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덜터덜 오래간만에 일찍 집으로 돌아온 도시쥐는 출출한 배를 채우고자 라면을 끓였다. 시골쥐의 연락이 종종 울리던 핸드폰은 한 시간 반이 지나도록 울리지 않았다. 라면을 다 비우고 나서도 핸드폰은 잠잠했다. 도시쥐는 부른 배를 매만지다 신경질적으로 선풍기 바람을 강으로 올린다. 그리고 침대에 골몰히 앉아, 지금쯤 시골쥐가 재밌게 즐기고 있을 게임의 위력을 새삼 깨닫는다.
시골쥐는 게임을 좋아했지만, 도시쥐의 눈치를 슬몃 살피며 게임에 대한 욕망을 조금씩 잠재웠었다. 시골쥐는 도시쥐를 위해 게임이 재미없다고 말했지만, 그건 게임을 좋아하는 시골쥐 동료들에 대한 기만이자 무례였다. 더불어 이번 게임은 깐깐한 도시쥐가 먼저 제안했기 때문에 더욱 포기할 수 없었다. 시골쥐는 저도 모르게 올라간 광대를 잠재우며 최대한 티 나지 않게 에두르며 겨우 이 자리에 앉은 것이었다. 벌써 한 시간이 넘게 흘렀지만, 너무도 흥미진진하여 지금 막 시작한것처럼 긴장감이 줄어들지 않았다. 시골쥐가 지금 행하고 있는 게임은 혀에 살짝 대었다가 사라져버린 사탕의 달콤함처럼 감미로웠다. 끝끝내 아쉽고 지속적으로 간절했던 게임을 조금 맛보니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푹 빠져 버렸다. 그건 어쩔 수 없는 결단이자 장면이었다. 게다가 허탕만 치던 지난날과 달리 이날따라 시골쥐는 승리를 지속적으로 거머쥐었다. 시골쥐의 사정을 알리 없는 도시쥐는 침대에 가만히 누워 회색빛 천장만을 바라봤다. 이 참에 시골쥐가 하는 게임이란 것을 시작 해 볼까 마음먹다가 이내 귀찮음에 곧 포기해버렸다.
시골쥐는 농약에 내성이 있었다. 도시쥐는 당연하게 쥐약에 내성이 있었다. 농약과 쥐약은 독극물이라는 점이 공통점이었지만, 명확하게 다른 물질이었다. 전자는 인간의 풍요로움을 위한 수단제였고, 후자는 인간의 청결을 위한 선택적인 수단제였다. 시골쥐와 도시쥐는 그 독극물을 단 한번도 먹어본 적도, 맛 본 적도 없었다. 다만 그네들의 조상들이 그 약을 먹고 수도 없이 죽어나가는 섬뜩한 장면을 알음알음 목격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죽어가는 마릿수가 줄어들었다. 홍삼과 인삼, 인간들이 내로라하는 건강식품들을 야금야금 긁어먹은 쥐들은 독극물을 먹어도 쉽게 죽지 않았다. 치료를 받거나, 한 달가량 푹 쉬어주는 것만으로 금방 회복할 수 있었다. '독극물의 내성'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바로 그런 것이었다.
한 번도 먹어보지 못했던 농약과 쥐약은 시골쥐와 도시쥐의 상상속에서 거대한 괴물처럼 그 두각을 은연중에 드러내곤 했다. 가끔씩 지나가는 모자쥐가, "너 자꾸 그러면 농약 묻힌 소세지를 먹을 줄 알어." 라고 협박하듯 외치면, 아기쥐는 질겁하여 엄마쥐의 말을 철썩처럼 들었다. 그건 마치, 곶감을 무서워하는 인간들의 오래된 전래동화와 흡사한 장면이었다. 곶감과 상응하는 독극물은 감히 농담으로 올릴 수 없는 소재임에도 많은 쥐들이 그것을 마치 소문처럼, 장난처럼 흘렸다. 도시쥐는 시골쥐가 즐겨하는 게임을 그 독극물과 흡사한 어떤 것으로 여겼다. 인간들에게 해가되는 담배와 술처럼, 쥐들이 행하는 게임도 그와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게임은 독극물이야.' 선풍기 바람에 빳빳한 수염을 흩날리며 도시쥐가 읊조렸지만, 시골쥐는 들을 수 없는 음성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