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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alerie Lee Sep 02. 2022

배우 도전 일기 #12

정서적 이중 스파이

7월부터 학원에 더 이상 나가지 않았다.

나를 무례한 사람이라고 말해도 할 말이 없을 만큼 나는 선생님들께 제대로 된 인사도 하지 않은 채 떠났다.

나는 그만큼 내 꿈을 무례하게 떠난 것 일 수도 있다. 누군가가 잠수 이별을 하는 심리가 이런 것이 아닐까 내심 생각해 본다. 예의도 없고 책임감도 없다며 그 사람을 탓할 수도 있지만 어쩌면 그 사람은 작별인사를 고하기에도 너무나 마음이 지쳤던 걸지도 모른다.


유주은 배우가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하고 싶은 일이 오로지 단 하나가 있는데 그것이 잘 되지 않았을 때 오는 좌절감이 그녀를 잠식한것 같다. 유주은 배우는 한예종 출신으로, 빼어난 외모를 갖추기도 했다. 한눈에 보기에 배우로서도, 그리고 한 여자로서도 유리한 조건의 소유자였으며 TV조선 조선 생존기 등 드라마에 적어도 대사가 있는, 비중 있는 조연으로 출연하신 경험이 있는 것 같았다. 나이도 나보다 어리다.


그 정도면 사실 나에 비해서는 이미 많은 것을 배우로서 이룬 건데... 싶다가도 그녀의 준거집단, 즉 그녀가 자신을 좋으나 싫으나 비교하는 대상은 비슷한 나이대의 한예종 선후배 동기라는 것을 고려할 때 그녀가 느낀 불안함, 초조함, 좌절감은 상상하기 힘들다. 자살을 정당화 또는 미화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나는 그녀의 그 심정을 잘 안다는 이야기다. 나도 7월 8월 즈음에 그런 상실감과 좌절감을 느꼈으니까.


지금 나는 사천해변을 바라보며 이 글을 쓰고 있다. 한결 마음이 편안해졌다. 배우나 감독의 길을 떠나 사회생활을 하는 한 사람으로서 나는 꽤나 여기저기서 불러주는 사람이었다. 그렇다면 나는 회사를 다니면서도 연기학원도 다니고, 주말에는 이렇게 글을 쓰면서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닐 수도 있다. 양 쪽의 좋은 점만 취하며 (한쪽에서는 안정적인 월급을 받으며 지내고 그 안정을 바탕으로 시나리오를 쓰고 오디션을 보는) 삶이 이론 상으로는 완벽해 보일지라도 정서적으로는 이중 스파이의 고충을 안고 갈 것이기 때문에.


한 사람을 마음에 깊이 둔 채로 다른 사람과 사귀어 본 적이 있는 사람의 마음이랄까? 누군가와 입맞춤을 하면서 다른 사람을 떠올리는 그 심정. 말로는 이 사람도 사랑하고 저 사람도 사랑한다 주장할 수는 있어도 결국 누구 한 명 제대로 사랑하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는 자괴감에 시달리는 상태. 나는 그렇게 되고 싶진 않다.


하지만 방금 내가 한 말은 나의 중2병스러운 자의식 과잉 해석일 수도 있다. 이성 간의 사랑은 그렇다 치더라도 세상에는 여러 분야의 일을 동시에 훌륭히 수행하는 사람도 존재하니까. 다만 그런 사람들 중 두 분야에서 정점을 찍는 사람이 드물 뿐. 나의 자아실현에만 초점을 두고 삶을 살아간다면 두 가지 동시에 할 수는 있다.


원하는 미래와 목표를 이룬 모습을 구체적으로 상상하면 언젠가 이뤄진다는 "시크릿"을 맹신하고 한 번쯤 내가 원하는 미래를 구체적으로 그렸던 적이 있는 것 같다. 나는 분명히 큰 영화제에서 상도 타고 멋진 드레스를 입고 유명한 사람들과 교류하는 나의 모습을 그렸던 것 같은데 이뤄지지 않았다. 하지만 만약 마법의 램프에서 지니가 나와서 지금 내가 있는 사천해변에서의 이 일상 대신 깐느에서의 하루를 준다고 한다 해도 나는 바꿀 생각이 없다.

진심이다.


깨끗한 집을 원하면 청소를 해야 하고, 위대한 성취를 하려면 그만큼의 불안과 공포를 이겨내야 한다. 사천으로 가기 전 집에 누워서 생각해 봤는데 나는 여태까지 깨끗한 집을 원하면서 청소는 죽도록 하기 싫어하는 사람의 모순을 가지고 살아갔다. 집이 더러워져서 짜증 나면 치우면 그만인데, 청소하는 그 과정을 견디기가 싫은 것이 보통의 사람이다. 나도 좋은 영화를 만들고 싶지만 그 영화를 만드는데에서 오는 고통이 싫어서 그런 영화를 못 만드는 것이다.


영화를 만드는데에서 오는 고통은 무엇이냐고? 일단 사람들이다. 영화를 만드는 동안은 아무리 많은 항 불안제를 섭취한다고 해도 불안해지기 마련이고 예민해진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그러면 함께하는 사람들이라도 정서적으로 마냥 안정적인 사람들일까? 전혀 아니다. 얼마 전 만든 한 작은 영화에서 나는 정말 아무 욕심 없이 작업을 했다. 그런데 후반 음향 작업을 하시는 분이 정말 예민하셨다. 별거 아닌 문자 대화에도 그분은 발끈하셨고, 굉장히 방어적으로 대하셨다. 얼마나 여태까지 이상한 감독들을 만났으면 저렇게 방어적일까 싶었지만 나도 잔잔한 사람은 아니기 때문에 결국에는 조그마한 신경전이 이뤄졌었다.


바로 이런 것들이 나를 정말 피 말리는 것들이다. 다른 감독님들에게도 여쭤봤다. 그 감독님들도 공황장애도 겪고, 사람들 때문에 속상하고 화나고 자존심도 상하고 죽고 싶고... 다들 그렇다고 한다. 크리스토퍼 놀란도 촬영장 가기 전에 너무나 불안하고 떨려서 차 창문을 열고 토한 적도 있다고 한다. 그럼에도 성취를 이루는 이들은 영화를 만들고 싶은 의지가 그 더럽고 짜증 나는 것보다 훨씬 크기 때문에 영화를 계속한다. 생각해보면 회사 생활도, 그 어떤 일도 마찬가지다. 회사에 들어가도 직원들끼리의 신경전과 기싸움이 있고 세력다툼도 있다. 사람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그렇다.


내가 욕심이 덜한 분야에서는 사람들과 덜 부딪힐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리고 어쨌든 돈도 꾸준히 나오니까 그 더러운 것들을 버틸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나는 회사 생활을 택하는 것 같다. 그래, 어쩌면 나는 영화를 딱 그만큼만 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한마디로 프로페셔널로 나아가기까지의 동기부여가 부족하다. 나는 돈이 좋고, 돈이 살 수 있는 편안함이 좋다. 또 영화를 할 때는 만날 이유도 없고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의 여유로움이 좋다. 영화를 하는 사람들은 늘 뭔가에 목이 바짝 말라 있는 느낌들이 있다. 인정 욕에 시달리거나, 돈에 궁하거나... 만약 그 두 가지 결핍이 없는 사람이 영화를 한다면 그 사람은 이미 성공했거나(그래서 굳이 나를 상대할 이유가 그쪽에서 없거나), 이미 안정된 크류에 속해있거나 아니면 영화를 만드는 일을 그냥 정말 일로써만 대하는 사람일 것이다.


그런데 웃긴 얘기 하나 해줄까. 나는 지금 창업도 고려하고 있다. 창업의 길을 가면 사실 영화 한 편 만드는 것보다 더 짜증 나는 일, 화나는 일, 불안한 일도 많이 생길 것을 알고 있다. 그런데 왜 창업이냐고. 일단 적어도 나는 창업 아이템은 성공했을 시 돈이라는 보상이 주어질 것이라는 확신이 있다. 그런데 영화는 그 모든 힘듬을 딛고 훌륭히 만들어도 돈이라는 보상이 못 올 수 있다 (상대적으로 적을 수 있다). 심지어! 영화를 완성했다 하더라도 성취감도 없을 수 있다. 왜냐면 내 안의 완벽주의자가 계속 그 결과물을 못마땅해 할 수 있으니까. 물론 창업을 할 때도 그런 성향이 발휘될 수 있지만 왠지 영화가 아닌 다른 모든 일은 나를 이렇게 까지 힘들게 하진 않을 것 같다. 반박해도 상관없다. 착각이라고 해도 좋다. 그냥 나는 내 마음이 그렇다는 걸 아는데 뭐.


배우 일기는 계속 써내려 나갈 것이다. 내가 온전히 정말로 영화를 포기했다는 게 기정사실이 될 때까지.

그런데 지금으로서 나는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 포기한다고 생각하면 나는 고 유주은 배우처럼 될 수도 있다.

내가 배우 일기에서 이전에 쓴 적이 있다. 내 연기 철학은 "살려고" 하는 것이라고. 어쨌든 일단 살아야 할 것 아닌가! 연기를 하는 게 죽을 것처럼 힘들어지면 또 이렇게 다른 일을 하고. 또 힘이 나면 연기도 영화도 만들고. (힘뿐 아니라 잔고도 채워져야 하고.)


포기한 건지 뭔지 나는 결정하고 싶진 않다. 이게 정서적 이중 스파이 짓을 하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나는 지금 당장 살기 위해서 이런 마인드셋이 필요하다. "나"라는 사람의 행복과 성취감을 한 바구니에만 올인하는 게 아니라 여러 군데에 분산시켜 담아두면, 한 분야에서 조금 좌절이 오더라도 다른 한 분야가 남아있기에 살아갈 수 있다. 유주은 배우처럼 모든 것을 한 바구니에 담으면 정말 많이 힘들어진다는 걸 내가 잘 알기에... 그래, 나는 그냥 이중 스파이를 하면서 살아가련다. 이중이 아니라 삼중이라도 상관없다. 그냥 삶을 그저 사는 것 이상으로 충만하게 살아가기 위해 무엇이든 하며 살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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