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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7의 고백 - 안보윤

손으로 꼭꼭 눌러 접은 슬픔과 죽음의 기억처럼 단단한 것들

by 발렌콩

소년7의 고백 - 안보윤


“손으로 꼭꼭 눌러 접은 슬픔과 죽음의 기억처럼 단단한 것들, 상실과 분노와 공포처럼 흉포하고 허기진 것들”(128쪽)을 적어나가는 일그러진 남자의 모습은 『소년7의 고백』을 쓴 안보윤의 모습과 겹친다. 자신과 타인의 아픔을 손목에 난 자국처럼 생생히 느끼고, 우리에게 일어난 일들을 잊지 않으려 다짐하고, 일그러진 세계를 고발함으로써만 우리는 불행의 순환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작가 안보윤이 『소년7의 고백』으로 또하나의 움직임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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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7의 고백

저자 : 안보윤

출판 : 문학동네

발매 : 2018.03.12.



안보윤 작가의
<소년7의 고백>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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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그늘에 가려진 사회적 약자와 일상화된 불의에 무감해진 현대인의 삶을 예민하고 집요하게 포착해온 작가, 안보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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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안보윤 작가님의 소설을,
그리고 작가 안보윤을 사랑합니다.

본격적인 책 소개에 앞서 지극히 개인적 견해와 단상 먼저 부려쓰는 이유는, 그니까... 제가 그만큼 사랑하니까 그런거예요.

27살 첫 등단작품인 첫장편소설 <악어떼가 나왔다>는 정말로 깜짝 놀랄만큼의 어떤 '강렬함'이었다. 어쩜 이름도 안보윤일까- 선택하는 소재나 문장들이 한구절 한구절 아주 강렬하게 박힌다.

대학에서 안보윤 소설가에게 소설을 배웠다.
소설의 정갈하고 촘촘한 세계처럼, 똑부러지게 가르쳐주고 설명해주던 합평의 시간들도, 몇 년이 흐른 지금에서도 생생하기만 하다. 안보윤 작가님의 소설책은 거의 전부 구입했다. 지금도 책장에 가지런히 꽂혀진 소중한 책들. 개중에선 내 이름 석자가 적힌 친필 사인까지 받았다.

이북 출간까지는 꽤 오래 걸리는 시스템인데도, 이번 안보윤 작가의 신작 <소년 7의 고백>은 바로 이북으로 출간되었다. 메일링을 확인하자마자 바로 구입했고 단숨에 읽었다. (아니, 사실 단숨에 읽어내리고 싶었지만 그간 일이 바빴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의 처참한 인생들이 읽기만해도 고달파서 가끔 무심히 이북을 덮기도 했었더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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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7의 고백' 목차

-소년7의 고백
-포스트잇
-불행한 사람들
-일그러진 남자
-여진
-이형의 계절
-때로는 아무것도
-순환의 법칙
-어느 연극배우의 고백

총 8편의 목차로 이뤄진 이번 소설 중 가장 좋았던 단편은 바로 <일그러진 남자 /여진/순환의 법칙>이다. 이 세개중에서도 제일제일 좋았던 단편은 바로 '순환의 법칙', 그리고 여진

하단, 단편 몇몇 개만 추려 줄거리만 간단히 적어본다.



취조실에서 내보내달라고 애원하던 소년은 어느새 구제불능 파렴치한 성폭행범으로 변모하는 내용 : 소년7의 고백

가난과 비참을 공유하던 친구에게 절교를 선언하는 내용 : 불행한 사람들

입양과 파양을 반복하던 엄마를 불안해하던 친딸 1은 마지막으로 입양된 동생이 꽤 오래 버티자 도벽이 있다는 거짓 소문을 내는 내용 : 이형의 계절

대구 지하철 참사로 여동생을 잃은 주인공이 지하철 방화범의 방화시도를 막아내려 온몸을 막아내지만 결국 자살하며 자기의 자식까지 물속으로 끌어내리려고했던, 불행의 근원이 새겨진 손목의 시곗줄을 상기하는 사람들의 고백들 : 일그러진 남자

무료 호텔 숙박에 당첨된 미주가 이상한 호텔에 머물면서 도운과의 과거를 상기, 라디오에서 흘러 나오는 염산테러로 아이를 잃은 사연을 통해 순환을 상기하는 이야기 : 순환의 법칙



소설 <여진>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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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뭘 하고 놀지. 소년이 묻자 소파에 배를 딱 붙이고 있던 소년의 누나가 몸을 일으켰다.

-도도두두 놀이를 하자.
-그게 뭔데?
-도도두두. 술래잡기 놀이.
소년의 누나가 재빨리 덧붙였다.
-도망치는 사람이 도도, 따라잡는 사람이 두두야.
-동물원 가고 싶어. 호랑이가 짖는 거 볼래.
-호랑이는 우는 거야. 어흥 하고.
-그럼 우는 거 볼래.
-동물원 호랑이는 안 울어, 바보야. 갇혀 있잖아.
-갇혀 있으면 안 울어?
-안 울어. 우리도 안 울잖아.

*

놀이의 규칙은 간단했다. 도망치는 사람은 도도도도, 앞꿈치만으로 땅을 디뎌 도망친다. 뒤쫒는 사람은 두두두두, 뒤꿈치만으로 땅을 디뎌 쫓아간다.
-이건 사실 무시무시한 놀이야. 저주 받았거든.
-저주?
-그래, 저주. 이건 무려 66년 전부터 유행했던 놀이인데, 지금까지 이 놀이를 하고 다리가 부러진 사람이 무려 육백 명이 넘는대. 학교에서 도도두두를 하면 선생님한테 끌려가서 엄처나게 혼나거든. 그게 다 저주 때문이야.
-학교에선 원래 술래잡기를 하면 안 돼.
- 그게 아냐, 바보야. 우리 학교에서도 몰래 하다가 저주받은 사람이 있어서 그래. 이건 비밀인데, 도도를 했던 5학년 언니 발가락이 7개나 부러졌대. 화장실도 못 가서 병원에 석 달이나 입원해 있었는데도 아직까지 절뚝거리면서 걷는대. 뛰는 건 절대 못하고 피구랑 뜀틀도 당연히 금지. 더 무시무시한, 두두를 했던 사람이야. 두두를 66번 하게 되면 틀림없이 인대인가 그게 끊어진대. 그러면 아예 걸어다닐 수가 없다는 거야. 병원에 몇 년을 있어도 안 낫는대. 무섭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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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여진'은 책 말미에 평론가가 부제로 삼았던 구절처럼 <'도도'와 '두두'의 세계>라는 제목을 차용했어도 참 좋았을 것 같다. 도도와 두두라는 보다 엽기적이고 기괴한 놀이로 벌어진 층간소음 살해사건의 단초가 되었고, 그 진동을 '여진'으로 표현 한 것도 참 좋았지만, 너무 중의적인 제목이라서 더 쉽고 기발하게 가기 위해선 <도도와 두두>도 완전 좋다. (마치, 이기호나 김영하 소설 제목처럼 말이지)


이번 소설은 사회적으로 실제 벌어졌던 사건들을 주 모티프로 다뤘다. 사실, 작가가 선택하기에 가장 쉬운 방법이기도 하지만 이미 뉴스로 다뤄진 내용을 소설로 쓰는 건 (개인적으론) 쥐약이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 잘 썼다.

안보윤 작가만이 지닌 기괴함과 히스테릭할 정도로 참담한 고어스러움, 공포를 여실하게 느낄 수 있다. 그리고 또 한번 느낀건, 안보윤 작가는 단편 보다도 장편의 호흡이 더 착 붙는다.

실제적 사건들을 내용 속에 자연스럽게 녹였고, 각 캐릭터들의 생생한 사연들도 잘 어우러졌다. 안보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대부분 결핍과 싸이코패스적인 감성들로 점철되어 있는데, 실제로 벌어졌던 사회적 사건들이 녹여있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즉, 우리네 살아가는 사회는 (정말 그지같게도) 소설 속 허구의 상상처럼 터무니없고, 극악무도한 사건들이 끊임없이 벌어지는 구조로 이미 변모해 버렸다. 묻지마 살인이 빈번하다. 납치,유기, 살해가 아주 당연한 사회가 되어버렸다. (슬프게도, 어이없게도, 안타깝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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