부분이 계속 궁금해지는 이야기를 재미나게 그리고 싶다. 아무도 읽지 않는 글은 슬프다 못 해 비참할 게 분명하니까. 이왕이면 많은 사람들이 즐겁게 혹은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이야기들로. 라고 이야기했지만 이건 비단 나뿐만이 아니라 글씨 쓰는 사람들이라면 간절히 소망 하는 사안일 것이다.
나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소중한 내 지인들의 이야기와, 이름과 그들로부터 얻은 짧은 단상을 내 이야기에 담아도 되는지에 대해서. 어쩐지 죄를 짓는 기분이다. 하나의 캐릭터 안에는 한 사람만의 이야기나 잔상이 담겨 있는 것은 아니다. 그 외에도 내 지인, 실존인물, 누군가에게 듣고 봐왔던 수많은 '생물'에 대해서 모티프를 얻고, 내 스스로 개작을 한다. 어떻게 보면 정말, 더럽고 교활한 추태일 수도 있겠다. 나만 그런 줄 알았는데 이미 수많은 작가들이 고민하고 있던 내용이었다. 과연 좋은 것일까, 나쁜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