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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해진 단편 소설집- ‘빛의 호위’를 읽고

by 발렌콩

표제작 “빛의 호위”

키워드 : 북까페, 멜로디, 분쟁지역, 스노우볼, 사진, 시리아, 편지, 일기, 포탄, 블로그, 악기상점, 호르니스트, 엔딩 크레디트


어린 시절, 고아였던 권은에게 아버지의 카메라를 훔쳐 선물했던 주인공이 먼 훗날, 이십여년만에 분쟁지역, 오지를 촬영하는 사진 작가를 만나 인터뷰하며, 과거를 상기하는 이야기.

권은이 추천했던 ‘헬게한센’의 다큐멘터리 <사람, 사람들>을 관람하면서 여인 ‘알마 마이어’와 그의 아들, 의사인 ‘노머마이어’의 안타까운 죽음을 다른 이야기, 구호품 트럭이 피격되어 불문율이 깨진 그 죽음을


생각한다.



소설 속 발췌 : 짧지만 강렬한 오프닝 화면이 지나가자 곧이어 구호품 트럭안이 나왔다. 운전수를 비롯한 여섯명의 동승자들은 간간이 웃으며 이야기를 나눴고 트럭이 잠시 쉴 때는 지도를 펼쳐놓고 진지하게 상의를 하기도 했다. 아마도 편집으로 인해 다른 동승자들의 컷이 잘려나간 때문이겠지만, 원숏을 받는 사람은 주로 노먼이었다.

내가 찾아본 기사에 따르면, 노먼의 죽음은 미국 사회에서 커다란 이슈가 되었고 오랜 기간 화자되었다. 아무리 전시라해도 구로품 차량은 피격하지 않는다는 불문율이 깨졌다는 것. 그로 인해 퇴직 의사였던 유대계 미국인이 사망했다는 것. 그리고 그 트럭에 실려 있던 대부분의 구호품은 그 유대계 미국인이 자신의 전 재산을 털어 구입한 거였다는 것, 이 모든 것은 많은 사람들에게 드라마 같은 인상을 주었고 특별한 시사성을 얻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을 갖게 했다.



주인공은 권은의 인터뷰를 진행하여 기사를 작성하게 된다. 그러나 어린시절 잠시나마 함께했던 사이라는 것을 잊은 채였다. 주인공이 권은을 상기하며 인지하게 되는 물건은 바로 조카의 선물을 사러 들른 아동코너의 스노우볼이었다. 태엽이 돌아가고 멜로디가 흐르며, 그 둥글고 투명한 세계에서 하염없이 번지는 하얀 눈송이들.


소설은


위 다큐멘터리와 주인공이 권은에게 건넨 카메라로 그녀는 절망적인 삶에 희망의 빛을 느꼈을 것이다.




소설 속 발췌 : 나도 권은처럼 열세살일 뿐이었다. 폐허가 되어가는 동네의 외진 방에서 권은이 감당하게 하는 허기와 추위를 나는 해결해줄 수 없었다. 안방 장롱에서 우연히 후지사의 필름 카메라를 발견햇을 때 일말의 주저도 없이 그걸 품에 앉고 무작정 권은의 방으로 달려갔던 건, 내 눈에는 그 수입 카메라가 중고품으로 팔 수 있는 돈뭉치로 보였기 때문이다. 권은은 내 기대와 달리 그 카메라를 팔지 않았다. 그건,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녀에게 카메라는 단순히 사진을 찍는 기계장치가 아니라 다른 세계로 이어지는 통로였으니까. 셔터를 누를 때 세상의 모든 구석에서 빛 무더기가 흘러나와 피사체를 감싸주는 그 마술적인 순간을 그녀는 사랑했을 테니까. 그런데 셔터를 누른 직후 뷰파인터 속 그 빛이 한거번에 사라지고 나면 권은도 알마 마이어첲럼 더 외로워지고 더 쓸쓸해졌을까. 사진에는 담기지 않는 프레임 밖의 풍경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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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책을 읽을 때, 구조적인 부분을 먼저 살핀다. 예전에는 소설 속 섬세하게 구축된 이야기의 ‘힘’ 그 실감나고 리얼한 이야기를 확대하여 그 안의 직조물에 좀더 집중했다면, 요즘은 이야기의 주축을 이루는 전체적인 골조에 대해서 생각한다. 그러면 이야기 속에서 한발자국 떨어진 채 흐름과 연계성을 보다 확실하게 살필 수 있기 때문이다.

얼마전에 정주행한 서현진, 유연석, 한석규 주연의 종영 드라마


<낭만 닥터 김사부>를 보면서 장면의 연출성에 대해서 감탄했다.


단순히 이어지는 장면으로 설명하는 것 보다, 그 상황을 다른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는 또 하나의 다른 장면으로 보여주는 연출에 대해서 생각했다. 위 드라마는 시청률이 보여줬듯 아주 잘 짜여진 좋은 드라마라고 생각한다. 한석규의 연기는 말할 것도 없으며, 작가가 참 대본을 잘 썼다는 느낌이 전반적이었다. 위 드라마는 화합의 드라마다. 분명 악이 존재하지만, 그 악은 어느순간 드라마가 정해놓은 선의 위치에 자연스레 흡수된다. 그래서 이야기에 얽혀진 캐릭터들의 진정성이 더욱 두드러지며, 메디컬 드라마의 핵심 주제와 잘 맞물리게 된다.

조해진 작가의 단편집을 언급하면서 왜 뜬금없이 드라마 얘기?

조해진의 단편집 표제작 빛의 호위를 읽으면서 그 드라마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IMG_5710.jpg 종영 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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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드라마 마지막 번외편으로 등장한 배우 김혜수가 ‘국경없는 의사’를 자처하며 각종 분쟁지역에 머무르는 내용과, 때마침 산탄총에 맞은 환자의 총알 제거 수술을 맡게 되며 그 주제를 더욱 확고하게 했다. 조해진 작가의 ‘빛의 호위’에 기저하는 헬게한센의 <사람, 사람들>


김혜수도 극중, 트럭 피격 사건으로 함께 일하던 동료가 모두 사망했고 홀로 살아남았다. 빛의 호위에 등장하는 헬게한센의 다큐멘터리도 사진 작가 헬게한센만 홀로 살아남았다. 그리고 소설 속 주인공의 관찰자인 권은은 주인공이 건넨 카메라로 살아난다. 그리고, 다큐멘터리, 이야기 속에 겹쳐있는 또 다른 이야기로 주제를 비유적으로 보여준다.


한기욱 해설에 따르면 위 소설은 <화자의 ‘의식의 흐름’에 따라 현재와 과거를 번갈아 비추는 비선형적 ‘플래시백’ 서사방식>이라고 일컬었다. 현재 읽고 있는 위 단편의 캐릭터들은 국경을 넘나들며 역사와 한 인간이 처한 폭력과 마음 속 걸림돌의 문제를 다룬다. 좀더 천천히 이야기와 플롯, 구성방식을 음미하며 꼼꼼히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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