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키리스 키보드
Tenkeyless 키보드
일반적인 사이즈의 키보드에서 오른쪽에 있는 숫자 키패드(텐키)를 제거한 키보드이다. TKL, 87키 키보드라고 불리기도 한다. 많은 경우에 '게이밍용 키보드'로 인식이 되어 판매가 되는데, 숫자키가 없는만큼 키보드의 공간이 줄어들기 때문에 마우스의 공간이 그만큼 확보되는 장점이 있다.
인생에서 처음 접했던 텐키리스 키보드는 K640T모델이다. 모델명 뒤에 붙은 T가 알려주듯이 이 모델은 앱코의 K640 키보드에서 숫자키를 제거한 키보드였다. 사진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오른쪽에 숫자키가 없는 것 말고는 차이를 느낄 수가 없는 키보드였다.
사실 이 키보드를 샀던 이유는 단지 "저렴했기"때문이었다. 풀배열의 키보드에 비해서 당연하게도 재료비가 덜 들어가는 키보드이기에 가격이 낮을 수 밖에 없었고, 지금도 그렇지만 기계식 키보드가 아무리 저렴해도 3~4만원 정도하는 상황에서 풀배열보다는 조금 저렴한 2만원대에 기계식 키보드를 살 수 있다는 점에 이 키보드를 구매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때 내가 저 키보드를 사지 않고, 보통의 풀배열 키보드를 구매했더라면, 나의 기계식 키보드 인생은 지금도 풀배열만 사용하고 있지 않을까 싶다. 그 말인 즉슨 K640T로 기계식 키보드 세계에 발을 들인 덕에 나는 지금도 텐키리스 키보드로 글을 쓰고 있다.
그렇게 텐키리스 키보드와의 10년에 가까운 인연이 시작되게 된다.
텐키리스 키보드는 공간의 활용성이 뛰어나다는 장점이 있다. 오른손의 동선이 많이 짧아지기 때문에 마우스를 쓰기 위해 오른팔을 움직이는 공간이 굉장히 짧아진다. 또, 가방에 들어갈 수 있는 크기이기에 (그럴 일은 거의 없지만) 휴대가 가능하다. 이동하면서 쓸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다만, 숫자키가 없는만큼 엑셀작업을 많이 하는 직장인들에게는 익숙하지 않을 수 있다. 빠르게 계산기를 치는 것처럼 숫자패드를 치는 것에 익숙해져있는 직장인들은 쉽사리 텐키를 포기하지 못한다. 그 점 때문에 아직도 많은 직장인들에게 외면받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K640T를 처음 샀던 날 회사 위 책상에 키보드를 올려놓고는 "책상이 이렇게나 깔끔해질 수 있어?"라고 감탄을 했던 기억이 난다. 당시에 내 책상은 아마 (대부분의 사무직 신입직원의 책상이 그러하듯) 140cm정도의 길이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책상을 어떻게든 효과적으로 활용하고자 듀얼모니터도 포기하고 싱글모니터로 일을 할 정도였던 나였기에 숫자키 10cm의 공간이 사라진 것은 혁명에 가까운 변화였다.
이 공간감이 정말 마음에 들어서 앞에서 작성하였던 DT35를 텐키리스 버전으로 잘라볼까 하는 생각을 할 정도였으니, 텐키리스가 나에게 주었던 충격은 꽤 컸던 것 같다. (그걸 실제로 하셨던 분도 계신다..)
키보드가 많은 지금이라면 이 키보드 저 키보드 바꿔가면서 사용을 하겠지만 (지금은 키보드를 일주일 간격으로 기분에 따라 바꿔가면서 사용한다.) 그 당시에는 기계식 키보드가 K640T 하나였기에 넓어진 책상 공간에 만족하며 그 키보드를 꾸준히 사용하였고, 덕분에 나는 자연스럽게 텐키리스 키보드에 적응을 하게 되었다.
엑셀에 입력하는 숫자의 문제는 노트북 입력하는 것처럼 qwerty키 위에 있는 친구들을 사용하면 되는 것이니, 그 키보드를 사용하며 정말 만족스러운 느낌이 들어서 주변 친구들에게 그 키보드를 추천하였다. 하지만 많은 친구들이 몇 번 써보고는 "풀배열의 숫자키가 없는 것을 도저히 못 쓰겠다"라고 포기할 때마다 내심 아쉬웠던 것은 그만큼 나의 만족감이 컸다는 것이기도 했다.
텐키리스는 멤브레인으로도 제작이 되기는 하지만, 수요가 적어 소량제작만 하기에 오히려 가격이 비합리적인 경우들이 많이 있다. 그나마 ABKO의 MK87정도가 있으나, 굳이 멤브레인을 텐키리스로 구매하는 것은 추천하고 싶지는 않다.
기계식 키보드 중에는 텐키리스 키보드를 거의 웬만한 브랜드에서 제조하지만, 권장하고 싶은 것은 무게감이 어느 정도 있는 키보드를 구매할 것을 추천하고 싶다. 키보드가 가벼우면 그만큼 안이 비어있다는 이야기이고, 그렇기에 통울림이 크게 날 수 있다.
또 한가지 팁은 저렴한 키보드들은 스위치보다는 연결선 고장나는 경우들이 종종 있기에, 연결선을 교체할 수 있는 타입의 키보드를 구매하는 것을 추천하고 싶다.
지금은 당근으로 떠나보내 다른 누군가의 키보드가 되어있을 (혹은 망가져 폐기되었을) 친구이지만, 3년 가까이 함께 해주며 큰 고장없이 나를 텐키리스의 세계에 정착하게 해주었던 K640T 키보드. 통울림도 꽤 있었고, 키캡의 글꼴도 엉망이었던 그 친구가 가끔씩 그리울 때가 있다.
어쩌면 그 싸구려 기계식 키보드로도 새롭고 행복해하던 초년생 시절의 내가 그리운 건지도 모르겠다.
기계식 키보드를 좋아하는 분들을 위한 밴드를 운영 중입니다.
관심있는 분들은 들어오셔서 함께 소통해요 :)