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여름만큼은 '해무'와 '수국'의 도시였다.
본격적인 여름을 알리는 장마시즌이 시작되었다.
부산에 사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해운대와 달맞이길 일대의 '해무'는
상상 그 이상이다.
귀신이 곧 나타나거나 산신령이 나타날 것 같다.
그러니 6월 말부터 7월 초
달맞이길에 있는 작업실에 갈 때는
온몸으로 그 습하고 축축한 느낌의 해무를 맞는다.
요가원에 가는 이른 아침에는 더하다.
서울에서는 아무리 습해도
해무라는 것을 보기가 어렵다.
하지만, 부산 워케이션을 하며 만난
첫 번째 여름은 '해무'도 함께였다.
해무 속으로 거닐 때는 우울한 감정이 들지만,
그것도 잠시 형형색색의 '수국'이 또 나를 반긴다.
5월에 한창이었던 벚나무 아래에
보라와 자줏빛 수국이 행렬을 잇는다.
여름이 왔다는 증거다.
사실, 수국을 좋아하지 않았다.
잊고 싶은 사람이 수국을 좋아한 것도 있지만 -
수국의 꽃말이 그다지 끌리지 않아서다.
수국이 피는 여름철에 결혼을 하면서
수국만큼은 빼 달라고 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해무 낀 달맞이 언덕의 수국은 조금 마음에 든다.
왜냐하면 해무와 함께 여름을 흠뻑 느낄 수 있는
매개체이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한창 일할 때는 벚꽃을 피는 지 몰랐고,
눈이 오는 줄 모를 정도로 바쁘게 살았다.
그 누군가, 무언가를 자세히 들여다볼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근데 자세히 보면 수국의 줄기에는
힘이 있고 생명력이 있다.
그리고 풍성한 수형도 마음에 든다.
계절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은 건강한 사람이다.
부산에는 나를 건강한 만들어주는 여름이 있고,
해무가 있고 또 수국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