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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족시간과 후쿠시마

by 발렌콩

가끔씩 무슨 짓을 해도 잠이 오지 않는 날이 있는데, 바로 지금이 그 시점인 것 같다. 오랜만에 샷을 추가한 아메리카노를 마셔서인지, 오랜만에 오래 걸어서인건지, 최근 벌어진 피곤함에 관련된 감정 기복인건지, 원인을 명확히 알 수는 없다. 작년 일본여행에서 구입해온 휴족시간을 제대로 사용해보지 못 했다가 허벅지와 종아리가 너무도 욱씬 거려서 세 장을 꺼내서 붙여보곤 그 효과에 새삼 감탄하며 발라드를 들으며 일기를 작성하는 중이다. 꽁이는 더위에 지쳐, 창가 근처에 몸을 옮겨 놓은 채이다. 긴 꼬리마저 창문가에 걸쳐놓은 채로, 그나마 시원한 그곳에서 축 늘어진채로 엎드려 있다. 두시간이 지나도 하체에 붙은 파스 형태의 스티커는 떨어지지 않고, 욱씬거리는 그 부위에서 시원하게 녹아내리는 느낌이다. 자극으로 인해 아픔이 조금씩 미미해지는 것도 같다. 일본에서 왕창 사왔던 아이봉도, 휴족시간도, 전부 지인들에게 선물로만 뿌리고 내 스스로는 정작 제대로 사용해 본 적이 손에 꼽힌다. 직구로도 쉽게 구입할 수 있고, 몇 번 더 일본 여행을 계획 할 수도 있다. 별거 아님에도 갑작스럽게 어떤 물건을 만지고 사용하게 될 때에는 불현듯이 그 시절을 떠올릴수 밖에 없다. 이건 내가 의도한 바도 아니며, 그 물건들에 스민 기억들이 반사적으로 떠올려지는 것 뿐이다.

나에게 남은 시간이 아주 많은 듯 하면서도, 아무런 징조도 없이 제 멋대로 흐르는 것 같다. 후쿠시마에 몰래 찾아간 남성의 근황을 알리는 게시글을 접하곤, 후쿠시마 근처를 지나는 기차 안에서 후쿠시마로 향하려는 백인 남성을 마주친 이야기를 떠올려보곤 한다. 영어로 간략하게 인사를 나누고, 명복을 빈다고 이야기하고 헤어졌다던 그 백인 남성은 어떻게 되었는가. 사실 흑인이었는지, 백인이었는지 기억나지는 않는다. 다만, 그 행색이 조금은 남루했고 방사능의 땅이라고 굳어진 후쿠시마로 향할건데, 일본의 허가를 못 받기 때문에 무단의 방법으로 후쿠시마 근처에서 횡단 하겠다고 치기어린 대답을 했었던 것 같기도. 그는 휴학한 학생인 것 같기도. 다른 사람들은 입버릇처럼 방사능이 무섭다고 말했지만, 사실 방사능 '따위'라고 표현 할 정도로 아무렇지도 않다는 것을 본인 입으로 입증하고 싶다는 것인지도. 이런 이야기들은 의미가 없는 것들이지만 가끔씩 정말 의미없는 기억들도 눈 앞의 사물처럼 또렷해질 때가 있는 법이라고. 그건 정말 불가항력적이고 내 멋대로 쉬어지는 숨처럼 어쩔 수 없는거라고. 이제 막 3일차, 잠을 자야 하는데 몇년만에 부엉이 생활로 돌아가버리는 것이 아닌지 조금 우려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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