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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렌콩 Oct 16. 2019

한국전쟁을 다룬"전쟁의 목격자" 영화 장사리 모티브


한국전쟁을 다룬"전쟁의 목격자" 

#영화장사리 #메간폭스 #한국전쟁

#여성종군기자 #여성최초퓰리처상수상




한국 전쟁을 다룬 리얼 다큐 전기, 실제 한국 전쟁 당시 종군 기자로 활약했던 실존인물 마거리트 히긴스(이하 ‘매기’)의 전기 #전쟁의목격자 가 출간되었다.




1950년 6월 25일 육이오로 불리는 한국전쟁이 터졌다.

2019년인 지금, 6.25전쟁은 벌써 69주년이 흘렀다.

'벌써'라는 표현이 조심스럽다. 길면서도 짧게 느껴지는 그 시간 동안 한국엔 많은 것이 변했고 많은 것을 이룩해왔다. 하지만 여전히 38선이 그어진 분단 국가라는 점을 떠올리면 결코 긴 시간이 아니다. 그야말로 전쟁이 잠시 중단된 휴전국가이니까. 내가 태어나기 전에 벌어졌던 전쟁, 그리고 지금까지도 국가가 분리되어 휴전이 현재 진행형이라는 점은 굉장히 이질적이면서도 낯설다. 때문에 한국인들은 분단국가에 살면서도 그토록 가까운 전쟁에 대해서 더 둔하다.

1950년 발발한 6.25 전쟁은 1953년 7월 27일 휴전이 성립될 때까지 만 3년간 계속되었고, 이 전쟁은 한반도에게만 상처가 된 것만은 아니다. 수많은 나라의 참전 병사들에게도 큰 상처로 남았다.


기억해야 할 낯선 땅의 참전용사들

그 수많은 사람들 중 하나인 여성 종군 기자로 마거리트 히긴스의 전기-

이 책이 세상에 나올 수 있도록

 열정과 노하우를 다해 도와준 존 월슨에게

전쟁의 목격자의 목차는 매기의 출생부터 사망까지,

총 여섯 챕터로 모든 일대기를 순서대로 정렬했다.

-매기를 달리게 하는 것

-여기자

-종군기자

-전선에서 홀로

-천국에서 겪은 곤경

-세계적인 칼럼니스트

결혼과 유산에 관련된 개인적인 서사까지,

기자이자 한 여성으로서의 모든 삶으로 구성되었다.



미국 버클리대학과 컬럼비아 대학원을 졸업한 그녀는

1942년부터 ‘뉴욕 헤럴드 트리뷴(New York

 Herald Tribune)’의 기자로 20년간 근무했으며 

런던, 베를린, 도쿄 특파원을 역임했다.

 1945년 노르망디 상륙작전 성공 후 연합군 

선발대와 함께 다하우 강제수용소를 취재했으며,

 한국에 들어와 약 6개월 동안 한국전쟁을 보도했다.

그녀는 1951년에 한국전쟁을 취재하고 쓴 

#자유를위한희생 으로 퓰리처상 국제 보도 부문에서

 여성 최초의 수상자로 꼽히기도 했다.

9월달엔 매기가 등장하는 전쟁 영화 

#장사리 가 개봉되기도 했다.






장사리 : 잊혀진 영웅들 

Battle of Jangsari, 2019

#영화장사리줄거리

인천상륙작전 D-1


‘이명준’ 대위가 이끄는 유격대와 전투 경험이 없는 

학도병들을 태운 문산호는 인천상륙작전의 

양동작전인 장사상륙작전을 위해 장사리로 향한다.


평균나이 17세, 훈련기간 단 2주에 불과했던

 772명 학도병들이  악천후 속에서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총알을 맞으며 상륙을 시도하는데…



학도병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는영화로

유엔군 사령관이었던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 의 

성공을 위해 완전히 반대쪽인 장사리에

1개 대대 규모의 유격대를 상륙시키는 내용으로

17세의 어린 학도병 772명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이다.

#메간폭스 도 실존 인물인  마거리트 히긴스

종군 여기자 매기 역으로 출연했다.




마거리트 히긴스는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취재 전선에서 수많은 부조리와 차별을 겪었다.

침공 사흘째부터 ‘트리뷴’의 1면을 장식할 만한 취재 기사를 신속하게 보도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도

한국 전출 명령을 받기도 했다. 부당한 결과를 받고 그녀는 도쿄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맥아더 장군에게 진심을 담아 이렇게 말했다.

“전 서울에서 걸어 나왔어요. 

그리고 다시 걸어 들어가고 싶습니다.”


“골칫거리가 없었다면 

내가 여기 오는 일도 없었겠죠, 대령님.” 

 “골칫거리는 뉴스고, 뉴스를 수집하는 게 내 직업이에요.”

죽음이 난무한 전쟁터에 종군기자로 보도를 하는 일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거의 죽음을 각오해야 할 정도로 위험한 일이기도 했고, 대부분의 종군기자는 남자의 역할이었다.

세계에서 가장 저명한 신문사 중 한 곳의 대표자로서 그 신문의 전쟁 보도 범위에 대한 책임을 온전하게 잘 해냈다. 총알이 비처럼 쏟아지는 와중에도 재빨리 타자기를 붙잡고 기사를 완성했고, 뇌조각이 터져나가고 피가 분수처럼 쏟아지는 시체들을 보면서 도덕적 분노와 참을 수 없는 역겨움들을 뒤로한채 자신의 업무를 진중하게 해냈다. 총에 맞을 거라는 두려움뿐이었다면 온전하게 해내기 어려운 일이었다.

전쟁은 남자의 일이라고, 여자에게는 맞지 않는 일이라고 말하는 언론인과 군대 기득권 앞에서도 매기는 절대 굴하지 않았다.


기사가 실린 날짜는 1950년 5월 29일이고

헤드라인은 다음과 같다.

기자, 한국을 갈라놓은 국경으로 가다.

빨갱이들이 말과 포탄으로 싸우는 현장을 발견

마거리트는 38도선 바로 아래 있는 외떨어진 산골마을 개성이 어떻게 공산주의 북한의 지속적인 공격 목표가 되었는지에 대해 썼다. 선거가 다가오면서 요 며칠 동안 공격 활동이 가속화되고 있었다. 전날밤 공산주의자들이 포탄 11개를 마을로 탈취 해 갔고, 이어서 산꼭대기에 설치한 확성기로 위협적인 장광설을 쏟아 냈다.


그녀는 세계에서 가장한 저명한 신문사 중 한 곳의 대표자로서 그 신문의 전쟁 보도 범위에 대한 책임이 있었다. 요컨대 개인으로서, 자기 일을 하는 기자로서 판단 받을 권리가 있었다. <트리뷴>의 기자로 일하게 된 아주 초기부터 그녀는 그 어떤 남자에게도 뒤지지 않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입증해 왔다. 전선에 닿지 못하면 여성이라는 그녀의 성별이 장애물이라는 것을 증명하게 될 터였다.

-

남자들은 보도를 자기들만의 특권적인 영역으로 여겼습니다. 그들이 가장 신성시하는 영지인 전쟁에 침범한 여성이 남자와 동등한 재능을 갖추었고 때로 더욱 용감하다는 것이 밝혀지기라도 하면, 그건 품위 있게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었죠.




전쟁의 참상을 상세하게 다룬 마거리트 매기의 전기, 제 3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는 전쟁에 대해서 다시 한번 진중하게 생각 해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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