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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alerie Lee May 03. 2022

배우 도전 일기 #4

날 온실 속 화초라고 하는 이들에게

03/05/2022  Entry#4


사람들은 내가 "있는 집 자식"이라 이렇게 지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들의 말이 맞다. 만약 부모님이 빚더미에 고통받고 있고, 당장 내가 통장에 모아둔 돈이 없다면 이렇게 배우 하겠다고 학원 다니고 연습에 충분한 시간을 쓸 여유가 전혀 없겠지. 하지만 짐작했다시피 나는 그들의 그런 짐작과 평가가 기분 나쁘다.

 

1. 타인이 보는 여러 가지 나의 모습


나는 내 친구들이나 지인들에 대해 "이 사람은 이래. 저 사람은 저래." 하고 단정적으로 어떤 사람을 분류해 두지 않는 편이다.


한량처럼 보이는 A도 어느 날 창업을 하기도 하며, 늘 분주해 보이고 건설적인 일 만 하는 것 같은 야 망캐 B는 누구보다 유흥과 사치가 심하기도 하기 때문에 사람들을 분류하는 것에 큰 의미를 못 느끼겠다.


무엇보다 난 사실 남에게 큰 관심이 없다. 내가 타인에게 관심을 줄 때는 그들이 도움을 요청할 때, 내가 흥미 있는 일을 그들이 하고 있을 때, 그리고 오랜 시간 정이 들어 가끔 순수하게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할 때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반대로 나를 "밸러리는 참 0000 해요."라고 하면서 코멘트를 많이 한다.


엉뚱하다. 밝다. 음침하다. 우울해 보인다. 불안해 보인다. 똑똑한 것 같다. 온실 속 화초 같다. 잡초 같다. 당당하다. 남 눈치를 많이 본다. 사회생활 만렙 같다. 회사 다녀본 적 없는 것 같다. 등등..


타인이 내게 내린 평가는 정말 우후죽순이고 서로 상반된다. 그들의 그 평가가 그 순간에는 진실일 수도 있다. 기분 나쁜 건 "그냥 넌 0000한 사람이야"라고 단정 짓는 게 기분 나쁜 것이다.


2. 온실 속 화초..? (ㅂㄷㅂㄷ)


그런데 이 많은 평가들 중 가장 나에게 기분 나쁜 말을 꼽자면 "온실 속 화초"다. 팩트여서 그렇다고 하면 할 말 없다.


하지만 그런 환경에서 태어났으면 내가 여태까지 밤새워 시험공부를 하고, 진로 때문에 방황하고, 이곳 저곳에서 회사 생활하고, 남몰래 한 노력들은 그저 "비옥한 땅에서 자란 화초의 당연한 모습"에 불과 한 건가?


3. 온실에서 태어나봐라 나만큼 살 수 있나.


남들이 팀장 달 때, 남들이 결혼할 때, 남들이 회사에서 보너스 타서 명품 플렉스 할 때... 나는 그런 거 하나도 못하고 돈 생기면 영화 찍고 연기 학원 다니는 일에 돈을 썼다.

 

그 말을 하는 사람들도 사실 개천에서 용 난 케이스도 아니며, 충분히 온실이라고 할 수 있는 곳에서 자라난 사람들이다.


4. 내가 만만한가?


난 사실 어딜 가나 허허실실 잘 웃는다. 어딜 가나 사람들에게 마음을 열고, 모임에서는 항상 내가 얼어붙은 분위기를 녹이는 역할을 하곤 한다. (ENFP다.)


그래서 사람들이 내게 친근감을 잘 느끼는 것 같고 편해서 "밸러리는 참 이런 것 같아" 하고 말도 하는 게 맞다. 그리고 좋은 말이든 그렇지 못한 말이든 속으로 생각하는 것보다는 말하는 게 나은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내가 얼마나 만만하면 그냥 그 말을 다 하지?' 라는 생각이 드는건 어쩔 수 없다.


나도 그런 식으로 치면 할 말 많다.


" 00님은 사실 진짜 야망 없는 척하면서 야망 많은 영악한 여우인데 이미지 관리하고 사시느라 억지 미소 장착하는 거 보는 사람이 더 힘겨워요^^!"


"00님은 코인으로 부자 됐는데 그 이후에 이렇다 할 사업적 성공 없어서 저보다 더 불안해 보이시는 건 알고 계세요?^^"


하지만 나는 그 말을 삼키고, 남들이 나에게 잘 알지도 못하면서 사람 평가하는 말을 할 때 "그래 그렇게 보일 수도 있지 뭐 ㅋㅋ"라고 말하고 만다.


5. 결론 : 왓에버.


사실 오늘 사회에서 만난 친구가 나보고 온실 속 화초인 줄 알았더니 온실 속 기암괴석 같다는 이야기를 듣고 좀 발끈해서 작성하게 된 글이다.

나중에 술 한잔 하면 그 말은 좀 서운하고 기분 나빴다고 솔직하게 말할 작정이다.


분명한건, 남들의 이런저런 평가에 휘둘릴 나이는 지났다. 그러기엔 발끈해서 글도 쓰지 않았냐고? 감정적으로 발끈하는 것과 휘둘리는 건 차이가 있다!


휘둘렸다면 그렇게 안보이기 위해 내 행동을 바꾸겠지. 그들이 나를 만만히 보진 않을까 하는 생각에 무게를 잡고 괜히 어른스러운 척하며 내 태도를 바꿀 생각도 없다.


  "그래 ㅠㅠ 난 여태 너무 온실 속 화초처럼 살았어. 그래서 나는 배우 꿈을 쫓기나 하는 거야. 그만둬야겠어"라는 생각도 안 할 것이다. 난 이 도전을 완주할 것이고! 나는 앞으로도 나스럽게 살 예정이다!


6. 그럼 나는 어떤 사람일까? 


이렇게 오해받은 날이면 나와 가장 가까운 친구의 말이 큰 위안이 된다.


"넌 참 약한 듯하면서 강인한 사람이야."


또한 중학교 때 나를 괴롭혔던 한 언니의 말도 묘하게 위로가 된다.


"넌 애가 참 잡초 같아." (괴롭혀도 기 안 죽어서 한 말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이든 사물이든 이렇게 보면 이렇고 저렇게 보면 저런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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