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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렌콩 Aug 04. 2018

 영화 향수 :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

영화와 소설 느끼기

가장 혐오스러운 살인마에 대한 사형 집행은 기원전 2세기 이래로 이 세상에서 벌어진 가장 대규모의 환락의 향연으로 번했다.파트리크 쥐스킨트 장편소설, 향수 :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


 이 소설을 처음 읽었을 때는 고등학생이었다. 누군가에게 '향수'라는 소설의 줄거리를 듣고 영화를 먼저 보고, 그 다음에 소설을 읽었다. 장편이라서 분량이 꽤 두툼함에도 그 흡인력에 단숨에 다 읽었던 것 기억이 난다. 영화는 소설의 기반을 최대한 그대로 가져다 놓은 듯 했으며, 우려했던 후각에 대한 묘사를 줌과 생생한 효과음으로 소설 속 구축을 잘 살려 놓았다. 시간이 조금 흐른 지금 다시 영화와 소설을 접하니 느낌이 사뭇 다르다. 영화의 캡쳐본과 소설 속 장면을 매칭하여 작성 해 본다. 영화의 특성상 소설속에서 삭제된 부분이 많지만 제일 주축이 되는 부분들은 오롯하게 잘 살려냈다는 생각이 든다. 영화는 괴랄하면서도 섬뜩하지만, 때문에 가장 강렬했고 아주 인상적이었다.  

 (하단, 소설 속 원문과 영화 캡쳐본은 스포일러가 대량 분포되어 있습니다)


분홍색 텍스트는 저의 견해이며, 회색은 소설의 원문을 옮겼습니다.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52553#story




천재의 광기 어린 집착,
사라진 13명의 여인들…

그에게 향기는 전부였고, 살인은 운명이었다!



18세기 프랑스 생선시장에서 태어나자마자 사생아로 버려진 ‘장바티스트 그르누이’. 불행한 삶 속에서 그의 유일한 즐거움은 천재적인 후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 그러던 어느 날 그는 파리에서 운명적인 ‘여인’의 매혹적인 향기에 끌리게 된다. 그 향기를 소유하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힌 그는 향수제조사 ‘주세페 발디니’의 후계자로 들어간다.  
 
 뛰어난 후각으로 파리를 열광시킬 최고의 향수를 탄생시키지만, ‘여인’의 매혹적인 향기를 온전히 소유할 수 없었던 그는 해결책을 찾아 ‘향수의 낙원, 그라스’로 향하게 된다. 마침내 그곳에서 그는 그토록 원했던 자신만의 향수를 만드는 방법을 알아낸다. 한편 ‘그라스’에서는 아름다운 여인들이 나체의 시신으로 발견되는 의문의 사건이 계속되는데…




그러나 다른 아이들은 그르누이가 어떤 아이인지 금방 눈치 챘다. 첫날부터 그들은 새로 온 이 아이한테서 섬뜩한 기분을 느꼈다. 그들은 아기가 누워 있는 요람을 멀리했고 마치 방 안이 더 추워지기라도 한 듯이 더 빽빽이 붙어서 잠을 잤다. 한번은 비교적 나이가 든 아이들이 작당을 하여 그를 질식시켜 죽이려고 헌 옷가지와 이불, 지푸라기 등을 그의 얼굴에 덮어 놓고 그 위를 벽돌로 짓눌러 놓았었다. 그루누이는 얼굴이 찌그러지고 짓눌려서 새파랗게 질려있었지만 목숨은 붙어 있었다. 그들은 그의 냄새를 맡을 수가 없었고, 그래서 그 아이가 두려웠다.

 천부적인 후각을 타고난 그르누이에게 아무런 냄새가 존재하지 않는 사실은 아이러니하면서도 어쩌면 가장 그럴듯한 결핍적인 개연성이었다. 사람에게 느껴지는 고유의 체취가 없다는 사실, 당연히 있어야 할 것이 없는 그 결핍은 향기를 사랑하는 그르누이에게는 아주 절망적인 사실이다. 향기가 없는 자의 집착은 점차 광기로 변모하게 되며 이는 살인의 행위에 이르게 된다.


여자아이가 이 식탁에 앉아 자두를 손질하는 중이었다.

이 향기는 도대체 파악 할 수도 설명할 수도 없었으며, 어디에다 분류해야 할지도 알 수 없었다. 존재 자체가 불가능한 그런 향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지극히 분명하게 존재하는 것이 아닌가. 그르누이는 그 냄새를 따라갔다. 가슴이 불안으로 쿵쿵 뛰었다. 자기가 냄새를 쫓아가는 것이 아니라 냄새가 저항도 못 할 정도로 힘차게 자신을 끌어들이는 것 같은 예감 때문이었다.
 그르누이는 몽유병자처럼 그 통로를 지나 뒤뜰로 들어갔고 다시 모퉁이를 돌자 두번째의 좀더 작은 마당이 나타났다. 그 밑에 놓여 있는 식탁 위에 촛대 한 개가 세워져 있었고 여자아이가 이 식탁에 앉아 자두를 손질하는 중이었다. 그녀는 왼손으로 바구니에서 자두를 꺼내서는 칼로 꼭지를 잘라 내고 씨를 제거한 후통 속에 집어 넣었다. 그 향기는 이 더러운 뒷마당이나 자두에서 나온것이 아니었다. 바로 이 소녀가 향기의 원천이었다.
 그녀의 겨드랑이에서는 땀내가, 머리카락에서는 기름 냄새가, 그리고 국부에서는 생선 비린내가 퍼져 나왔다. 최고의 희열감이 찾아왔다. 그녀의 땀은 바다처럼 상쾌했고, 머리카락의 기름기는 호두 기름 같았으며, 국부는 수련 꽃다발의 향기를, 그리고 피부는 살구꽃 향기를 품고 있었다. 그것은 아주 풍부하고 균형이 잡힌 신비로운 향기였기 때문에 그르누이는 지금까지 자신이 맡아 본 모든 향수와 그 자신이 상상 속에서 장난삼아 만들어 본 향기의 건축물들이 한순간에 아무 의미도 없이 와르르 무너져 내리는 것만 같았다.  


그 순간 그를 발견한 그녀는 너무 놀라서 몸이 굳어져 버렸다. 때문에 그는 그녀의 목을 조를 충분한 시간적 여유를 얻게 되었다.

그르누이는 순수한 그녀의 향기를 들이마셨다. 기분이 이렇게 좋았던 것은 한 번도 없었다. 반면에 그녀는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그 순간 그를 발견한 그녀는 너무 놀라서 몸이 굳어져 버렸다. 때문에 그는 그녀의 목을 조를 충분한 시간적 여유를 얻게 되었다. 한편 그르누이는 그녀를 쳐다보지 않았다. 그녀의 목을 조르는 동안 향기를 하나라도 놓칠세랴 눈을 꼭 감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그녀의 모든 냄새를 훑어 내렸고 턱과 배꼽, 팔꿈치의 주름살 사이에 있는 마지막 한 방울의 향기까지 다 들이마셨다.


증류액은 처음에는 묽고 흐릿한 수프처럼 보잘것없어 보였다.


 점차 증류기가 끓기 시작했다. 한동안 시간이 흐른 후 처음에는 뜨문뜨문 한 방울씩, 그 다음에는 실처럼 가늘게 마우렌코프의 세번째 관으로부터 발디니가 밑에 세워 둔 피렌체 병으로 증류액이 흘러내렸다. 증류액은 처음에는 묽고 흐릿한 수프처럼 보잘것없어 보였다.



그리고 골똘히 고안해 낸 어떤 도구를 이용해 물질로부터 향기의 영혼을 빼앗는 이 과정에서였다.

그르누이는 이 과정에 매혹되었다. 그가 인생에서 뭔가 감동이라는 것을 (물론 그 감동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고 감추어진 채 차갑게 타올랐다.) 맛본 적이 있다면 바로 불과 물과 수증기, 그리고 골똘히 고안해 낸 어떤 도구를 이용해 물질로부터 향기의 영혼을 빼앗는 이 과정에서였다.

 그르누이는 보통 사람들이라면 전혀 맡을 수 없는 유리 점토질의 차가운 향기를 얻어 내기 위해 유리를 증류해 보았다. 그는 창유리와 병유리를 구해다가 크게, 작게, 혹은 파편이나 가루 상태로 만들어 실험을 거듭해 보았지만 전혀 성과가 없었다.

 


자신의 실패를 분명하게 깨닫자 그는 실험을 중단했고, 목숨이 위태로울 정도로 심하게 앓았다

그는 각각의 독특한 냄새를 추출해 낼 수 있으리라고 믿었다. 증류라는 것이 금방 사라지는 물질과 비교적 지속적인 물질이 혼합되어 있는 경우에 단지 그것들을 분리시키는 방법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휘발성의 기름이 없는 물질의 경우에는 증류법은 아무 의미도 없었다. 그는 단 한 방울의 구체적인 냄새 에센스도 퍼 올리지 못했다. 자신의 실패를 분명하게 깨닫자 그는 실험을 중단했고, 목숨이 위태로울 정도로 심하게 앓았다.

 향수 제조자 발디니의 도제로 들어가게 된 그르누이는 천부적인 후각과 재능으로 획기적인 최고의 향수를 개발해낸다. 더불어 향수의 에센스를 얻는 과정인 "증류 방식"에 전문가가 되어 다양한 물질 유리나 돌맹이 흙따위로 향수를 만들어보지만 실패를 깨닫고 고열에 시달리며 죽을병에 걸리고 만다. 증류방법이 아닌 "냉침법"이라는 방식의 향수제조 방법을 들은 그르누이는 향수의 고장인 "그라스"로 떠나게 된다.  사람의 체취를 향기를 만들어보려고 하지만 실패하고 만다.

그녀로 하여금 여러 종류의 유지와 올리브에 적신 헝겊 조각을 맨살 위에 하루 종일 붙이고 다니도록 한 것이다.


겨울 동안에 그르누이는 실험을 하나 더 했다. 도시를 떠돌아다니는 어떤 벙어리 여자에게 1프랑을 주고 그녀로 하여금 여러 종류의 유지와 올리브에 적신 헝겊 조각을 맨살 위에 하루 종일 붙이고 다니도록 한 것이다. 그 결과 양의 신장에서 나온 유지, 여러 번 여과한 돼지기름과 쇠기름을 2대 5대 3의 비율로 섞은 후 올리브 기름을 약간 첨가하면 그것이 인간의 냄새를 빨아들이는 데 가장 적합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과연 주인냄새를 맡은 애완묘가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소설 속에선 벙어리로 묘사되었으나 영화에서는 창녀로 묘사되어있다. 창녀를 강제로 살인하여 향기를 체취하여 그녀의 애완견에게 맡게하니, 과연 주인냄새를 맡은 애완묘가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그르누이는 기름을 통해 체취를 얻는 방법의 성공을 인지한다.



열다섯살 난 소녀가 벌거벗은 시체로 발견 되었다. 소녀는 뒷머리를 몽둥이로 맞아 살해되어 있었다.

그해 5월 그라스와 그라스 동쪽의 작은 마을 오피오 중간 지점에 위치한 어느 장미 화원에서 열다섯살 난 소녀가 벌거벗은 시체로 발견 되었다. 소녀는 뒷머리를 몽둥이로 맞아 살해되어 있었다. 시체를 발견한 농부는 그 소름 끼치는 모습에 너무나 당황한 나머지 하마터면 자기가 의심을 살 뻔 했다. 왜냐하면 경찰관에서 떨리는 목소리로 신고한 농부가 그렇게 끔찍스러운 광경은 처음이라고 말을 한다는 것이 그토록 예쁜 모습은 아직 한 번도 본 적이 없다고 말을 했기 때문이다.



윤기 있는 검은색 머리카락이 스쳐 지나간 그녀의 납작해진 얼굴은 아직도 그 섬세한 윤곽과 신비스러움을 지니고 있었다. 그런데 머리카락이 남아있지 않았다. 살인자가 그녀의 옷과 함께 머리카락도 잘라서 가져가 버린 것이다.


로르는 바로 그가 짓고자하는 건축물의 맨 마지막 마감재가 아닐까?

리시는 8월과 9월에 살해된 몇몇 소녀를 본 적이 있었다. 그때 그는 놀란 것은 물론이고, 그 희생자들에게 매혹을 느낀 것도 사실이다. 살인자가 그의 눈을 뜨게 해 주었던 것이다. 살인자는 아주 뛰어난 심미안을 갖고 있는 데다 체계적이었다. 물론 리시는 살인자가 희생자들로부터 얻으려던 것이 <무엇인지>는 몰랐다. 왜냐하면 희생자들의 가장 좋은 점, 즉 아름다움이나 청춘의 매력은 살인자가 빼앗아 갈 수 없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혹시 그걸 가져갈 수가 있었던 것일까?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리시는 살인자가 정신 파탄자가 아니라 극히 신중한 수집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로르는 바로 그가 짓고자하는 건축물의 맨 마지막 마감재가 아닐까? 만약 리시 자신이 살인마였고 그 살인마와 똑같은 광기에 사로잡혀 있다면 그 자신도 지금까지 살인자가 걸어온 행적을 그대로 따랏을 것이다. 그리고 그 살인마처럼 비할 데 없이 아름다운 로르의 살인을 자신의 광기 어린 작품의 절정으로 삼았을 것이 틀림없었다.


즉 아름다움이나 청춘의 매력은 살인자가 빼앗아 갈 수 없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혹시 그걸 가져갈 수가 있었던 것일까?

그르누이가 마지막으로 겨냥하고 있는 소녀는 바로 그라스의 리시의 딸 로르였다. 리시는 살인범의 은밀한 의중을 알아차리고, 치밀하게 로르를 옮긴다.



그르누이는 기분이 아주 좋은 상태였다. 그라스에서의 생활이 끝나 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승리의 순간이 목전에 다가와 있었다. 그의 숙소인 오두막에는 스물 네 개의 작은 향수병에 담긴 스물 네 명의 소녀의 체취가 솜으로 채워 놓은 상자에 담겨 있었다. 그르누이가 지난해에 차가운 유지와 침지법을 이용해 소녀들의 육체와 머리카락, 그리고 옷에서 얻어 낸 귀하디 귀한 에센스들이었다. 스물다섯 번 째의 에센스, 가장 귀하고 중요한 그 에센스를 그르누이는 오늘 가져올 생각이었다.
 숨을 한 번 들이마시는 순간 벌써 그는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수천 가지 냄새의 실로 짜인 베일이라고 할 수 있는 향기의 옷에서 황금색 실이 빠져 있었던 것이다. 지난 몇 주 동안 이 향기의 실은 점점 진해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오두막 근처에서도 그 향기를 분명히 맡을 수 있을 정도였었다. 그런데 지금 그 향기의 실이 사라지고 없었다. 그르누이는 너무 놀란 나머지 몸이 마비될 정도였다.

머리카락 내음이 진하게 풍겨왔다. 몽둥이로 뒷머리를 내리치기에 딱 좋은 자세였다.

그녀가 엎드린 자세로 누워 있었기 때문에 머리카락 내음이 진하게 풍겨왔다. 몽둥이로 뒷머리를 내리치기에 딱 좋은 자세였다. 몽둥이로 내리치는 소리가 둔탁하게 울렸다. 방은 다시 조용해졌다. 그는 가위로 재빨리 로르의 잠옷을 잘라 내고 포마드를 바른 수건을 그녀의 벌거벗은 몸뚱어리 위에 덮었다. 그리고는 그녀를 들어 올려 수건을 밑으로 집어 넣은 후 롤빵을 만들듯이 끝이 겹쳐지도록 발끝에서 이마까지 둘둘 말았다.





비로소 로르는 정말로 죽은 것이었다. 그녀는 시들어 떨어진 꽃잎처럼 창백하게 축 늘어져 있었다.

그는 발을 옆으로 구부려 로르의 발을 살짝 건드려 보았다. 물론 진짜 그녀의 발이 아니라 그 발을 싸고 있는 수건 말이다. 그 수건에 바른 얇은 유지층이 그녀의 달콤한 향기를 빨아들이고 있었다.
 그는 다시 한 번 속옷으로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깨끗이 문질러 훔쳐 냈다. 그러자 땀구멍에 막혀 있던 지방질까지 다 묻어 나왔고 그와 함께 그녀의 마지막 솜털, 마지막 향기 조각까지 다 빠져나왔다. 이제야 비로소 로르는 정말로 죽은 것이었다. 그녀는 시들어 떨어진 꽃잎처럼 창백하게 축 늘어져 있었다.


사형 집행인 조수들과 목수의 조수가 손을 움직일 때마다 사람들은 박수로 화답하였다. 정말로 본격적인 함성이 터져나왔다.

 로르의 체취로 마지막 향수로 만드는 데 성공할 때, 그르누이의 오두막에서 살인을 당한 피해자들의 옷과 머리카락이 대량 발견되었으며, 살인자 그르누이는 그 즉시 체포 된다. 

 사형 집행은 오후 5시로 예정 되어 있었다.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들은 나무로 만든 X자형 십자가를 처형대 쪽으로 날라왔다. 그리고는 네 개의 무거운 교각을 받침대로 해서 그 십자가를 적당한 높이로 세워 놓았다. 사형 집행인 조수들과 목수의 조수가 손을 움직일 때마다 사람들은 박수로 화답하였다. 정말로 본격적인 함성이 터져나왔다.



모든 여자, 모든 남자가 다 그를 사랑했다.

그때 기적이 일어났다. 만여 명의 사람이 한순간에 갑자기 푸른 옷을 입고 마차에서 막 내려서는 작은 남자는 절대 <살인마>일 리가 없다는 확고한 믿음에 사로잡힌 일이었다. 남녀노소 모두 마찬가지였다. 마치 연인의 매력에 흠뻑 빠진 어린 소녀처럼 그들 모두 마음이 약해졌던 것이다. 이제 사람들은 순수한 액체 상태였다. 느낄 수 있는 것이라고는 오직 자신들의 내면에서 불안정하게 동요하고 있는 심장뿐이었다. 모든 여자, 모든 남자가 다 그를 사랑했다.


살아생전에는 결코 이 죄 없는 작은 남자에게 쇠몽둥이를 내리칠 힘이 생길 것 같지 않았다.


가장 혐오스러운 살인마에 대한 사형 집행은 기원전 2세기 이래로 이 세상에서 벌어진 가장 대규모의 환락의 향연으로 번했다.

그들은 모두 그의 손길이 자신의 가장 예민한 곳, 가장 민감한 성감대를 어루만지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마치 손이 만 개라도 되는 양 그는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사람 하나하나의 국부에 손을 뻗어 여자든 남자든 그들이 은밀한 환상속에서 열렬하게 갈망해 온 그대로 그들을 애무 해 주었다.
 그로 인해 예정되어 있던 가장 혐오스러운 살인마에 대한 사형 집행은 기원전 2세기 이래로 이 세상에서 벌어진 가장 대규모의 환락의 향연으로 번했다. 블라우스를 찢어 버린 정숙한 여인네들이 히스테릭한 비명을 질러 대며 젖가슴을 드러낸 채 땅바닥에 드러누워 치마를 훌렁 걷어 올렸다. 그리고는 숨을 헐떡이며 아무 곳에나 쓰러져 그 자리에서 사랑을 나눴다. 도저히 그럴 수 없는 장소에서, 서로 어울리지 않는 사람들이 하나가 되었다. 지옥이 따로 없었다.

그르누이는 자신의 일생에서 가장 위대한 승리를 맛보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이 승리가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자신은 단 한순간도 그 승리를 즐길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 순간에 벌써 그는 향수가 저항할 수 없는 영향력으로 바람처럼 빠르게 퍼지면서 주변 사람들을 사로잡아 가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바로 이 순간에 그의 내면에서 인간에 대한 모든 역겨움이 되살아나 승리를 철저하게 무너뜨려 버렸다.
 그는 인생에서 <단 한번만이라도> 자신을 표현하고 싶었다. 단 한 번만이라도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사람이 되어 자신의 내면을 드러내고 싶었다. 그들이 자신들의 사랑과 바보같은 존경심을 보여 주듯이 그 역시 자신의 증오를 보여 주고 싶었다. 단 한번만, 꼭 한번만이라도 그의 진짜 모습을 그대로 인정받고 싶었다.

강물마저 흐르기를 멈춘 것처럼 악취를 풍기고 있었다. 그르누이가 태어나던 그날과 꼭 같았다.

이제 그는 생각을 중단했다. 1967년 6월 25일 새벽 6시에 그는 생자크 거리를 지나가고 있었다. 푹푹 찌는 날씨였다. 그해의 가장 무더운 날이었다. 마치 수천 개의 종기가 터진 거서럼 수천 가지 냄새와 악취들이 거리를 꽉 메우고 있었다. 고기와 생선은 부패하기 시작했다. 강물마저 흐르기를 멈춘 것처럼 악취를 풍기고 있었다. 그르누이가 태어나던 그날과 꼭 같았다.

갑자기 푸른 옷을 입은 남자가 작은 병을 손에 들고 거기에 서 있었던 것이다.
그 남자는 작은 병의 내용물을 이리저리 흩뿌리기 시작했고, 그러자 갑자기 환한 불길에 휩싸인 것처럼 아름다움이 퍼져 나갔다.

그가 병마개를 열었다. 누군가 거기에 서서 병마개를 여는 것, 그것이 모든 사람들이 기억할 수 있는 첫 순간이었다. 그 남자는 작은 병의 내용물을 이리저리 흩뿌리기 시작했고, 그러자 갑자기 환한 불길에 휩싸인 것처럼 아름다움이 퍼져 나갔다.

한순간 그들은 외경심과 놀라움으로 주춤거렸다. 그러나 그순간 벌써 그들은 뒷걸음질이 아니라 그를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이미 그 의지는 물결에 의해 허물어졌고 오히려 그를 향해 가까이, 더 가까이 가고자 할 뿐이었다.

외경심이 갈망으로, 놀라움이 감격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그들은 이 인간 천사에게 이끌리는 것을 느꼈다. 그로부터 아주 강력한 흡인력이 퍼지고 있었다. 그 누구도 막을 수 없고, 또 막고 싶지도 않은 힘찬 물결이었다. 이미 그 의지는 물결에 의해 허물어졌고 오히려 그를 향해 가까이, 더 가까이 가고자 할 뿐이었다.

천사의 몸뚱이는 삽시간에 서른 조각으로 잘렸다. 반 시간쯤 지나가 장 바티스트 그르누이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그의 주위로 이삼십 명의 원이 만들어졌다. 그 원이 점점 좁아지고 있었다. 곧 원이 더이상 좁혀질 자리가 없었다. 모두들 그 한가운데로 가까이 다가가고자 애를 썼다. 그러자 순식간에 저지선이 무너지면서 원이 허물어져 버렸다. 다들 그를 만지고 싶어, 그의 일부분이라도 갖고 싶어 안달이었다. 옷이 찢어졌고 머리카락과 피부가 떨어져 나갔으며 몸뚱어리가 물어 뜯겼다.
 그러나 인간의 육체는 아주 질겨서 쉽게 뜯어지지가 않았다. 곧 여기저기서 단검이 번쩍이거나 그의 몸을 찔러대기 시작했다. 천사의 몸뚱이는 삽시간에 서른 조각으로 잘렸다. 반 시간쯤 지나가 장 바티스트 그르누이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

여기 있는 사람들은 남자나 여자나 한 번쯤은 살인이나 그보다는 작은 범죄를 저질러 본 경험들이 있었다. 하지만 사람을 먹어 치우다니? 그러나 당혹스러운 것은 사실이었지만 조금도 죄책감이 들지 않는 것에 그들은 또 한 번 놀라고 있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뱃속이 약간 더부룩하긴 했지만 마음은 날아갈 듯이 가벼웠다. 이상할 정도로 당당한 기분이었다. 그들이 사랑에서 비롯된 행동을 하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던 것이다.






소설이나 영화속에서 그르누이는 지독한 '진드기'로 표현된다. 생명을 갈망하는 진득하고 끈질긴 진드기, 천부적인 재능을 지녔지만 정작 본인에게 아무 냄새가 없다. 그저 사람을 갈망하는 어느 괴물의 처절한 이야기와도 맞먹는다. 스물 다섯명의 여자에게서 얻은 향수들을 조합하여 만들어낸 마지막 향수는 결국, 자신에게 들이부음으로써 자살을 맞게 되는데 마지막까지 처절했던 건 그르누이가 그토록 원했던 '사랑에서 비롯된 행동'을 할 수 없었으며 결국 주체가 될 수 없었다는 사실이다. 이 끔찍한 결말에서도 확실하게 보여주는 것은 소설속 그르누이의 절절한 독백이다. (그는 인생에서 <단 한번만이라도> 자신을 표현하고 싶었다. 단 한 번만이라도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사람이 되어 자신의 내면을 드러내고 싶었다. 그들이 자신들의 사랑과 바보같은 존경심을 보여 주듯이 그 역시 자신의 증오를 보여 주고 싶었다. 단 한번만, 꼭 한번만이라도 그의 진짜 모습을 그대로 인정받고 싶었다. )

  소설 속에서 등장하는 당연한 향기와 체취, 인간 본연을 가장 잘 드러내는 소재이며 그르누이의 갈망과 집착에 아주 타당한 개연성을 보여주었다. 소설과 영화를 함께 보는 것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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