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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뷰티스토리텔러 Apr 04. 2022

부산에서 만난 사람들 ; 1 솔개와 독수리

서울에서도 만나기 힘든 사람들이 부산까지 와서 속내를 터놓다니-



"부산에서 보고 싶어요"


부산에 작업실을 구했다는 말에 서울 지인들이 큰 관심을 보였다.

지난 2년 동안 코로나 때문에 서울에서도 자주 못 본 사람들이 부산까지 와 만나겠다는 말이 반가우면서도 꽤 부담스러웠다. 왜냐하면 나 역시 서울에 산 지 10년이 훌쩍 지났고, 그 시간 동안 바뀌어버린 부산이 낯설기 때문이다. 호스트 역할을 자처해야 될지 모른다는 부담이 엄습하면서도 내 고향 부산에 왔으니 무엇하나 더 알려주고 싶은 오지랖이 발동한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4월의 첫 주,

친한 언니 부부가 아이와 함께 부산 여행을 왔다.

이 부부의 결혼식에서 내가 부케를 받았고, 일 년 뒤에 결혼을 했다. 20대 중반의 어려운 시절부터 지금까지 10년이라는 시간을 서로 응원해주고, 지켜봐 준 사이다. 잠시 연락을 끊은 적도 있었지만, 그 시간마저 이해해주고 보듬어주는 사람들이다. 무엇보다 '삶을 대하는 가치'가 잘 통하는 부부다.


올해 4살이 되는 아이와 함께하는 힘든 여행임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부산 곳곳을 쏘다녔다. 저녁을 먹고 여독을 푸는 시간, 남편들은 곯아떨어지고 둘이서 새벽까지 긴 얘기를 나눴다. 막역한 사이라고 생각했는데도 언니는 그동안 서울에서 듣지 못했던 속사정들과 어쩌면 치부가 될 수 있는 어릴 적 이야기들을 들려주었다. 마치 끝없는 부산 바다가 생채기 난 기억까지 끌어안아 줄 것처럼. 부산이라는 시공간이 우리에게 주는 큰 선물이었다.


사실 어려운 이야기를 터놓는 언니가 고마웠다.

그렇게 내 미래에 대한 계획도 털어놨다. 서른 중반에 직업을 바꾸는 것이 가능한 일인지 잘 모르겠다고. 그런데 '죽을 때까지 꿈꿀 것'이라는 그녀의 말에 용기를 냈고, 우리는 계속 대화를 이어갔다. 언니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처럼 다양한 직업을 갖는 것은 괴장히 멋진 일이라고 했다. 평생 호기심을 가지고 싶은 나의 가치와 같다. 그러면서 나에게 솔개와 독수리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독수리 보다 솔개가 수명이 긴 이유를 알아?"


솔개와 독수리가 같은 마흔이 되었을 때 독수리는 노화된 상태로 죽어가지만 솔개는 평생 쓰던 발톱과 부리가 깨질 때까지 바위를 쪼은단다.(엥? 노화된 몸으로 버틸 바엔 스스로 고통스럽게 죽는 건가 싶었는데) 그게 아니라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 위해 발톱이 빠지고 부리가 깨지는 고통스러운 과정을 감내하는 것이라고.

이 과정은 최소 반년 간 계속되는데 그렇게 빠져버린 부리에는 새 부리가 돋아나고, 발톱이 돋아나고, 듬성했던 날개 깃털도 다시 자라나 마침내 솔개는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변신하게 된단다. 마흔에 도태되는 독수리와 달리 멋진 모습으로 바뀐 솔개는 다시금 3~40년의 수명을 더 누릴 수 있는 것처럼 우리도 지금 서른 중반이지만 앞으로 마음먹은 것은 그게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얘기였다.


언니의 조언이 더 와닿는 것은 그녀가 30대 중반에 10년 넘게 했던 일을 내려놓고 완전히 새로운 공부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육아와 병행하며 석사 학위 논문을 끝냈고, 새로운 필드에서 일을 하고 있는 언니가 해준 말이기 때문에 마음의 울림이 있었다.

벌써 나의 가능성을 닫아버리고, 과연 새로운 일을   있을 지에 대한 두려움이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이었나! 지금까지 해온 노력과 고통이 충분하다는 자기 연민도 버려야 함을 느꼈다. 좋아하는 공간에서 좋아하는 사람울림이 있는 대화를   있음에 감사한  주였다. 과연 우리의 마흔은 어떤 모습일까 가슴이 콩닥콩닥 거렸다.



문득, 피상적이고 즐거운 이야기만 나누던 사람과 부산이라는 공간에서 만나면 어떤 값진 시간으로 바뀔지 기대가 되었다. 다음 게스트는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까?




(연재) 부산에서 나누는 스몰토크,

부산에서 만난 사람들 에피소드 1. 솔개와 독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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