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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렌콩 Jul 31. 2018

청소왕 허지웅, 나도 청소성애자

흐릿한 시야를 또렷하게 보여주는 내 개화기 뱅글이 안경

  시력이 좋지 않음에도 지금까지 라식 수술을 하지 않은 이유는 단 하나다. 렌즈, 안경을 끼거나 벗음으로 "흐릿한 시력 or 또렷한 시력"을 선택할 수 있는 이유에서였다. 시야가 또렷하게 잘 보이는 것이 더 속 시원하지만, 더럽거나 어지럽혀져 있는 것을 볼 바에는 투명하게 블러칠 된 잔상을 보는 것이 만 배 낫다. 이렇게 말하면 내 시력이 별로 나쁘지 않은 것처럼 느껴질 수 있는데 내 시력이 얼마나 심각하냐면, 저 멀리 희끄무레한 꽁이가 보여 다가가서 껴안았다가 그게 수건뭉치란 것을 알고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게다가 시력도 짝눈이다. 암튼 이렇게 심각한 시력임에도, 라식수술을 한 지인들이 "아침에 눈을 떴는데 천장이 또렷하게 보이는 건 정말 신세계야." 라고 회유하고 설득해도 큰 감흥이 없다. 

안경을 끼거나 렌즈를 낌으로써 시력이 또렷해진다면, 정확하게 보이는 먼지에 물불 가리지 않고 청소에만 열중하기 때문이다. 평소 정리벽이나 강박증이 심해서이다. 틈 사이사이에 묻은 먼지를 제거하기 위해 당장 부직포 형태의 스카트에 물 묻혀와 열심히 닦는다. 그럼에도 때가 잘 지워지지 않는다면 음각과 양각이 또렷한 은색 수세미까지 가져와 묵은때를 열심히 지운다. 학교 다닐 때 제일 좋아했던 일은 친구들 사물함 정리 해 주는거, 친구들 책상 속 교과서 크기에 맞춰 각 잡고 책을 정리 해 주는거,필통 속 필기구를 물티슈로 하나씩 닦아주는 일. 

  지금도 좋아하는 일은 가방 속 수많은 물건들 하나하나 깨끗하게 정리정돈. 그래서 내 필수 물건은 1. 가방 안에 넣는 수납용 얇은 이너가방, 2. 빨아쓰는 휴지라고 불리우는 스카트, 3. 옷 먼지를 제거할 때 쓰이는 돌돌이, 4. 오돌토돌한 은색 스펀지 수세미. 5. 흰색 매직 스펀지. 6. 물티슈. 지저분함은 꼭, 반드시 치워야만 직성에 풀리기에 집에 오자마자 그런 강박을 억지로나마 중단하고자 얼른 렌즈를 빼버린다. 그리고 안경도 안 낀다. (공부나 독서를 제외하고) 흐릿하게 블러칠 된 눈 앞에서도 보이는 난잡함이나 먼지는 당연히 0순위로 치운다. 


다만 시력이 또렷했다면 140을 해야 할 일을,
앞이 흐릿해서 80을 하는 걸로 스스로 합의 한다.


  청소가 좋은데 왜 스트레스를 받느냐? 그건 집안에서 나만, 홀로 청소하기 때문이다. "왜 우리집 사람들은 아무도 치우지 않을까요?" 몇년 전, 버블티 알바에서 우연히 청소 얘기를 하다가 시무룩하게 질문 했을때 여자 실장님에게 "그건 바로 자기가 치우기 때문이지. 자기가 깨끗하게 치우는데 뭐하러 힘들여 치우겠어." 라는 대답을 들었는데 지금 생각하니까 그 대답이 90%는 자명한 것 같다.  (그 당시 치우지 말아보라는 조언을 얻고 정말로 치우지 않았다가 며칠만에 자포자기하고 안경끼고 열심 치웠던 기억이.)

  꽁이 털을 제거할 때 쓰이는 끈끈이 돌돌이를 넘나 사랑한다. 떨어진 머리카락이나 큰 먼지를 제거할 때 청소기보다도 더 탁월하며 빠른 시간 내로 깨끗하게 제거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흐릿한 눈 앞에서 번거롭게 청소기를 꺼낼 것 없이 바로 방바닥을 돌돌돌 돌리고, 뜯어내면 되니까. 

  나는 지인의 어지럽혀진 집을 깨끗하게 치워주는 것도 아주 좋아한다.(Y,J,S들 보고 있능가?) 특히 공통적으로 더러웠던 싱크대, 개수대를 치울때 쾌감을 느낀다. 가스렌지 근처 기름때를 지우기 위해 먼저 세제를 듬뿍 뿌려 불려놓고, 철수세미와 매직스펀지로 차례대로 닦으면 끈적이는 기름때가 말끔하게 지워진다. 노랗게 끈적이는 때가 순식간에 지워져서 하얗게 반짝이면 너무너무 좋아서 쾌감이 솟는다.

  청소 용품이 나날이 발전하고 있는데 예나 지금이나 감탄스러운 것은 역시나 매직스펀지다. 매직스펀지는 매직블럭으로도 불렸는데 '매직'이라는 단어 그대로 감탄스러울 정도로 혁신적이다. 수많은 청소 용품중에서도 아직까지도 아주아주 요긴한 물건이다. 지금은 다이소나 동네 슈퍼에서도 저렴한 값에 많이 팔리고 쉽게 구했지만, 그 당시엔 비용도 비쌌고, 홈쇼핑에서 대량으로밖에 안 팔았던 것 같다.  마미가 대량 구입했던 흰색 매직스펀지는 일본에서 발명되었던 아이디어 상품으로 그당시 주부들에게 획기적인 잇아이템이었다. 파란색 집게나 손잡이에 원하는 크기별로 서걱서걱 잘라서 사용했는데 몇번 다시 빨아 쓸 수 있어서 꽤 경제적이었다. 그걸로 먼지를 닦으면 지우개로 흑연 지우듯이 깔끔하게 지워졌다. 이 매직스펀지를 떠올리면 고딩때 교실 환경 미화를 위한 청소 일화가 떠오른다. 

  첫 담임을 맡게 되어 꽤 열의가 넘치는 젊은 남자 선생님은 교실과 복도 환경 미화에서 동료 선생에게 지지 않기 위해 반 아이들에게 끈질기게 청소를 갈구했다, 라고 쓰고 갈궜다로 읽을것. 그래서 각자 매직스펀지와 철수세미를 구입해서 복도의 한 블럭식을 맡으라고 일렀다. 은색 빛깔의 복도는 짙은 회색으로 때가 켜켜이 묻어 있었다. 담임샘은 물 묻힌 매직 스펀지로 열심히 닦는 시늉으로 시범을 먼저 보여주셨다. 

  복도를 맡은 조는 열심히 따라했는데 닦아도 닦아도 때가 지지 않았다. 사실 매직스펀지를 제대로 사용하려면 다른 도구가 필요했다. 물 아니면, 깨끗한 걸레.

  일차적으로 철수세미나 스펀지를 이용하여 때를 추출했으면, 이차적으로는 그 추출된 때를 없애야 한다. 대개는 걸레로 그 때를 훔치는 것이 맞다. 아니면 물을 끼얹어서 흘려 보내거나. 하지만 복도에는 땟국물을 흘려보낼 수채구멍이 없기 때문에 다른 방법을 이용해야 한다. 아무튼 그 추출된 때를 마른, 혹은 촉촉한(깨끗한) 걸레로 닦아야 하는데, 그런 걸레가 없어서 복도바닥보다도 더 더러운 검은 대걸레, 혹은 때에 흠뻑 절은 스펀지로 땟국물을 닦으니 지워질 턱이 있나. 수채구멍이 없는 복도 바닥에 스펀지를 통해 추출된 땟국물이 서서히 증발하여 말짱 도루묵을 보여줬다. 흰색 스펀지는 검게 변하고, 짙은 회색의 복도 바닥에서 검은 걸레와 스펀지로 때를 훔치고. 열심히는 닦는데 도통 깨끗해지진 않고. 담임샘은 엄청나게 닦달하고 갈구고. 그때 나는 복도를 맡은 조가 아니었으므로 괜히 끼어들지 않았는데 지금 곰곰 생각해보니까 갈구는 담임샘을 약 올리기 위한 그 조의 지능적인 수법이었던 것 같다. 

  암튼 나름 많은 청소를 해왔고 청소를 강박적으로 즐겨왔던 나로써는 항상 의문이 들었던 게 있었는데 바로, <청소의 순서와 청소의 개수>였다. 마미가 그토록 중요하다고 외치는 걸레질이 왜 마지막 하나만 있는 것인지. 1. 걸레질을 먼저 해서 틈틈 고여있던 먼지와 때를 한데 모으고 (마치, 위 매직스펀지의 일화처럼 일차적으로 때를 추출하는 것이다.) 2. 시간이 지나고 수분이 증발하여 남은 먼지를 비로소 쓸거나 흡입한 후, 3. 마지막으로 깨끗한 새 걸레로 마지막 걸레질을 하는 것이 더 올바르고 정직한 청소법이 아닌가 골똘하게 생각했었다가, 그럼 통상적인 두 번의 청소가 아니라 총 세 번을 해야하니 그건 좀 아닌 것 같았다. '내가 너무 강박관념이 심한가 보다.' 하고 슬쩍 묻어두었던 생각을 방송인 허지웅이 칼럼으로 풀어주었닼ㅋㅋㅋ 너무 공감가는 대목이라서 캡쳐샷으로 하단에 발췌했다. 아래 글을 읽고, 오래전 내가 했던 생각이 꽤 타당했음에 너무 기뻐서 헤실헤실 웃었다. 지금도 기쁨.

  암튼 나는 독립해서 내 집을 갖기 전까진 절대 라식 하지 않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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