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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렌콩 Aug 24. 2018

소년7의 고백 - 안보윤

손으로 꼭꼭 눌러 접은 슬픔과 죽음의 기억처럼 단단한 것들

소년7의 고백 - 안보윤


“손으로 꼭꼭 눌러 접은 슬픔과 죽음의 기억처럼 단단한 것들, 상실과 분노와 공포처럼 흉포하고 허기진 것들”(128쪽)을 적어나가는 일그러진 남자의 모습은 『소년7의 고백』을 쓴 안보윤의 모습과 겹친다. 자신과 타인의 아픔을 손목에 난 자국처럼 생생히 느끼고, 우리에게 일어난 일들을 잊지 않으려 다짐하고, 일그러진 세계를 고발함으로써만 우리는 불행의 순환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작가 안보윤이 『소년7의 고백』으로 또하나의 움직임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소년7의 고백              

저자 :  안보윤

출판 : 문학동네

발매 : 2018.03.12.



안보윤 작가의 
<소년7의 고백>을 읽고



세계의 그늘에 가려진 사회적 약자와 일상화된 불의에 무감해진 현대인의 삶을 예민하고 집요하게 포착해온 작가, 안보윤










저는안보윤 작가님의 소설을,
그리고 작가 안보윤을 사랑합니다. 

본격적인 책 소개에 앞서 지극히 개인적 견해와 단상 먼저 부려쓰는 이유는, 그니까... 제가 그만큼 사랑하니까 그런거예요.

27살 첫 등단작품인 첫장편소설 <악어떼가 나왔다>는 정말로 깜짝 놀랄만큼의 어떤 '강렬함'이었다.
 어쩜 이름도 안보윤일까- 선택하는 소재나 문장들이 한구절 한구절 아주 강렬하게 박힌다. 

대학에서 안보윤 소설가에게 소설을 배웠다. 
소설의 정갈하고 촘촘한 세계처럼, 똑부러지게 가르쳐주고 설명해주던 합평의 시간들도, 몇 년이 흐른 지금에서도 생생하기만 하다.  
안보윤 작가님의 소설책은 거의 전부 구입했다. 지금도 책장에 가지런히 꽂혀진 소중한 책들. 개중에선 내 이름 석자가 적힌 친필 사인까지 받았다. 

이북 출간까지는 꽤 오래 걸리는 시스템인데도, 이번 안보윤 작가의 신작 <소년 7의 고백>은 바로 이북으로 출간되었다. 메일링을 확인하자마자 바로 구입했고 단숨에 읽었다. 
(아니, 사실 단숨에 읽어내리고 싶었지만 그간 일이 바빴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의 처참한 인생들이 읽기만해도 고달파서 가끔 무심히 이북을 덮기도 했었더랬다.)












'소년7의 고백' 목차

-소년7의 고백 
-포스트잇 
-불행한 사람들  
-일그러진 남자  
-여진
-이형의 계절
-때로는 아무것도
-순환의 법칙
-어느 연극배우의 고백


총 8편의 목차로 이뤄진 이번 소설 중 가장 좋았던 단편은 바로 <
일그러진 남자 /여진/순환의 법칙>이다. 이 세개중에서도 제일제일 좋았던 단편은 바로 '순환의 법칙', 그리고 여진

하단, 단편 몇몇 개만 추려 줄거리만 간단히 적어본다.



취조실에서 내보내달라고 애원하던 소년은 어느새 구제불능 파렴치한 성폭행범으로 변모하는 내용 : 소년7의 고백

가난과 비참을 공유하던 친구에게 절교를 선언하는 내용 : 
불행한 사람들

입양과 파양을 반복하던 엄마를 불안해하던 친딸 1은 마지막으로 입양된 동생이 꽤 오래 버티자 도벽이 있다는 거짓 소문을 내는 내용 : 
이형의 계절

대구 지하철 참사로 여동생을 잃은 주인공이 지하철 방화범의 방화시도를 막아내려 온몸을 막아내지만 결국 자살하며 자기의 자식까지 물속으로 끌어내리려고했던, 불행의 근원이 새겨진 손목의 시곗줄을 상기하는 사람들의 고백들 : 
일그러진 남자

무료 호텔 숙박에 당첨된 미주가 이상한 호텔에 머물면서 도운과의 과거를 상기, 라디오에서 흘러 나오는 염산테러로 아이를 잃은 사연을 통해 순환을 상기하는 이야기
 : 순환의 법칙



소설 <여진> 발췌



오늘은 뭘 하고 놀지. 소년이 묻자 소파에 배를 딱 붙이고 있던 소년의 누나가 몸을 일으켰다.

-도도두두 놀이를 하자.
-그게 뭔데?
-도도두두. 술래잡기 놀이.
소년의 누나가 재빨리 덧붙였다.

-도망치는 사람이 도도따라잡는 사람이 두두야.
-동물원 가고 싶어. 호랑이가 짖는 거 볼래.
-호랑이는 우는 거야. 어흥 하고.
-그럼 우는 거 볼래.
-동물원 호랑이는 안 울어, 바보야. 갇혀 있잖아.
-갇혀 있으면 안 울어?
-안 울어. 우리도 안 울잖아.

*

놀이의 규칙은 간단했다.
 도망치는 사람은 도도도도, 앞꿈치만으로 땅을 디뎌 도망친다. 뒤쫒는 사람은 두두두두, 뒤꿈치만으로 땅을 디뎌 쫓아간다.
-이건 사실 무시무시한 놀이야. 저주 받았거든.
-저주?
-그래, 저주. 이건 무려 66년 전부터 유행했던 놀이인데, 지금까지 이 놀이를 하고 다리가 부러진 사람이 무려 육백 명이 넘는대. 학교에서 도도두두를 하면 선생님한테 끌려가서 엄처나게 혼나거든. 그게 다 저주 때문이야.
-학교에선 원래 술래잡기를 하면 안 돼.
- 그게 아냐, 바보야. 우리 학교에서도 몰래 하다가 저주받은 사람이 있어서 그래. 
이건 비밀인데도도를 했던 5학년 언니 발가락이 7개나 부러졌대화장실도 못 가서 병원에 석 달이나 입원해 있었는데도 아직까지 절뚝거리면서 걷는대. 뛰는 건 절대 못하고 피구랑 뜀틀도 당연히 금지.  무시무시한두두를 했던 사람이야두두를 66 하게 되면 틀림없이 인대인가 그게 끊어진대그러면 아예 걸어다닐 수가 없다는 거야병원에  년을 있어도  낫는대무섭지?



단편 '여진'은 책 말미에 평론가가 부제로 삼았던 구절처럼 <'도도'와 '두두'의 세계>라는 제목을 차용했어도 참 좋았을 것 같다. 도도와 두두라는 보다 엽기적이고 기괴한 놀이로 벌어진 층간소음 살해사건의 단초가 되었고, 그 진동을 '여진'으로 표현 한 것도 참 좋았지만, 너무 중의적인 제목이라서 더 쉽고 기발하게 가기 위해선 <도도와 두두>도 완전 좋다. (마치, 이기호나 김영하 소설 제목처럼 말이지)


이번 소설은 사회적으로 실제 벌어졌던 사건들을 주 모티프로 다뤘다. 사실, 작가가 선택하기에 가장 쉬운 방법이기도 하지만 이미 뉴스로 다뤄진 내용을 소설로 쓰는 건 (개인적으론) 쥐약이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 잘 썼다. 

안보윤 작가만이 지닌 기괴함과 히스테릭할 정도로 참담한 고어스러움, 공포를 여실하게 느낄 수 있다. 그리고 또 한번 느낀건, 안보윤 작가는 단편 보다도 장편의 호흡이 더 착 붙는다.

실제적 사건들을 내용 속에 자연스럽게 녹였고, 각 캐릭터들의 생생한 사연들도 잘 어우러졌다. 
안보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대부분 결핍과 싸이코패스적인 감성들로 점철되어 있는데, 실제로 벌어졌던 사회적 사건들이 녹여있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즉, 우리네 살아가는 사회는 (정말 그지같게도) 소설 속 허구의 상상처럼 터무니없고, 극악무도한 사건들이 끊임없이 벌어지는 구조로 이미 변모해 버렸다. 묻지마 살인이 빈번하다. 납치,유기, 살해가 아주 당연한 사회가 되어버렸다. (슬프게도, 어이없게도, 안타깝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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