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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렌콩 Sep 06. 2018

1995년 서울, 삼풍 : 삼풍백화점 참사 기록

실제 생존자와 사망자의 가족들의 진짜 이야기를 다룬 실제 기록







1995년 서울, 삼풍              

저자 서울문화재단,메모리 인 서울프로젝트 기억수집가

출판 동아시아

발매 2016.04.29.

1995년 서울,
삼풍 [삼풍백화점 참사 기록]







사회적 기억을 위한 삼풍 백화점 참사 기록, 위 책은 삼풍백화점을 다룬 소설이 아니라, 실제 생존자와 사망자의 가족들의 진짜 이야기를 다룬 실제 기록이다. 책 표지의 앞면에 세로로 새겨진 문장 그대로 사회적인 기억을 위한 실제의 생생한 목소리를 담은 기록, 3년이 지난 이제서야 대대적인 유해 발굴 작업과 인양을 마친 지금의 세월호의 기억과도 흡사한, 그 예리한 단면과도 똑같은 기억이다.


 때문에 이렇게 감상문, 아니 이런 줄글을 작성하는 것도 무척 조심스럽다. 다만, 위 책에서 기록된 실질적인 잔상과 기록, 이미 벌어진 인재와 사고들을 최대한 양질의 효과를 낼 수 있도록, 한명의 생명이라도 살릴 수 있도록 부재된 컨트롤 타워의 기반을 명확하게 마련하는 것, 그런 점들을 생각하기 위하여 이렇게 미욱하고 미흡한 글을 작성 해 본다.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의의 :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는 1995년 6월 29일오후 5시 57분경 서울특별시 서초구 서초동에 있던 삼풍백화점이 붕괴된 사건으로, 건물이 무너지면서 1,445명의 종업원과 고객들이 다치거나 죽었으며, 주변 삼풍아파트, 서울고등법원, 우면로 등으로 파편이 튀어 주변을 지나던 행인 중에 부상자가 속출해 수많은 재산상, 인명상 피해를 끼쳤다. <출처 : 위키>


https://ko.wikipedia.org/wiki/%EC%82%BC%ED%92%8D%EB%B0%B1%ED%99%94%EC%A0%90_%EB%B6%95%EA%B4%B4_%EC%82%AC%EA%B3%A0





삼풍백화점에 대한 나의 기억

삼풍백화점이 95년도에 무너졌으니, 그 당시 나의 나이는 약 3-4살 언저리였다. 기억은 커녕 그 분위기조차 느껴보지 못했던 나이였지만 TV나 각종 매개체에서 간간이 등장하는 삼풍백화점의 이야기나, 도덕 교과서에 등장한 삼풍백화점의 사례는 사실상 내게 크게 와닿지는 않았다.

다만, 위 책에서도 수많은 이들이 누누이 반복했던 것처럼 "어떻게 백화점이 무너질 수 있지? 어떻게 저렇게 큰 건물이 무너졌을까," 궁금증과 의문을 품었다.

6.25 전쟁 이후로 502명, 최다의 사상자를 낸 안타까운 위 인재 사고는 사진과 글로 접하기에도 매우 힘들 정도였다.







SBS 보도국 기자 성회용씨 : 도둑질과 취재 경쟁 사이에서


: 구조 현장 통제도 안 되는 상황에서 혼란이 극심했어요. 그런데 사실 기자들뿐만 아니라 사기꾼들도 많이 왔습니다. 제가 볼 때 자원봉사들 중 3분의 1가량은 절도 목적으로 합류한 사람들이었어요. 삼풍이 워낙 고급 백화점이니까요. 실제로 당시 기록을 보면 자원봉사자로 위장한 절도범들이 서초경찰서에 체포돼 현사 처벌받은 사례도 있습니다.

피해 보상과 회장의 재산 : 서울시 삼풍백화점 붕고사고 보상담당자 우대영 씨


: 건물 피해 보상액이 얼마일까, 저희가 그 당시 3,600억 원을 추정했어요. 이준 회장 재산은 어느정도일가, 추정을 하니 약 4,200억 정도 였어요. 보상금을 마련하려면 이준 회장이 재산을 매각해 현금화를 시켜야 했거든요. 제가 이준 회장 재산을 서울시로 가져오는 작업을 했죠. 그래서 채무보증신청서, 확약서, 재산 이관하는 약정서, 이런 서류를 챙기고 재산 처분 위임각서를 받으러 이준 회장에게 갔어요. 의왕 구치소로.
이준 회장을 불러내 설명했는데, 이 양반이 안 찍어주는 거예요. 내가 어떻게 일군 재산인데 그렇게 처분하겠냐, 반발하는 거죠. 저는 '그럼 당신 건물에서 죽은 502명의 원혼과 수 백명의 부상자분들은 어떻게 책임질 거냐'고 따졌죠. 처음은 실패하고 다음에 가서 전부 받았어요. 모든 걸 다 위임받아 우리가 처분 할 수 있도록 법적 조치를 취했죠. 재산 처분이 금방 되는 게 아니어서 당장 집행할 보상금을 위해 서울시가 융자를 받았어요. 그 융자금 4,000억 원 내에서 보상금을 집행해야 했죠. 유전자 감식 등으로 사망자 502명을 확정했고, 부상자는 병원에 입원한 사람, 통원 치료 받는 사람 등 모두 937명이었어요.





실제 삼풍백화점 참사를 경험했던 이들이 기억을 살려 생생한 인터뷰로 순차적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그 중에서는 결혼식을 앞둔 연인, 결혼하여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지 열흘도 안되어서 사고를 당한 여동생, 생전 쇼핑을 하지 않았음에도 물건을 구입하러 삼풍에서 목숨을 잃은 남편, 등등 어디에서나 흔하게 접할 수 있는 우리네 가족의 모습들이 나온다. 그래서 더 읽기가 힘들었다. 무너진 백화점의 파편에 처참하게 끼인 시신을 눈앞에 보면서도 꺼낼 수가 없었던, 위치상 시신 발굴 작업을 진행시 붕괴 위험이 높아 그저 시신 위에 천자락을 덮어 놓을 수 밖에 없었다는 이야기,...


텍스트로 읽기 힘든 대목들이 자주 등장했다. 때문에 위 책을 읽는 동안 회사에서 일하던 도중 복도에서 무거운 택배 박스가 떨어지는 소리에도 나 홀로 소릴 지르며 깜짝 놀라곤 했다. 그때 함께 근무하는 실장님과 삼풍백화점에 대한 이야기를 살짝 나누기도 했다.

그 당시 실장님은 고등학생의 나이였고, 눈 앞에서 벌어진 실제 사고에 너무도 놀랐다고 했다. 참사가 벌어진 참혹한 현장에서 절도가  판을 쳤다니, 실제로 시신이 끼고 있는 반지를 가져가기 위해 손가락을 잘라갔다고도 한다. 아무튼 삼풍 참사가 지금의 세월호와 흡사했던지 살짝 여쭈니, 참사 규모는 차치하고, 세월호의 사고가 더 크게 와닿았다고 답해주셨다. 90년대는 기껏 삐삐 세대였고 인터넷이 발달되지 않았기에 사고에 대한 실질적인 소식은 TV,신문,라디오, 오프라인 매개체였다. 

다만, 세월호가 벌어진 현재는 수많은 SNS, 인터넷, 다양한 컨텐츠에서 사고의 모습을 더 쉽게 접했고, 바다속에 서서히 잠겨가는 뱃 머리의 실제 모습을 천천히 목격했다는 점에서 체감이 다를 거라고 설명 해 주셨다. 실제로 단원고 학생 전원이 구조되었다는 오보가 나기도 했고, 충분히 구할 수 있는 사고임에도, 인양할 수 있음에도 3년을 끌어왔던 이 비극적인 현실도 삼풍 못지 않게 안타까웠노라고.







위 책을 읽는 내내 지독히 우울했다. 책장 넘기기가 힘들어서 간신히 다 읽었을 때에도 며칠간은 그 여운에 스스로의 정적을 느껴야만 했다. 삼풍에 관련된 타 웹툰이나 소설책을 찾아보고, 구글링을 하고, 현재 신분당선 양재 시민의 숲에 건설된 삼풍백화점 추모, 위령비를 찾아보기도 했다. (가까운 곳에 위치했었는데 한번도 가보질 못했기에 조만간 찾아 갈 예정이다. )


생존자들은, 삼풍으로 소중한 가족을 잃은 유가족들도, 삼풍을 견딘 모든 이들이 겪을 트라우마와 상처들, 삼풍백화점이라는 비극적인 참사가 드리워진 그 모습은 온전치 못했고, 20년이 더 흐른 지금조차도 그 생생한 기억에 겨우 눈물을 묻을 뿐이다.

이 책을 추천하지만 완독까지는 조금 힘들거라고 생각한다. 훼손된 시신과 작은 손가락, 발가락, 파편들조차도 찾지 못해 무너진 건물의 잔해를 내다버린 난지도에서 잔해 더미를 뒤지는 모습들도. 읽는 내내 솔직히 너무 힘들었다. 그래도 이렇게 책으로 기록된 의의는 아주 깊다. 이제 다음 책을 읽을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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