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식키보드도 백색소음이 될까?
*사무실에서 주위 시선 신경쓰지 않고 청축 키보드를 PC방처럼 강타했던 동료가 떠올라 작성한 글입니다. 모든 기계식 키보드 유저를 대상으로 하는 글이 아니니, 오해 없으시길 바랍니다 :)
완전한 소음의 차단보다는 백색소음처럼 패턴이 없이 일정한 스펙트럼을 가진 작은 소음들이 집중력에 도움이 된다는 많은 연구결과들이 있다. 그래서 우리 회사의 사무실에서는 최대한 작은 소리로 잔잔한 음악이 흘러나오도록 피아노 연주곡들을 틀어놓고 있다. (뇌파를 찍어본 것은 아니지만, 확실히 완전히 조용한 것보다는 안정감을 느끼게 해주는 것 같다. 피부과 대기실인 것 같다는 반응들이 종종 있기는 하지만...)
회사 내에서 발생하는 소음에 전화기 소리, 슬리퍼 끄는 소리, 대화하는 소리 등등 다양한 소음들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내 기준에서) 가장 귀에 거슬리는 소리는 키보드를 타이핑하는 소리인 것 같다. 일정한 규칙을 가지고 타이핑을 하는 것도 아닐 뿐더러 심지어 사용자의 감정에 따라서 소리의 크기가 결정되니, 키보드를 부술 듯이 타이핑하는 옆자리 동료를 만나면 그것도 꽤 스트레스로 다가오곤 한다.
2010년대 초반, 그러니까 내가 회사생활이라는 것을 처음 하던 시기에는 멤브레인 키보드가 일반적이었다. 타이핑을 하면 하단의 고무가 눌려서 멤브레인 회로로 반응하는, 그 일반적인 키보드들 말이다. 그런 키보드는 사실 정말 구조적으로 의도한 것이 아니라면 웬만해서는 큰 소음을 발생시키기에는 어려웠다.
옆자리 사람의 키보드가 너무 시끄러우면 실리콘 덮개를 선물하면 챙겨주는 느낌도 들고 소음도 차단할 수 있어서 일석이조의 효과를 볼 수 있던 키보드들이었기에, 그때는 그렇게 키보드 소리 자체에 예민하게 생각하진 않았던 것 같다.
저렴하고, 고장이 잘 안 나는, 무선키보드(!)라면 최고의 키보드로 추앙받던 시기였기에, 그 시절에는 키보드의 소음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던, 평화가 유지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러던 어느날, 갑자기 기계식 키보드라는 친구들이 하나둘씩 보급이 되기 시작했다. (키보드 덕후의 입장에서 체리의 특허가 어쩌고 저쩌고 설명할 순 있지만 여기에서는 생략한다.) 그동안 비싸서 구매하지 못했던 사람들의 수요를 충족하고 싶었던지 초기 기계식 키보드들은 아주 조악한 조립상태에 소리까지 시끄러워서 정말 옆에서 듣고 있노라면 머리가 지끈거릴 정도였다.
그런데... 그런 키보드를 사무실에서 "PC방에 온 것 같아요!"라고 해맑게 웃으며 쓰는 직원이 나타났을 때...
정말 경악을 금치 못하였다.
빠르게 철컥거리면 메신저에 글을 쓰는 것, 천천히 철컥거리면 업무를 하는 것이 구분이 될 정도로 키보드는 정말로 시끄러웠다. 언젠가 한 번은 속이 정말 뒤집힐 지경이어서 "키보드 좀 바꿔주면 안 될까요...?"라고 하니 "제 돈 주고 산 키보드인데 바꿔야 해요?"라는 답을 들었을 때 나는 마음의 불편함 조차도 포기하고 해탈의 경지로 이어플러그를 구매하였다. (그렇다고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들을 순 없으니...)
그래, 모든 것은 나에게 달려있느니...
소음이 과도한 사무실에서 업무를 할 경우 스트레스가 증가하고, 부정적 감정이 크게 증가하여 업무의 몰입도를 낮춘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약 8분간 사무실의 소음 환경에 노출된 사람들이 땀 분비가 34% 증가하고, 짜증이 25% 늘었고, 이를 바탕으로 개방형 사무실은 오히려 업무에 집중을 방해한다는 결론이 진행된 연구였다.
하지만 아직까지 한국에서는 대부분의 사무실들이 개방형 사무실이다. 그런 공용의 공간에서 내가 발생시키는 소음으로 인해 타인의 업무 효율이 감소할 수 있다는 생각을 잊지 않아야 한다. 자신이 쓰고 싶어서 쓰는 기계식 키보드라고 할지라도 그것이 타인의 권리를 침해한다면, 그 자유는 축소되어야 함이 마땅하다.
기계식 키보드도 저소음 키보드가 있다. 조약돌 소리를 도각도각 내는 기계식 키보드를 쓰고 싶으면 집에서 쓰자.
기계식 키보드를 좋아하는 분들을 위한 밴드를 운영 중입니다.
관심있는 분들은 들어오셔서 함께 소통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